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탄자니아
와이파이가 무료인 숙소를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는 낮에는 피부가 벗겨질 만큼 싸돌아다니다가도, 저녁이 되면 야외테이블에 앉아 그녀와 채팅 삼매경에 빠졌다. 한 손에는 언제나 500ml짜리 맥주가 들려있었다. 며칠 사이 내 노트북은 만치롯지의 명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지구 어딘가의 가족들에게 반가운 안부를 물었다.
조시가 내 방으로 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만치롯지의 와이파이 소문을 듣고 옮겨왔다고 했다. 룸메이트이기도 하고, 박지성이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광팬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다른 공통점 때문에 금세 친해졌다.
“있잖아 쥬드. 이렇게 아름다운 걸 보다가도 가끔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
“나도. 이런 천국 같은 섬에서 털북숭이 영국 남자와 함께라니..”
“나는 천국이라고도 할 수 없겠는걸. ”
“그래. 그러면 천국으로 가기 100m 전이라고 하자.”
밤마다 열리는 야시장에서 배를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펍에 들러 프리미어 리그를 보고 나면, 우리는 이 낙도가 아닌 그녀들을 그리워했다. 실상 잔지바르에서는 그것 이외의 걱정거리가 아무것도 없었던 거다. 하루에
몇 번씩 바다에 드나들고, 그 경치에 취하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유일한 일이었다
그날도 그런 하루였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산다는 자이언트 거북을 보고, 손만 닿아도 온몸이 파랗게 물 들 것 같은 바다에서 한바탕 놀았다. 실컷 놀았으니 배를 채워야지. 그런데 눈여겨봐 둔 시금치 카레 가게가 문을 닫았다. 천국의 섬에 특이점이 발생한 거다. 할 수 없이 스톤타운의 미로를 한바탕 휘저었지만, 식당들이 죄다 문을 닫았다.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오랜 세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니, 하루에 세 번 알 수 없는 기도문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자주 들렸다.(이슬람교의 기도는 원래 하루 다섯 번이지만, 스톤타운은 새벽과 해가 진 후를 뺀, 하루 세 번 벌어진다.) 인적이 눈에 띄게 적었고, 길거리 상인들도 모습을 감추었다. 마침내 마을에 하나 있는 중국집까지 문을 닫은 것을 확인했을 때,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 이슬람인들이 금식하는 그거 있잖아. 그거 이름이 뭐더라?"
"라마단!"
이런. 신나게 노느라 정신을 놓고 있었던 탓이다. 그 날은 라마단의 시작이었다. 한 시간, 두 시간. 미로처럼 헤매어 봐도,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았다. 정말 지독한 것은 물 한 병 살 구멍가게까지, 아무튼 먹는 것을 파는 곳이라면 어디든 문을 닫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었다. 음식이 허용되는 일몰까지는, 못해도 네 시간은 족히 남았다. 뜨거운 태양 빛에 몸이 탈수 상태가 되어갔다. 거리의 그 많던 사탕수수 주스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 제발. 아무거나 먹을 걸 줘”
“아까 네가 뭐라 그랬지? 천국으로 가기 100m 전? 이제 한 50m 전까지 온 거 같아.”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팠다. 이제 좀 있으면 내 몸과 바닥이 하나가 될 것 같던 그때, 조시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 나가며 한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잠깐. 잠깐! 잠깐! 나 봤어. 당신이 우리 보는 거 봤어!”
건물의 입구에 All Ethiopian Food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어느새 나도 조시 옆에서 문을 두드리며 ‘헬로를 외쳤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히잡으로 온몸을 감싸고 눈만 내놓은 여자가 문을 열었다.
“미안. 오늘은 음식을 팔 수 없어.”
“알아, 알아. 근데 나 지금 너무 배가 고픈데, 어떻게 안 될까? 뭐든지 좋아. 아무거나 팔라고! 아무거나!”
조시의 외침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이슬람의 율법은 전혀 모른다. 그러나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 가르침에 충실했고, 결국 문이 열렸다. 메뉴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잠깐의 기다림 뒤 무언가 코를 긁는 향이 풍겨오자 위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인제라(Injera). 정체불명의 하얀 곡식과 카레 향이 나는 소스, 그리고 고기가 딸려 나온 그 음식을 가리켜 그녀가 말했다. 에티오피아의 주식이란다. 수저가 없다는 사실도 잊은 채, 허겁지겁 먹었다.(인제라는 원래 손으로 먹는 음식이다.) 바닥에 깔린 정체불명의 하얀 떡까지 싹싹 긁어가며, 말 그대로 깔끔하게 해치워버렸다.
