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가다, 이집트
과연, 소문대로 후루가다(Hurghada)는 달랐다. 온통 흙먼지 뿐인 이집트에서 그나마 풍요로운 곳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홍해를 따라 늘어선 이국적인 리조트들과 전 세계의 다이버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블루홀. 무엇보다 푸른색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했다. 12시간을 달리는 버스에 오를 때까지도, 큰 기대는 들지 않았다. 어제밤에도 침대에 누워 눈이 감기려고 하는 순간 땀방울이 흘러들어 잠에서 깨야 했으니까. 다행히 버스에서는 밤새 돌아가는 에어컨 덕에 땀은 나지 않았다.
누군가 이집트에서 가장 상상하기 힘든 것이 뭔지 물어본다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친절한 바텐더가 건네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음미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막에 이슬람 문화가 더해진 이집트는 여행자에게 총체적인 난국이다. 마트에서 술을 팔지도 않거니와, 운이 좋아 술을 파는 곳을 찾더라도 파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물론 샀다고 해서 대놓고 마실 수도 없다.
후루가다는 해방된 도시 같았다. 사람들은 자정이 넘은 밤에도, 불이 켜진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잔을 부딪치고, 열린 창문 밖으로는 시샤(물담배) 연기가 쉬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이슬람 국가에서 이래도 되는 거냐고 내가 소리치고 싶을 지경의 풍경이다. 사기를 당하는 것 말고는 돈을 쓸데가 없는 이집트에, 여행자의 지갑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열린 것이다.
20킬로 배낭을 맨 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점원에게 동전을 내밀자, 물기를 머금은 맥주캔이 내 손에 들려졌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캔을 따서 목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씁쓸한 탄산이 식도를 간지럽히는 게 틀림없는 맥주다. 숙소를 향해가는 내내, 나도 모르게 국경을 넘은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맥주 한 잔에 곯아떨어졌다가 아침에 눈을 떠보니 창밖에 푸른색으로 고여있는 물이 보였다.
마이애미에서나 볼 법한 빌라에 딸린 수영장이었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의 하루는 모두 똑같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고 수영장에서 잠시 몸을 푸는 동안, 모하메드(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집트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은 대체로 이름이 모하메드였다.)가 갓 지은 쌀밥과 반찬으로 된 아침상을 차린다. 쾌적한 와이파이로 한국의 누군가와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각자 원하는 다이빙 포인트를 향해 출발한다. 오전에 한 번 입수한 뒤 선상 뷔페를 먹고, 오후에 두어 번 입수를 마치면 어느새 해 질 녘이다. 그리곤 숙소로 돌아와 맥주잔에 시샤 한 모금이면, 몸은 금세 곯아떨어지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만 주워 담은, 편의점 도시락같이 단순하고 마약 같은 삶이다.
“여기 얼마나 있었어요?”
“두 달은 된 것 같은데요?”
“예? 후루가다에 만요?”
“있어 보면 알 거예요. 여기, 완전 블랙홀이에요.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가. 매일 풍덩거리기만 하면 되니...”
이런 대화가 몇 번이나 오고 갔다. 심지어 여기까지 와서 피라미드를 보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피라미드가 밥먹여 주냐는 듯이. 후루가다는 여행자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 온통 푸른색의 블랙홀. 발을 들이자마자 빠져나가고 싶은 카오스와 달리, 행여 벗어나고 싶어도 자꾸만 빨려드는 것이다. 그 중심에 홍해가 있다. 피라미드도 내팽개친 사람들이 여행내내 후루가다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홍해가 지나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잔지바르가 제주도의 푸른 밤이라면, 후루가다는 불타는 홍대 놀이터 같다고 할까. 이 아름다운 밤을 보내기 싫어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빌라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모두 비슷한 냄새가 났다. 방랑이 몸에 밴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특유의 바람 냄새 같은 것 말이다. 다이빙 버디를 맡은 '수진쌤'도 그랬다. 내가 세계일주 중이라는 말에도 ‘흐응~ 그래요?’정도의 말 뿐이었는데, '너도 그러냐'는 정도의 반응이었다.
뭍에서는 햇빛이 있는 자리를 쫓아 느릿느릿 움직이던 수진쌤은 바닷속에만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내 집처럼 빠르게 물살을 가르는 그녀의 등 뒤를 쫓기만 하면 별천지 같은 바닷속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를 설명하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렵다. 비교대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속이 울렁거린다. 너무 신비롭기 때문이다.
후루가다의 바닷속은 거대한 정원 하나가 통째로 가라앉은 것 같았다. 나는 꼬박 삼일을 하루에 두 번씩, 그 정원에 다녀갔다. 그 외에는 거의 완벽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저녁이면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고, 거리의 빈백에 드러누워 시샤 연기를 내뿜어댔다. 이대로 여행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10시간을 돌아가 카이로에서 비행기를 탄들, 결국은 어느 모래바람이 부는 곳일 뿐이다. 살짝 중동의 도시를 떠올렸을 뿐인데 콧속이 간질간질해지더니 재채기가 날 것만 같았다.
낮 보트가 만석이던 날에는, 느긋하게 피자 한 조각을 씹으며 낮을 보냈다. 모하메드가 예약에 차질이 생긴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리곤 네시 즈음, 수진쌤과 함께 시내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리조트를 방문했다. 야간 다이빙을 위해서였다.
차가 모래가 휘날리는 사막길을 달렸다. 그러나 내려서 본 것은 푸른 바다 앞에서 눈부신 자태를 자랑하는 야자수였다. 5차 교육과정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기이하다고 생각할 풍경이었다. 해가 지자 '시타델'이라는 이름처럼, 거대한 성벽 아래로 수 백 개의 불빛이 밤바다를 비추기 시작했다. 우리는 몰래 잠입하는 암살자처럼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입까지 물에 잠겼을 때는 눈만 내놓은 채 그 시선에 잠시 머물기도 했다.
문명이 만들어낸 그 불빛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바닷속을 비추지는 못했고, 우리는 마치 눈을 감은 것 같은 칠흑 속으로 나아갔다. 오로지 랜턴의 빛에 의지해 가는 도중에 갑자기 눈앞에 무언가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플랑크톤이 앞서가는 수진쌤이 만들어낸 물살에 흔들려 별처럼 반짝거린다.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오리발을 벗더니 거칠게 아래위로 흔들어댔다. 그러자 수십 개의 불빛이 검은 바닷속에서 피어올랐다.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어, 온 바닷속이 울리는 듯했다. 더 큰 물결을 만들면 만들수록 빛은 더 멀리 퍼졌는데, 마치 장작불이 타다가 툭 하고 떨어졌을 때 잠시 피어나다 사라지는 찰나의 불꽃 같았다.
“같이 흔들라니까 보고만 있으면 어떡해요. 아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다시 수면으로 올라오니 수진쌤이 볼멘소리를 한다. 미안해할 틈도 없이, 해가 진 사막 하늘에 펼쳐진 별에 시선을 빼앗겼다. 다이빙 슈트를 베개 삼아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운 얼굴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그 별을 바라보고 있을 셈이었다.
“그래 가지고 남은 여행은 어떻게 한대?”
“그러게요. 아 그냥 하지 말까.”
여행을 떠난 지 40여 일, 나는 아프리카의 반대편 끝에 다다랐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최고의 순간에 위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