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천공항에 도착해 TV가 보일 때마다 날짜를 확인했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건지, 오늘이 며칠인지,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나온 것처럼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시간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가 언제나의 환한 미소로 안겨 왔다. 그 따뜻함을 느끼고서야 지난 두 달이 다른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 아님을 실감했다. 집 안의 모든 것이 내가 떠나기 전과 다를 바 없었고, 엉망이 된 것은 책상 위에 놓인 그녀의 노트뿐이었다. 사건이 터진 그 날부터 오늘까지 부동산과 변호사, 집주인을 통해 정리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수첩을 집어 들자 그 무게가 바닥에 쓰러진 배낭보다 무거웠다.
그건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일어났던 일 중에 가장 큰 사고다. 여행 중에 강도나 소매치기, 심한 경우 열차의 충돌이나 지진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전 재산을 날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지난 1년 내내 얼굴도 모른 채 살았던 이웃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당장 다음날 잃어버린 핸드폰을 다시 사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다녔다. 정돈되지 않은 두리뭉실한 설명 속에서도 한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소송을 걸지 않으면, 당장 며칠 내로 집에서 나가야 한다. 물론 전세 보증금은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전세 계약서 자체가 무효니까. 계약서에 찍힌 임대인 도장이 문제였다. 계약서에는 하나 같이 그 건물을 지었던 건설사의 법인 도장이 찍혀있었다. 나뿐 아니라 11명의 피해자 모두 건물을 지었다는 건설사 대표를 만나 직접 도장을 찍었다. 등기부 등본에 그 대표의 이름이 소유주로 적혀있으니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실제로 수년간, 수십명의 세입자들이 별 탈 없이 살다 나갔다. 문제는 그 건설사가 파산하면서 발생했다. 건설사가 시공사에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고, 결국 회사가 파산하면서 법인으로서의 효력이 사라졌다. 졸지에 우리는 집주인과 계약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사라져 실체도 없는 회사와 계약한 셈이 돼버렸다. 파산한 건설사에 채무가 있던 시공사는 건물을 통째로 소유하게 되었고, 집주인도 아닌 엉뚱한 도장이 찍힌 계약서를 보유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줄 의무가 없다. 그들에게 우리는 건물을 '불법점유'하고 있는 범죄자일 뿐이었다.
며칠 동안 서울 시내를 샅샅이 뒤진 끝에 한 변호사를 선임했다. 수 십 명의 변호사 중 승산이 있다고 말한 유일한 변호사였다. 당장 그다음 날 수백만 원의 수임료를 지급했다. 이집트에서 500원을 아끼기 위해 치즈가 들어있지 않은 샌드위치를 먹던 게 엊그제였는 말이다. 현 집주인에게 민사 소송을 거는 동시에, 망해서 없어진 건설사 대표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회사가 진 채무는 대표 개인이 갚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형사고소가 최선이었다.(법이 그렇다)
난생처음 검찰청에서 피해자 진술을 했고, 그 날 그녀는 크로아티아행 비행기 표를 취소해야 했다. 그녀의 핸드폰 달력에 하트 세 개가 붙어있는 날이었고, 크로아티아에서 감동의 재회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쯤 나는 유럽에 있어야 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와 괜찮다고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변호사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세계일주를 떠난 것에 대한 자책감, 아니 죄책감, 부끄러움이 한데 뒤섞여 엄청난 공허가 찾아왔다. 비 오는 나이로비에서 바닥의 바퀴벌레가 얼마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지 지켜볼 때보다 더욱더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삼주 째가 되었을 때, 다시 구직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면접관을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할까. '회사가 힘들어서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갔는데, 사기를 당해서 전 재산을 날렸습니다'라고 해야 할까. 의미도 진심도 없는 이력서를 써서 올렸다. 방 안에 있는데도 불과 얼마 전 내 코를 간지럽히던 모래 냄새가 너무 생생했다. 오른손에는 악마의 수영장으로 이끌었던 흑인 청년의 희고 커다란 손바닥 느낌이 남아있었다. 폭포수에 몸을 담그던 순간의 차가운 느낌도 또렷했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아직 스페인에서 브라질로 가는 항공권이 남아있었다. 크로아티아에서 그녀와 휴가를 보낸 뒤, 스페인에서 준과 함께 브라질로 갈 계획이었다.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대면 사건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불평이 돌아왔다. 쓴소리를 삼키고 몇 가지를 물었다. 소송에는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고, 민사는 원고가 직접 법원에 참석할 일이 없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번 선택을 해야 했다.
"있잖아. 갇힌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제일 잔인한 일이 창밖을 보여주는 거래"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그녀는 내 말을 곧장 알아차렸다.
“내가 지금 떠나면 내 인생을 포기하는 걸까?”
“아니야, 오빠. 지금 다시 급하게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금방 지칠 거야. 그리고 이런 기회는 한 번이면 족해. 두 번은 오지 않아.”
세계일주의 꿈이 한여름의 일탈로 끝날 위기였던 그때, 그녀는 다시 한번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한 달 만에 다시 배낭을 멨다. 두 번째 이별은 두려웠지만 슬프지는 않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