후식으로는 에티오피아 전통 커피가 나왔는데, 그걸 마치 보리차처럼 털어 넣었다. 설탕 대신 소금이 딸려 나온 그 커피는, 조금 쓰긴 했지만 막 전투를 끝낸 것 같은 흥분을 가라앉히기에 그만이었다. 일단 급한 불은 껐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 지독한 라마단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그럼 차라리 북쪽 해변 쪽으로 가볼까? 거긴 사람이 거의 안 사니까 괜찮을지도 몰라.”
우리는 스톤타운을 벗어나기로 했다. 항상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던 이름 모를 남자에게 봉고차를 하나 소개받아 곧장 북쪽을 향해 달렸다. 분명 전용이라고 했건만, 그는 가다가 조랑말도 태우고, 우리 안에 든 괴상한 짐승도 태웠지만, 다행히 원숭이는 없었다. 두 시간 가까이 달려 숨 막히는 차에서 내리자 불어오는 바람에서 바다 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방금 깎은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 넣고는 곧장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
잔지바르의 모든 바다는 정말 놀랍도록 아름다운데, 켄드와 비치(Kendwa Beach)는 특히 아름다웠다. 그 화려한 옥빛에 몸을 담그면 머리가 맑아지고, 다리를 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헤엄을 칠 것 같은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쪽배를 타고 인도양 한가운데로 나아갔을 때 벌어졌다. 어느 순간 사공이 보트의 엔진을 끄자 잠시 후 고요한 바다에 물결이 일었다.
“지금이야! 지금! 고! 고! 고!”
이미 입수를 준비하고 있던 우리는 곧장 바닷속으로 뛰어들었고, 그 순간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수십 마리의 돌고래 떼를 목격했다. 이게 진짜인가 싶어서 손을 뻗어 보지만 어림도 없다. 영특하게도 걔 중에 몇몇은, 마치 보란 듯이 크게 원을 그리며 보트 주위를 몇 바퀴 돌기도 했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통에, 방수 팩에 들어있는 카메라 셔터는 한 번도 누르지 못했다.
마침내 파제 해변(Paje Beach)에 이르렀을 때, 그 황홀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끝도 없이 펼쳐진 해변가에는 노천 바와 카페가 줄지어 있었고, 바다 빛을 꼭 닮은 하늘에는 사람들이 연에 매달려 떠다녔다. 조심스레 가격을 물어보니 3시간에 100파운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쳤다, 미쳤어. 경치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가격이다. 대신 우리는 어느 식당 뒤에 펼쳐진 네트에서 비치 발리볼에 도전했다. 어색하게 둘이서 주고받던 공놀이에 한 호주 커플이 등장해 넷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5대 5의 다국적 바치 발리볼 경기가 벌어졌다. 원래 비치 발리볼은 두 명이 한 팀인 경기지만, 이 아름다운 바다를 눈앞에 두고 그런 체계는 거추장스럽다.
한 편의 청춘 드라마 같은 한 때가 지나고, 우리는 자연스레 다 같이 맥주잔을 기울였다. DJ가 만드는 비트가 아닌, 누군가가 들고 온 오래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저마다 맥주병을 손에 들고 몸을 흔들어댔다. 온 백사장이 클럽이고, 파티장이다.
조시와 나는 그 천국에서 삼 일을 더 머물렀다. 놀랍게도 잔지바르는 날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천국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썰물로 아직 물이 들어차지 않은 아침의 파제 해변은 바로 그 궁극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숨이 멎었고, 그다음에는 황홀했다. 멀리 수평선에는 누군가 물감을 떨어트린 것처럼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였고, 해변에서는 천사의 날개같이 맑고 투명한 물이 찰랑거렸다.
우리는 여전히 각자 두고 온 사람을 그리워했지만, 그 풍경은 열대 바람에 날려온 민들레 씨앗처럼 달콤하고 따뜻했다. 그늘에 쉬고 있던 조시 곁에 다가온 꼬마 아이가 그의 선글라스를 빼앗아 쓰고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 미소가 꼭 백사장 모래 같이 희고 아름답다.
“라마단을 피하는 완벽한 방법이었어. 멋진 계획이었어, 쥬드”
“천만에. 내 스케줄에 영국이 없어서 아쉽네.”
“뭐 언제든지 바뀌면 맨체스터로 와. 환영해줄게. 지성 박은 가고 없지만.”
그렇게 우리는 천국에 작별을 고했다. 조시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고, 나는 다시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기 위해 다르살람으로 가는 배를 탔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떤 여행보다도 강렬하고 짙은 추억을 만들었다. 다시 육지로 가는 배 안에서, 나는 이 추억에 어울릴만한 격언을 찾느라 시간을 보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아무려면 어떤가. 여기가 잔지바르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