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데 자네이루, 브라질
“야. 연락 제대로 한 거 맞아?”
“맞아. 근데 이거 연락이 안 되니까 미치겠네…”
몇 번을 확인해도 분명히 주소는 맞다. 그러나 철문 너머 아파트 경비원은 벨을 눌러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했다.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 말이다. 브라질에 와서 가장 놀란 것 중의 하나는, 엄청나게 비싼 물가다. 지하철이 1,800원, 어지간한 식사는 길거리에서 먹어도 만원이 기본이다. 방금 탄 택시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만원이 나왔다. 꼭 물가 때문만은 아니지만 리우에서 첫 카우치 서핑을 시도하기로 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호스트가 나와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어야 한다.
“일단 근처에 맥도날드라도 가자. 서 있는 것도 힘들다.”
시간은 이미 저녁 8시 반. 해는 졌고, 약속 시간은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맥도날드를 찾아가는 동안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연락이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밤에 저 무거운 가방을 메고. 택시를 타고 원래 숙소로 돌아가야 하나. 애초에 모르는 사람을 집에 재워준다는 게 웃기지 않나. 다리가 풀린 상태에서 20킬로 배낭을 메고 거리를 헤매는 상상도 졸음을 막지는 못했다. 맥도날드에 도착해 앉자마자 무섭게 잠이 쏟아진다. 준의 핸드폰이 울린 것은 밤 10시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야. 왔다 왔어. 지금 집에 있으니 오래.”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반가움보다는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낯익은 아파트 앞에서 잠옷 바람에 눈을 비비고 있는 여성과 마주했다. 호스트인 프리실라였다.
“미안 얘들아. 피곤해서 퇴근하자마자 잠들어 버렸어.”
너무나도 태연한 대답. 대체 얼마나 피곤하면 약속 시간을 알면서 잘 수 있는 걸까. 다행히 두 개의 매트리스가 준비된 걸 보니 까먹은 건 아닌가 보다. 그 외에는 가구랄 것도 없이 그저 빈 공간에 가까운 집이었다. 짐을 내려놓자 몸은 가벼워졌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무엇보다 너무 졸렸다.
“준이랑 쥬드랬지? 오늘 밤에 호스트 파티가 있어. 이미 한창일 테니 얼른 준비해.”
그녀의 입에서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나왔다. 온종일 흘린 땀도 땀이고, 저 무거운 배낭을 메고 돌아다닌 지 두 시간이 지났다. 금방이라도 닫힐 것 같은 눈꺼풀을 치켜뜨고 대응책을 논의 중인데 그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잉글리시! 영어로만 말할 것. 그게 이 집의 유일한 규칙이야. 불공평하잖아.”
“그… 그래.”
올해 스물여섯이라는 프리실라는 큰 입으로 짓는 미소가 매력적인 아가씨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화장을 한 것처럼 긴 속눈썹과 깊은 눈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입만 열면 사람이 바뀐다. 미소지은 입에서 걸쭉한 단어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왔다. 가장 즐겨 쓰는 단어는 'ass hole'인데 주로 준에게 썼다. 그런 점이,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브라질 사람이라는 위화감을 쉽게 없애주긴 했다.
결국 밤 11시에 택시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코파카바나 해변까지 걸었다. 둘이서 택시를 타고 온 길을 왜 셋이 걸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해변은 고요했다. 조명은 드문드문했고 들리는 것은 파도 소리뿐이다. 프리실라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 사이 준의 옆구리를 찌르며 어디서 이런 돌아이를 호스트로 구했냐고 작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프리실라는 그 짧은 순간에도 눈을 부릅뜨며 나를 쏘아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쪽이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대략 15분 정도가 지났을 때, '이쪽이야'에 대해 내가 아는 상식을 다시 생각했다. 보통은 근처라는 뜻 아닌가? 특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냐고 물은 직후라면 말이다. 브라질인의 거리에 대한 상식은 우리와 다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진짜 이상한 호스트를 만난 것인가.
망했다는 생각만 한 지 30분이 넘었다. 결국 걸어서 이파네마까지 왔다. 어제 묵은 호스텔이 있던 장소다. 프리실라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시 5분을 걸은 후에야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음악 소리가 가까워지자 주황색 가로등 아래 요란한 음악과 함께 휘청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야... 나는 지금 술 냄새만 맡아도 쓰러지겠다.”
