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데 자네이루, 브라질
SNS 세상 속의 준은 영락없는 파리지엥이었다. 느닷없이 파트너를 잃고 혼자가 됐는데 말이다. 아니, 너무 잘 지내서 질투가 났다. 녀석이 홀로 터키를 거쳐 유럽에 닿을 동안, 5년 전 유럽에 갔던 아려한 기억을 방구석에서 더듬어야 했다. 결국 그렇게 두 번째 유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리는 리우에서 만나기로 했다.
수월했다는 표현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 이별은 그랬다. 그녀는 울지 않았고 나는 그녀의 무한한 신뢰에 큰 행복감을 느꼈다. 막상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는 두 번씩이나 그녀를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바르셀로나에 머문 며칠을 대부분 술로 보낸 건 그 때문이다. 마침내 리우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달력이 10월로 넘어가 있었다.
양털을 떼다가 대충 여기저기 던져놓은 것 같은 구름, 남반구의 하늘. 비행기에서 마주친 리우의 하늘은 영락없이 그랬다. 공항에 내려 축축한 열대의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내 기억은 스물다섯 첫 해외 여행지였던 호주를 더듬었다. 유난히 뜨거운 태양, 낮게 깔린 구름, 축축한 나무의 냄새. 모든 것이 8년 전의 케언즈를 떠올렸다.
한편 도시의 모습은 케언즈와는 전혀 달랐다. '1월의 강'이라는 이름처럼, 리우 데 자네이루 어디에도 강이 흘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시선을 따라 강이 흘렀고, 강을 따라 이어진 공원에서는 어김없이 풋살 경기가 한창이다. 열정, 혹은 정열의 나라. 브라질, 특히 리우는 흔히 이 두 가지 단어로 묘사된다. 그러나 한국에 살면서 그 실상을 듣거나 본 적은 없다. 웃통을 벗고 벌어지는 풋살경기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1년 내내 사바나의 태양이 작열하는 땅'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갔던 아프리카와 달리, 남미는 말 그대로 미지의 세계였다. 이 땅에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전혀 몰랐다. 생각나는 건 이름에 '호' 자가 들어간 축구선수들의 요란한 세리머니뿐이었다.
강이 끝나고 마침내 바다가 보이자 버스에서 내렸다. 말로만 듣던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변이었다. 잠시 거닐까 싶었지만 어깨끈을 쥔 손이 금세 축축해졌다. 20킬로 배낭을 메고 코파카바나를 거니는 건 열정이 아니라 멍청한 짓이다. 예약해둔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녀에게 무사 도착을 알리고는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밖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자 슬슬 불안해졌다. 핸드폰으로 몇 번이나 준과 주고받은 메일을 확인했다. 주소는 틀림없었다. 해 질 녘이 되자 나는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남아공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젖은 걸레 냄새가 나던 방문이 활짝 열린 건, 기어코 왼손 검지에서 피를 보고 난 직후였다.
“야. 빨리빨리 안 댕길래?”
“동주야! 진짜 왔네. 얼마만이냐?”
시커멓게 그을려 더 못생겨진 얼굴의 주인과 포옹을 나눈 순간 깨달았다. 이 여행을 내가 얼마나 꿈꿔왔는지. 한국에 있던 한 달 내내, 마음속 어딘가에 ‘두 남자의 청춘여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에게 벌어진 일은 분명 큰일이었지만, 세계일주라는 꿈은 손톱 밑에 든 가시처럼 계속해서 나를 찔러댔다. 이 못생긴 얼굴이 이렇게 반가운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축배를 들었고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준에게 알렸다. 운이 없다거나 잘되길 바란다거나 따위의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은 그녀에게 잘 하라고 끝났다. 나 때문에 마음 졸였을 얼굴이 떠오르자 또 가슴이 물컹해졌다. 그날 밤은 마치 셋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이야기로 한가득 이었다.
리우를 제대로 마주 보게 된 것은 다음날이었다. 우리는 그 유명한 예수상이 있는 코르코바도(Corcovado) 언덕을 단숨에 뛰어올라, 리우의 햇살을 마음껏 즐겼다.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찬 사람들이 팔이며 옆구리를 마구 찔러댔지만, 그 요란함이 싫지 않았다. 물론 예수상은 내 시선을 채 5분도 끌지 못했다. 코르코바도 언덕의 진짜 백미는 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바다와 산과 도시가 어우러진 그 낯선 풍경 말이다.
언덕에서 내려온 우리는 산타 테레사(Santa Teresa)라는, 울림이 좋은 이름을 가진 동네를 찾았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트램 길이 그대로 남아있는 옛 골목길을 따라, 아늑한 정원 아래로 향긋한 커피 냄새가 맴도는 정겨운 곳이었다. 그렇지만 준과 나는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아름답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일본이라면 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는 브라질이다. 한국에서는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고, 나는 며칠 전 전재산을 날렸다. 그런 사람의 목마름을 충족시킬 낙원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파도가 치고 헐벗은 사람들이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우리는 해변으로 향했다. 하루키의 소설에도 등장한 적 있는 이파네마(Ipanama) 해변이었다. 와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파네마만큼 여행자와 현지인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곳은 드물다. 가무잡잡하지만 흑인도 백인도 아닌 생김새의 사람들은 죄다 헐벗었다. 속옷과 겉옷의 구분이 없는 그들 틈에서, 온전히 복장을 갖춘 이들은 관광객이라는 딱지를 등에 붙이고 서성거렸다.
실은 바닷가에 몸이라도 한번 담가 볼 생각이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카멜레온처럼 날뛰는 눈동자를 가리기 위해 급히 선글라스를 썼다. 그 크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선 그녀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슬퍼졌다. 이럴 때는 옆에 있는 '못생긴 얼굴'이 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파나마에서 코파카바나까지 이어지는 해변 길을 어슬렁거리면서 몇 시간동안 감상평을 쏟아냈다. 브라질까지 와서 한국에서도 찾지 않는 피자헛을 점심으로 선택한 것만 빼면, 완벽했다.
태양이 한쪽으로 기울 즈음에는 팡데아슈카르에 올랐다. 리우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장소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괴상하게 생긴 그 봉우리는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봤던 바로 그 언덕이었다.
케이블카를 두 번 타야 도착하는 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른 뒤였다. 하늘, 바다, 태양, 세 가지가 섞여 만들어 내는 그러데이션의 중심에 선 도시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빛이 났다. 곧 태양이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개미 떼처럼 모여든 사람들 틈을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리우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우리뿐 아니라 모여든 모든 사람이 숨소리도 죽인 채 그 모습을 감상했다. 불가사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예수상도 그 절묘한 색감에 물들어가자 그저 아름다웠다. 태양광을 가득 받아낸 두 팔이 곧 움직일 것처럼 일렁인다. 어딘가의 스위치를 누르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며 왔다 갔다 하는 준의 뒤통수에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순간 못생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길 잘했지?"
순간 그녀인지 준인지 헷갈렸다. 팡데아슈카르에 오른 것을 말하는 건지, 다시 떠난 것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못생긴 얼굴에 초점이 잡히자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준과 보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흘렀다. 녀석이 새 차를 산 어느 금요일 저녁, 느닷없이 나타나 대부도까지 가서 술을 먹고 기절했던 일, 후쿠오카에서 유카타를 입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밤새 마시다가 기절했던 일, 한라산 정상에 오르고 난 밤, 숙소에서 술에 취해 싸웠던 일. 다시 몇 년이 지나면 오늘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해졌다. 동시에 오늘 만큼은 술 때문에 기억에서 날려버리는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알코올 중독자 친구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