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심벨, 이집트
열차는 밤새 13시간을 꼬박 달려 아스완(Aswan)에 도착했다. 좁은 침대칸에서 밤을 보낸 탓에, 배낭을 메니 몸이 휘청거렸다. 오전 9시에도 기차역 밖은 열기로 숨이 막혔고, 사람도 없는 거리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출렁였다. 한국에서 온 중년부부를 만난 건 바로 그때였다.
“아이고. 이런 데서 고향 사람을 다 만나네. 반가워요. 카이로에서 왔는가베?”
고향을 떠난 지 4년이 되었지만, 내 말투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나 보다. 결혼 기념일을 맞아 이집트를 여행 중이라는 그 부부와 함께 어느 호텔에 둥지를 틀었다. 어차피 이름만 호텔일 게 뻔하지만.
“근데 총각. 식사는 어떻게 할 거예요?”
“글쎄요. 대충 아무거나 무야죠 뭐.”
“아이고. 그라지 말고 좀 있다가 우리 방으로 와요. 젊은 총각이 아무거나 무가 되나. 이 더븐데.”
대체 얼마 만에 해보는 우리말 대화던가. 그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샤워를 마치고 부부의 방으로 가보니 놀라운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은 밥에 뜸을 들이는 냄새가 분명하다. 한쪽에는 냄비가 끓고 있었는데, 바깥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그 빨간 국물은 틀림없는 고추장이다. 밥솥과 버너를 들고 다니는 여행이라니. 맛 좀 보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한 숟가락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른다. 정말이지 고추장은 신이 내린 양념이다.
“와, 이걸 다 들고 여행하셨어요?’
“우리 나이 되면 있지요. 밥을 무야 힘이 난다니까.”
한참 이야기 중에 세계일주라는 말이 나오자 부부의 눈이 커졌다. 나의 용기와 젊음이 한없이 부럽다고 하셨다. 뜻밖의 질문이 날아들기 전까진 그런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동주 씨. 우리 둘째 딸이 대학생인데, 야는 생전 집 밖으로 나가질 안 해. 이걸 우짜면 좋을까?”
유학이든 어학연수든,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데도 전혀 관심이 없단다. 이집트도 같이 오려고 했는데 딸이 한사코 거절했다고 하니 대단한 히키코모리인 듯했다. 전문대 졸업 후 힘들게 생활한다는 첫째, 이제 대학생이 되었지만 밖으로 나돌지 않는 둘째. 보내주겠다는데도 싫다는 딸과 가지말라는 데도 기어이 떠나버린 아들의 이야기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얼굴도 모르는 두 딸의 인생상담을 하게 되었지만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천방지축으로 나도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다. 본인이 그것을 원한다면 모를까. 결국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식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아내 보이는 것이 아닐까. 강요도 제재도 하지 않지만 부부가 함께 웃고, 떠들고, 여행하는 그런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딸도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적당히 끝이 났다. 내일 새벽부터 함께 아부심벨에 가야 하니까. 밥 짓는 냄새가 잔뜩 몸에 밴 그 날 저녁, 나는 여행을 떠난 지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부심벨로 가는 투어는 새벽 2시에 출발했다. 몇 번인가 아부심벨로 가는 관광객의 차량이 게릴라들에게 납치된 적이 있단다. 그 후부터 모든 투어 회사의 출발시각이 맞춰졌고, 호위하는 경찰차가 함께 이동한다. 창밖은 아직 시커먼 사막의 밤이었고, 졸린 머리가 창문에 부딪히는 것도 모른 채 다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7시가 조금 안 된 시각, 막 유적지에 도착한 참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태양 빛이 벌써 예사롭지 않다. 이럴 때도 한국 사람들은 티가 난다. 잠에서 덜 깬 몸을 움직여 입장권을 끊고 걷는 속도가 남다르다.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다. 제일 먼저 도착해서 아무도 없는 아부심벨의 모습을 찍어야지. 우리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첫 입장을 다른 한국인에게 내주었다. 막상 신전 앞에 도착하니 머리 속에 가득했던 생각은 하얗게 날아갔고,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거대한 조각상 네 개가 사방을 압도한다. 조각상의 주인공인 람세스 2세의 얼굴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마주한 것처럼 선명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무너져 내린 두 번째 조각을 재건하지 않는 게 이해가 갔다. 네 개 모두 이렇게 반듯했다면, 오히려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복제품 같았을 거다. 한발 늦게 도착한 여행자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이 사방에 메아리를 만든다.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었을 때는, 이미 단체여행객이 신전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람세스 2세는 상, 하로 나누어졌던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한 파라오다. 그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신전을 만들고 자신의 모습을 새겼다. 석상 사이사이에 작은 크기의 왕비도 새겨져 있다. 대체 그는 얼마나 위대했길래, 스스로 이런 석상을 남겼던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은 신전 내부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석벽에는 람세스 2세가 적을 쳐부수고 이집트를 통일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벽화로 가득하다. 하나하나 움직이는 것처럼 선명했다. 특히 전차에 올라탄 람세스 2세가 활을 겨누자, 적들이 벌벌 떨고 있는 장면은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 후손은 둘 중에 하나는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대단한 집념의 예술가였음이 틀림없다.
밖으로 나오니 오른쪽에 대신전의 4분의 1 정도 크기의 소신전이 보였다. 왕과 왕비의 모습이 번갈아 새겨진 소신전 내부에서는 부부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대신전에 비하면 감흥이 덜하긴 했지만 세상을 다 가졌던 위대한 왕이 부부의 이야기를 벽화로 남겼다는 것이 재미있다. 인류 역사상 여자에 빠져 궁전을 지었던 왕들은 대부분 혹세무민 끝에 몰락의 길을 걸었는데 람세스 2세는 예외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희대의 순정남이었던 걸까.
엉뚱한 생각을 끝내고 부부와 함께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에 앉았다. 사막의 바람이 불어오자 이번에는 이 위대한 신전을 처음 발견했을 누군가의 기분을 상상했다. 사막의 바위산 뒷면에, 이런 엄청난 조각이 숨겨져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내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가 문득, 진시황의 병마용에 다녀온 얘기를 하신다.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발견한 병마용은, 전설로만 남을 뻔했던 이야기들을 수천 년을 거슬러 20세기로 소환했다.
“근데 나는 참, 진시황 이 양반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그 엄청난 병마용들을 보고 있으면,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진시황이나 람세스 2세나 모두 대륙을 최초로 통일하는 업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한쪽은 희대의 폭군으로, 한쪽은 오늘날까지 신으로 추앙받는 위대한 왕으로 남았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아방궁을 짓고 주지육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진시황과 달리, 왕과 왕비의 이야기를 신전으로 남겨 백성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했던 람세스 2세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 아닐까.
나도 훗날 자식을 가진다면, 지금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뒤따르는 사람들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아낼까. 다시 한번 사막의 바람이 불어왔고, 내 시선은 여전히 서로 등을 맞대고 앉은 부부에 머물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