“나도 그래. 근데 재미는 있을 거 같지 않냐?”
'아니, 전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생각이 바뀌었다. 프리실라가 가게에 들어서자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한 번씩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너도 하고 싶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한 여자가 다가와 내 볼에 키스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인사에 얼굴이 화끈해지더니 갑자기 힘이 났다. 그래. 놀자. 죽기야 하겠어.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은 준과 나는 모두와 함께 휘청대며 밤을 불태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보다 프리실라가 먼저 쓰러졌다는 거다. 초저녁부터 잤다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간다.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새벽 3시였다. 신기하게도 프리실라는 어젯밤 침대 위에 쓰러졌던 그 모습 그대로 아침 7에 일어나 출근을 했다. 그제야 어제 초저녁부터 잤다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갔다. 나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몸을 필사적으로 일으켜 출근하는 프리실라의 발목을 붙들며 말했다.
“열쇠… 열쇠 좀 주고 가.”
그 한마디를 안 했다면 집 안에서 언제 올지 모를 그녀를 마냥 기다려야 했을지 모른다. 혹은 새벽 3시까지 못 들어오거나.
정신을 차리고 거리로 나섰을 때는 이미 정오가 지나있었다. 간밤의 무리 탓에 아직도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게으르게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광란의 파티가 한창인 라파(Lapa) 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다시 해가 지고 있었다.
리우의 낮을 장식하는 것이 이파네마 해변이라면 밤은 라파다. 쌀쌀한 날씨에도 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야외에 펼쳐진 펍의 테이블과 도로를 점거한 사람들은 연신 흥청망청이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삼바 음악과 강남스타일이 뒤죽박죽되어 온몸의 세포들을 흔들어댄다. 한쪽에서는 마이클 잭슨을 똑같이 흉내 내는 달인의 공연이 한창이다. 낮에 해변에서 놀다가 건너왔는지, 만들다 만 옷을 걸친 여인들이 눈앞을 어지럽힌다. 짧기는 해도 분명 바지를 입었는데 그 아래로 엉덩이가 보이는 것은 브라질에서만 볼 수 있는 미스터리한 광경이다.
“쟤들 엉덩이 성형한 거겠지? 사람 엉덩이가 저렇게 클 수 있나?”
“했겠지. 저게 말이 되냐? 엉덩이가 네 개야.”
그건 음흉하기보다는 호기심이었다. 브라질에서는 엉덩이를 크게 부풀리는 것이 미의 상징이다.(사실 가슴은 더 부풀릴 필요가 없다) 카니발 퍼레이드를 상징하는 ‘M’ 모양의 대형 조형물도 사실은 브라질 여성의 엉덩이를 상징한다지 않는가.
라파 거리의 사람들은 뚱뚱하건 날씬하건, 젊건, 늙건 관계없이 죄다 거리로 뛰쳐나와 춤을 췄다. 어느 길가의 펍에 자리를 잡아보지만, 맥주 한 잔에도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맨 정신으로 있기에는 그 열기가 부담스러웠다. 맥주 한 병을 비우지 못하고 인적이 뜸한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여자가 달려들어 엉덩이만 한 가슴을 비벼댔다. 하마터면 내 발을 밟고 넘어질 뻔했다. 여자가 뭐라고 말을 했다. 만국 공통어인 ‘fuck’ 외에는 어떤 단어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뻔하다.
“이봐 꼬레아노. 섹스나 한 번 하지 않을래?”
짙은 갈색 피부의 매춘부들은 정말이지 하나같이 가슴이 목에 달려있었다. 아무리 요염하게 화장을 하고 손 키스를 날려도 우락부락한 바디라인은 가려지지 않는다. 저래서야 어떻게 먹고 사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다.
“저리 가. 너네 남자잖아!”
어차피 못 알아들으니 한국말로 크게 외치고는 도망치듯 광장으로 다시 합류한다. 리우는 적어도 겉으로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도,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보기 좋게 그을려 건강해 보였고, 맥주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즐거운 얼굴이었다.
“프리실라도 요 어디 있을 거 같은데.”
