마사이마라, 케냐
투둑. 투둑.
마사이마라를 빠져나오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봉고차 한 대가 더 왔다. 투어 3일째인 오늘, 스위스 자매가 먼저 나이로비로 돌아간다. 아쉬운 작별 후 남은 넷이서 나쿠루 호수로 가는 동안 부쥬와 니콜의 설득이 이어진다. 3박 4일 코스를 선택한 사람들은 3일째인 오늘 나쿠루 호수로 가는데, 내가 나이바샤(Naivasha)라는 마을에 내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칼데라 호가 있는 산과 거대한 호수가 있는 마을.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지만, 칼데라 호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백두산 천지를 떠올랐던 거다.(사실 초원을 사흘이나 보는 것도 지겹지 않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깔려있었다) 혼자 가서 뭐 할 거냐,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위험하다 등등, 부주와 니콜은 싫지 않은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았다.
사파리 투어의 특성상, 같은 차에 오른 사람은 모두 형제가 된다. 우리는 초원에서 보내는 두 번의 밤 동안, 불을 피워놓은 장작더미 근처에 누워 온 우주의 별을 같이 헤매곤 했다. 마사이 마라의 밤은 정말이지 칠흑 같아서, 하늘은 지난 30년간 봤던 별을 모두 모아 놓은 것만큼이나 반짝였다.
멀어진 문명의 세계만큼 가까워진 그 우주 아래에서는 모두 겸손해지고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기 마련이다. 우리는 니콜과 부쥬가 1월 1일 리우의 해변에서 보낸 뜨거운 밤에 함께 황홀해했고, 노매드 족처럼 살고 싶다는 노부의 이야기에 함께 손뼉 쳤으며, 한국에 있는 그녀를 함께 그리워했다. 맥주 한 두병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면, 풀밭에 드러누워 온몸에 그 수억 년의 세월이 퍼져 흐르는 기분을 즐기는 것이다.
니콜과 부쥬가 그렇게 말리지 않더라도, 나는 어젯밤부터 이미 헤어지기 싫었다. 그럼에도 끝내 계획을 변경해야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가난병이라고 불렀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외국에만 나가면 자린고비가 되는 지독한 고질병이다. 나쿠루 호수에서 1박을 하면 120달러를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차는 어느덧 한 시간을 달려 온통 진흙탕이 되어버린 버스 정류장에 닿았다.
“진짜 혼자 갈 거야?”
“걱정 마 부쥬. 아마 내일 눈떠보면 쥬드킴씨 텐트가 나쿠루 호수까지 떠내려 와 있을걸”
나는 니콜의 그런 점이 좋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터져 나오는 익살. 나는 끝내 차에서 내렸고, 그때 즈음 비는 폭풍에 가까워졌다. 내일 저녁에 뉴 케냐 롯지에서 만나자는 말만 남긴 채, 나이바샤로 가는 마타투(케냐에서 대중교통으로 널리 쓰이는 승합차)에 올랐다.
니콜의 말처럼 텐트가 떠내려가는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이라고는 외로움뿐이었다. 비가 퍼붓는 호숫가 산장에 손님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고, 그대로 텐트에서 잤다가는 진짜 떠내려 갈 것 같아 방갈로를 빌렸다.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에는 해가 쨍쨍했지만, 나이바샤 보트 투어를 예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를 탈 수 있냐고 물으니 혼자서 8인분의 뱃살을 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가난병이 발동했다. 결국 아무 소득 없이 캠프장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칼데라 호수를 찾았다.
그러나 간밤의 비로 흙탕물이 잔뜩 일어난 호수는 그저 시커맸다. 흙탕물을 한 바가지 퍼다놓은 듯한 호수는 그저 고요했고, 인적도 없는 곳에서 무얼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공원을 돌아 나오는 길, 난데없이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쿵. 쿵. 쿵.
지진이라도 났나 싶어 허리를 숙여 엎드렸다. 다행히 땅이 갈라진 것은 아니었다. 숲의 잎사귀들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나자 갑자기 흔들림이 멈추었다. 나는 머리 위로 커다란 그늘이 지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갑자기 그늘을 드리운 것은 한 무리의 기린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높이가 5미터는 되어 보이는 기린이 서 있었다. 어떡하지? 잠깐만. 기린이 육식을 하던가? 살려달라고 외쳐야 하나?
"어어... 으아아어..."
약 10초간 머리를 굴려대는 동안 이상한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초식동물이건 육식동물이건, 5미터가 넘는 생명체가 눈앞에 있으면 공포를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기린이 내 얼굴만 하게 보이는 거리가 되어서야 겨우 카메라를 들었다. 걸음을 멈춘 녀석들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 채, 커다랗고 반짝이는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마치 ‘여. 벌써 가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 초원의 세계는 홀로 있기에는 너무 거대했고, 나는 너무 작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는 일치감치 바퀴벌레가 가득한 나이로비로 돌아가기로 했다. 니콜과 부쥬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나이바샤에서 출발한 마타투는 5분을 채 달리지 못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기사는 살아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태울 기세였고, 한 명이 내리면 두 명은 타는 것 같았다. 자리가 없어지자 요금을 걷는 소년을 봉고차 문에 매달린 채 달렸다.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 앞좌석에 앉힌 소년에게 내심 고마워하던 차였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또 5분이 지나지 않아 앞 문을 열고 거구의 사내가 몸을 들이밀었다. 그때부터는 운전기사가 기어를 바꿀 때마다 내 왼팔도 같이 움직였다.
차가 하나도 없는, 고작 96km의 거리를 세 시간이 넘게 달렸다. 나이로비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달렸다. 혹시라도 먼저 도착한 니콜 일행과 엇갈리까 싶어 버려진 강아지 마냥 마음이 초조했다. 시간은 어느덧 여섯 시. 다행히도 아직까지 나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방문을 열자 까만 점 두어 개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래도 꼼짝 앉고 침대에 앉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렸다.
“쥬드! 쥬드! 아직 살아있니?”
익숙한 그 목소리가 들렸을 때,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니콜의 손에 들린 맥주병을 발견하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2년 된 여자 친구를 두고 온 내가 겨우 삼일 같이 지낸 사람을 이토록 그리워했다니.
“그럼 우리, 언젠가 만나자. 도쿄에서”
지키기 힘든 약속인 것은 알지만, 아무도 의심하진 않았다. 창 밖으로 다시 비가 내린다는 사실도 모른 채, 우리는 원 없이 마셨고 원 없이 취했다. 깊은 밤이 나이로비를 집어삼키고 있었고, 우리의 추억은 바퀴벌레가 득실대던 뉴 케냐 롯지에 남았다.
부쥬와 니콜을 굳이 공항까지 배웅하고 난 뒤에도 이틀을 더 나이로비에 머물렀다. 노부가 일본으로 가던 날도 어김없이 함께 공항으로 갔다. 녀석은 남은 케냐 돈을 모두 넘기고 떠났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벌레가 들끓던 뉴 케냐 롯지는 책을 읽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호기심에 산 낙타우유를 죄다 뱉어낸 그 날, 결국 조금 비싼 숙소로 옮겼다. 가난병도 바퀴벌레는 이기지 못한 것이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저 빗방울만큼,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겠지만, 나는 그때마다 부쥬와 니콜, 노부를 떠올릴 것이다. 나이로비는 따스한 햇살도, 고풍스러운 시가지도, 부드럽고 향긋한 커피 향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리워할 사람들로 기억 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