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하쿠나 마타타의 의미

잔지바르, 탄자니아

by JUDE

“자본주의의 힘을 보여주마!”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야생의 아프리카에서 나뒹군지도 어느덧 20일, 오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간판도 없는 거리의 햄버거(라고 부르기로 했다)로 끼니를 때우며, 최소 6인 이상의 도미토리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이 앞에 차원이 다른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부터 아프리카 동쪽 탄자니아 수도 다르살람(Dar es Salaam)에 이르기까지, 무려 1800km를 달리는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의 이름은 '타자라'. 공식 운행시간은 44시간이지만, 삼 일째에도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전설이 있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낡은 철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야생동물의 무리 등의 이유로 연착에 연착을 거듭하다 가뿐히 삼일을 넘기고, 사흘째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흡사 수행을 마친 석가모니와 같은 상태가 된다고 했다.


이럴 때 돈은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한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돈을 내고, 다르살람으로 가는 직행 비행기를 탔다. 혼자서 그 엄청난 시간을 버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거다. 덕분에 나는 좀 더 일찍 천국에 닿을 수 있었다. 잔지바르(Zanzibar).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어버린 이 천국에, 동아프리카의 진주라는 칭호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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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서 배를 타고 두시간 거리인 섬은 선착장에서부터 때깔이 달랐다. 이제는 완전한 여름이 되어버린 아프리카의 태양에 반사된 바다는 진주처럼 빛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등에 매달린 18kg짜리 배낭의 무게도 잠시 느껴지지 않았다. 크고 작은 꼬마 아이들은 쉬지 않고 해변에서 텀블링을 해댔다. 조금 떨어져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등이 벌게진 백인들이 연신 맥주잔을 부딪친다.


유일한 단점은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있는 여행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새 다가온 남자는 유난히 흰 이를 드러내며 온갖 정보를 쏟아냈다. 친구가 하는 식당, 아버지 친구가 하는 숙소, 동생이 일하는 여행사… 말만 들어서는 그는 이 스톤타운(잔지바르에서 가장 큰 마을의 이름)의 모든 상권을 손에 쥐고 있는 듯했다.


“하쿠나 마타타. 마이 프렌드. 곧 날 찾게 될 거야.”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저 한 번 거절했을 뿐인데, 그는 너무나 쉽게 발을 뺐다. 이 섬은 삐끼들마저도 아름다운 것인가라는 착각에 빠진 것도 잠시, 나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바다가 보이는 길을 벗어나 스톤타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하늘이 닫히고 벽이 옥죄어 왔다. 사람 두세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통로로 이루어진 스톤타운의 골목길은 한마디로 미로였다



인포메이션에서 받은 지도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 좁은 골목에서는, 방향도, 주소도, 가게 이름도,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종종 얽히고설킨 전깃줄이 하늘을 덮고,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가린 채 눈만 내놓은 여인들이 골목에서 튀어나오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30분을 헤매고 나니 선착장에 있을 때는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던 배낭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러왔다. 골목길을 몇 번을 돌고 돌아 내가 지금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인지, 새로운 곳인지조차 알 수 없을 때, 아까 봤던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좀 어때? 쥬드.”


졌다 졌어. 결국 나는 내 이름까지 기억한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잃었어.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대체!”

“하쿠나 마타타. 니가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디로 가는가가 중요하지. 내가 아는 곳으로 데려다줄게. 친구가 하는 곳인데 좋은 곳이야”


이 자식. 아까 분명히 숙소는 아버지 친구가 한다고 그러지 않았나?


“그 하쿠나 마타타라는 게 무슨 말이야?”

“노 프로블럼.”

“아무튼 나는 이미 숙소를 예약했고, 돈까지 지불했기 때문에 내가 정한 곳으로 가야 돼.”


녀석은 분명히 고개를 끄덕여놓고는 끝내 자기가 원하는 곳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여기가 아니잖아. 만치 롯지라고 말했어 나는 분명.”

“왜 거기에 가려고 하는 거야?”

이미 돈을 냈다고. 아까도 얘기했잖아!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도착한 만치롯지는 내가 헤매던 곳에서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손가락을 비벼대는 그에게 마지못해 팁을 건넸다. 그는 곧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쿠나 마타타라고 말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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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갈아입고 다시 골목길로 나섰다. 아까와 달리 길을 잃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걸으니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삼 주 만에 맡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카페, 특이한 무늬를 잔뜩 새긴 가죽 공예품들, 어디에나 있는 티셔츠와 기념품 가게, 팔찌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 뜬금없이 위치한 프레디 머큐리 박물관. 스톤타운의 건물은 오로지 넷 중의 하나다. 기념품 가게, 여행사, 구멍가게, 그리고 식당. 다른 세상에서 온 여행자들의 혼을 빼놓는 새롭고 특이한 것들이 그 좁은 골목 좌우로 가득했다. 여기저기서 하쿠나 마타타라는 말이 들린다. 사람들은 습관처럼 그 말을 내뱉었다. 그건 결코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거 너무 비싸요.”

“하쿠나 마타타.”

“저기... 분명히 치킨이 들어간 카레를 시켰는데요?”

“하쿠나 마타타”


이런 식이다. 값이 비싸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문제가 없다며 입을 닫아버린다. 관광객에게 길들여진 것인지, 어떤 것이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낙천적인 천성인 것이지. 만약 내가 돈이 없어서 낼 수 없다고 말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지갑은 열릴 수밖에 없다. 내가 스톤타운에서 깨우친 교훈은, 마음에 든 물건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같은 가게로 돌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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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골목 탐험을 하다 보니, 더 이상 익숙한 가게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넓게 트인 공간 한가운데 거대하게 솟은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포르투갈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사용했던 요새라는 그 성벽이, 스톤타운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다.


해가 넘어갈 시간이 되자, 광장으로 사용되었을 계단식 벤치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던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넓은 공터에 열린 벼룩시장은 닫을 채비를 서두른다. 바닷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수면에 반사된 햇살이 여전히 눈부셨고, 둥둥 떠 있는 조각배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하쿠나 마타타”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온다. 동시에 혼자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시작. 나는 왜 이 섬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는지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건 바로 잔지바르에 있는 한, 당신은 괜찮다는 뜻이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또 한 번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길잡이를 요청했다. 이번에도 헤어짐의 순간에 그는 손가락을 비벼댔고,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잡히는 것이라고는 동전이 아닌 5달러짜리 지폐뿐. 할 수 없이 빳빳한 새 지폐를 내밀자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드물게 영어를 아예 못하는 모양이라 최대한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남자가 다시 대답했지만 나는 결국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쿠나 마타타”


그는 그 말과 함께 머뭇머뭇하던 내 손에 다시 지폐를 쥐여주고는 사라졌다. 나는 이 섬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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