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초원의 왕은 과연 사자인가?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케냐

by JUDE

다르살람은 흑인이 대단히 많다는 점 말고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였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간밤에 다른 호실에 묵은 여행자의 배낭이 누군가에게 털렸다는 것 정도. 나는 24시간 가드가 있는 호스텔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를 물어보는 대신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 케냐였다. 정확히는 수도인 나이로비다.


버스가 달리는 12시간 내내 경운기에 타고 있는 착각이 들었지만, 등받이가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렸다. 제대로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은 진흙탕으로 변했고, 가뜩이나 별 볼 일 없는 거리의 음식들은 더더욱 초라하게 보였다. 최대한 진창을 피해 뉴 케냐 롯지 라고 적힌 호스텔로 들어갔다. 방은 습했고, 침구는 축축했다. 그래도 전기는 들어왔다.


만약 누군가에게 '모기가 싫어? 바퀴벌레가 싫어?'라고 물으면 뭘 그런 걸 묻냐고 하겠지만, 나는 분명히 대답할 수 있다. 바퀴벌레가 10만 배는 싫다. 자다가도 발등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불을 켜보면, 적어도 바퀴벌레가 네 마리는 눈에 띄었다. 다르살람이 흑인이 굉장히 많은 도시라면, 나이로비는 바퀴벌레가 매우 많은 도시다.


하룻밤도 겨우 보냈다. 눈을 떠보니 시간은 새벽 5시쯤이다. 그냥 그 천국에 계속 있을 걸 하고 몇 번을 후회했는지 모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한 남녀가 거대한 캐리어를 밀어내며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게 보였다. 나와 같은 생각인가 싶어 눈여겨보고 있으니, 곧 거구의 남자가 둘의 가방을 차에 실었다. 천장이 뚫린 승합차에 'New Keyna Safari'라고 써진 로고가 보였다.


사파리 투어다. 확신이 들자마자 거구의 사내에게 달려가 손을 들었다. 남자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내가 달러를 꺼내자 곧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계약서를 쓰고 짐을 싸서 차에 타기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미안. 바퀴벌레가 너무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어."


10분을 기다린 커플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자 남자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오. 너도 잘못 봤구나? 뉴 케냐 롯지가 아니라 뉴 카카롯치였어"


남자의 농담 덕분에 차가운 새벽 공기 속 차 안이 기숙사 방같이 따뜻해졌다. 승합차는 두 번 더 정차했고, 총 7인의 마사이마라 원정대가 결성되었다.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에는 면적이 15,000㎢에 달하는 거대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수 세기 동안 인류의 호기심을 자극해 온 그 초원을 탄자니아는 세렝기티(Serengiti), 케냐는 마사이마라(Masai-mara)라고 불렀다.


아프리카는 체계라는 것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사파리 투어만은 완벽에 가깝다. 여행에 제일 중요한 요리사 그루를 태운 차는, 시내를 벗어나 빠르게 질주했다. 국립공원의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캠핑장에는 군대에서나 볼 만한 거대한 막사가 여러 채 세워져 있었다. 전기는 해가 완전히 진 뒤부터 딱 두 시간만 들어오지만, 텐트 안은 두 개의 싱글 침대와 화장실, 샤워실까지 갖춰져 있어 완벽했다. 나는 손바닥이 유난히 하얗던 드라이버 로렌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오로지 뛰어난 입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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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를 하나 낼게. 저기 있는 얼룩말 보이지? 저 아름다운 흰색과 검은색의 조화를 눈여겨보도록 해. 얼룩말의 무늬는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일까, 검은 바탕에 흰 무늬일까?"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얼룩말이 검은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일본인 노부가 흰색에 검은 줄무늬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음... 학교에서 그렇게 배운 거 같은데?"

"우리는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라고 말해. 저 꼬리 끝을 봐봐. 완벽한 검은색이거든."


과연 그랬다. 풀을 뜯고 있던 녀석들은 무늬도 크기도 제각각이었지만, 꼬리털만은 하나같이 새까맸다. 잠시 시동을 끄자 풀을 씹는 소리, 발자국 소리, 꼬리로 자기 몸에 붙은 벌레를 쫓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갓난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듣는 심정으로 그 놀라운 소리를 뇌리에 새겼다. 새로운 개체가 나타날 때마다 로렌스의 입담은 이어졌고, 기린, 버펄로, 코끼리, 치타, 그리고 마침내 사자와 마주쳤을 때, 나를 비롯한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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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4m나 채 될까. 거대한 사자 암수가 나란히 그늘에 누워 한낮의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열린 천장을 통해 마음껏 물어뜯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였다. 아침부터 사자를 외치던 우리는, 막상 눈앞에 그 장면이 펼쳐지자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겁낼 거 없어. 배가 고프지 않은 사자는 그저 고양이니까."


아 그래. 아프리카의 고양이는 저렇게 생겼구나. 제법 크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조금 떨렸다.


"다시 퀴즈. 사자가 짝짓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여전히 모두 입을 다물었다. 사자 앞에서 섹스라는 단어로 토론을 벌이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싶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자 로렌스가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였다.


"하루에?"

"아니"

"일주일?"