“어 그럴 거 같아. 오늘도 멀쩡한 얼굴 보기는 글렀지.”
그 말처럼 프리실라는 자정을 한참 넘기고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문을 열자마자 'f'로 시작하는 온갖 단어들이 날아들었지만, 끝까지 자는 척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있는 게 아닌가.
“너 그거 뭐야? 팔이랑 다리가 왜 그래?”
“어제 라파에 갔다가 계단에서 굴렀어. 술에 취해서 잠시 앉았는데, 어떤 멍청이가 내 가방끈을 홱 당기더라고.”
준과 나의 눈이 두 배로 커진다.
“세상에! 안 다쳤어?”
“안 보이냐 이거? 바보들아? 그래도 가방은 안 뺏겼어. 멍청한 놈 같으니”
“그러게 좀 적당히 마셔.”
“시끄러워. 적어도 나는 원숭이한테는 안 털렸거든? 멍청아.”
프리실라가 특유의 동그란 입 모양을 만들며 'ass hole'이라고 말했다. 그런 일을 겪고도 그녀는 조금도 의기소침해하지 않는다. 첫날 이야기했던 빅토리아 폭포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인생은 러브 앤 피스가 전부라는 프리실라. 자기한테는 술이 '러브'고 파티가 '피스'란다.
“내일 떠나지? 할 거 없으면 나랑 같이 나가자. 재미있는 장소가 있어.”
“어디? 거기도 러브 앤 피스야?”
“시끄러워. 그냥 따라오기나 해.”
한 가지 분명한 건, 리우는 술에 취하면 험한 꼴을 볼 수 있는 도시로 각인되었다는 거다. 정작 당한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또 술을 마시러 가잔다. 그 인식 차이가 단지 스치는 여행자와 사는 사람의 차이인지, 그렇지 않으면 알코올 중독자의 들뜬 시선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우리는 만난 지 사흘 만에, 떠나기 전날에서야 비로소 취하지 않은 프리실라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오래된 운동장을 개조한 곳이었다. 내부에는 장터와 식당들이 들어서 있었고, 뻥 뚫린 야외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쇼가 열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싸구려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구멍가게 느낌이랄까.
“라파는 재미있지만 위험해. 여기는 그냥 서민들이 와서 노는 데야. 안전하고 재밌어.”
그걸 알면서 그 새벽까지 술을 먹었어? 물론 실제로 말하지는 않았다. 이제 확실해졌다. 리우는 놀면서 안전을 따져야 하는 도시다. 무대에서 알 수 없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저마다 어깨춤을 춘다. 프리실라가 피우던 담배를 끄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파울루에서 살 때 한창 마약에 빠져 살았거든. 부모님이 강제로 나를 리우로 보내버렸어. 그 무리에서 떼어놓으려고. 뭐 결과적으로는 좋았지. 대신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만 말이야. 우리 집 경비원은 내가 무슨 창녀인 줄 알걸? 인종도 다양했지. 아시아인은 너희가 두 번째야."
자신을 에릭이라고 소개했던 어느 중국인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끝났다. 누가 봐도 중국인인데 이름을 '에릭'이라고 말한 것부터 싫었는데, 이름은 에릭인 주제에 영어를 못해서 쫓겨났단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그녀의 사소한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프리실라는 집에서 담배를 피울 때도 꼭 우리 둘 중의 한 명을 데리고 같이 나가곤 했다. 외로운 것이다. 누구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고 술은 그런 외로움을 잊게 했을 것이다. 그러다 정신이 들면 이곳에 와서 여전히 사람들 틈에 있음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프리실라는 마지막에야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자기가 하자는 데로 다 들어줘서 고마웠다고.
비록 그녀가 좋아한다는 식당에서 시킨 스테이크와 볶음밥은 매우 짰지만 즐거웠다. 앉자마자 주문한 맥주를 연거푸 마셔댄 탓에 그녀의 멀쩡한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프리실라가 자꾸만 나를 잡아끈다. 한국에서도 춤이라곤 춰 본 적 없는데 벌게진 얼굴로 엉성하게 몸을 흔들어댔다.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리우는 러브 앤 피스의 도시다. 그리고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알코올 중독이지만 나에게는 따뜻한 친구가 한 명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