그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곧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정답은 1시간이야. 정확히 15분마다 한 번씩 짝짓기를 하지"


사람들의 원성이 날아든다. 사자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본 것도 같다. 로렌스는 두고 보라는 듯 잠시 차를 멀찌감치 물렸다. 시동도 꺼버렸다. 우리는 숨을 죽은 채 온 신경을 사자에 집중시켰다. 거리는 한 15미터쯤 될까? 잠시 후 놀랍게도 첫 번째 짝짓기가 벌어졌다. 소개팅에 나온 사람처럼 머뭇머뭇 암컷의 주위를 돌던 수컷은, 조금씩 비비적 거리더니 등에 올라타서 몸을 흔들어댔다. 행위는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고, 약 20분 뒤 두 번째 짝짓기가 벌어졌다.


로렌스의 말에 의하면, 암수가 함께 있으면 이런 식의 짝짓기가 계속 반복된다고 한다. 대충 계산해보면, 일주일이면 무려 500번이다. 그러니까 사자만 암컷이 사냥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수컷의 얼굴이 왠지 측은해 보였다. 처진 눈은 지쳐 보였고, 미간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꼭 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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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비로운 초원에서 이틀을 보내면서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이 거대한 생태계에는 어떤 특별한 체계가 존재한다. 예컨대 마사이마라에서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는 누 무리 속에는 언제나 소수의 얼룩말이 섞여 있다. 누 떼는 결코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력이 좋고 소리에 예민한 얼룩말은, 누 떼 속에 섞여 일종의 경비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코끼리와 기린은 둘 다 초식동물이지만, 결코 한 곳에서 풀을 뜯지 않는다. 모든 초식 동물들은 철저하게 서로의 영역 안에서만 살아가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음을 의미한다.


DSCF2663.JPG 방금 마친 식사로 입가가 새빨개진 치타


초식 동물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다. 언제나 사자나 치타 같은 맹수들에게 노려지고 있다. 우리는 방금 얼룩말 한 마리를 해치워 입가에 잔뜩 피를 묻힌 치타를 발견했다. 반대의 장면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냥을 하는 치타를 실제로 목격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는 천적이 없어 보이는 육식동물에게도 보이지 않는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자는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야생의 왕이라 불린다. 그런데 과연 사자는 야생의 왕일까? 그렇다면 이 초원은 사자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막 마사이마라에 도착한 누 떼들. 허겁지겁 물을 마시는 그들 사이 주변을 경계하는 얼룩말이 눈에 띈다.


내가 마사이마라에 있던 7월은 건기의 시작이었다. 남쪽의 누 떼들이 물을 찾아 북쪽인 마사이마라로 이동하는 계절이다. 남쪽에는 더이상 푸른 풀과 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수백 마리의 누 떼가 허겁지겁 물가로 뛰어드는 장면을 목격했다. 와중에도 얼룩말은 꼿꼿이 고개를 들고 괴상한 철붙이에 타고있는 우리를 경계했다.


문제는 남쪽에 남겨진 사자들이다. 사자는 평균 사흘에 한 번씩 사냥한다. 이 때 사냥에 실패하면 그대로 굶어 죽는다. 때문에 모든 누 떼가 북쪽으로 이동을 하는 이 시기에는, 사자도 어쩔 수 없이 북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즉 이 드넓은 초원은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사자가 아니라 제일 아래에 있는 누 떼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여기서 나는 오래된 경영이론인 게임이론에 나오는 매와 비둘기 게임을 떠올렸다. 이 게임에서는 공격적인 성향으로 상대를 해치면서 살아가는 개체를 매파, 서로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성향의 개체를 비둘기파라고 한다.


사자는 누를 잡아먹고 살아가므로 매파다. 반대로 누는 풀과 물을 먹으면서 스스로 살아가므로 비둘기파다. 그렇다면 매파인 사자는 왜 이 일방적인 게임을 4일에 한 번씩만 벌일까? 그렇지 않을 때의 결과를 예측해보면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만약에 사자가 욕심을 부려서 배가 고프든 말든, 무차별로 누 떼를 죽인다고 가정해보자. 결국 이 초원에는 사자와 같은 매파만 남게 되고,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공멸이다. 더 이상 먹이가 없어진 사자는 굶어 죽는 수밖에 없다. 사자는 누를 죽임으로써 살아가지만, 누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둘은 항상 적정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사자 역시 이러한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관광객은 사자가 재미 삼아 누를 사냥하는 장면을 볼 수 없다. 나는 불과 4m앞에 있던 사자가 내 목을 물어뜯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기만 하던 그때, 이 이론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요컨대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있는 이 거대한 생태계는, 소수의 포식자는 결코 스스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임이론의 한 부분을 복잡한 수학 공식 없이 아주 잘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사회는 어떠한가. 분명 우리는 유아기를 거치는 내내 서로 사랑하고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공멸한 세상이, 인류 역사상 어디 한둘이던가?


인류가 겨우 달에 도달하는 동안, 이 아름다운 생태계는 한 번도 흐트러짐 없이 그 체계를 완벽하게 유지해왔다. 우리가 수 십 년간 교육을 받으면서도 깨우칠 수 없는 것들을, 이 초원의 동물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새삼 느껴진다. 동시에 아프리카에서만큼은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초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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