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수 폭포, 브라질 & 아르헨티나
여행을 시작한 지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는 익숙했지만 누군가의 배웅을 받는 것은, 처음이다. 배낭이 내 뒷모습을 가리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돌아보았다. 길 건너에 프리실라가 차가운 공기를 견디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주말이라 모처럼 늦게까지 자도 될 텐데 말이다.
“여긴 브라질이야. 그리고 새벽이고. 남자 둘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
“언제는 러브 앤 피스의 도시라며”
“술 마실 때만이야, 멍청아”
프리실라가 'ass hole' 이라고 말할 때면, 그 동그란 입술이 소리를 뱉기도 전에 울림을 느낀다. 고작 삼 일동안 정이 들었나 보다. 아직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는데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결국 대화를 끝내지 못하고 버스에 올랐다. 아무도 없는 빈 버스였다.
“아디오스.”
최대한 천천히, 입 모양을 동원해 창 밖의 그녀에게 소리 없는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다시 이구아수로 가는 버스를 탈 때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둘이서 하는 여행의 좋은 점이 이런 거다. 버스가 22시간을 달리는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지만 아는 사람이 같이 타고 있다는 것. 행여나 목적지를 놓치더라도 남탓할 상대가 있다는 안도감. 좀도둑은 내가 아니라 파트너의 가방을 노릴 것이라는 확신. 긴장이 풀렸는지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물론(아프리카와는 달리) 튼튼하고 폭신한 등받이가 달린 의자 덕분이기도 했다.
포즈 데 이구아수(Foz de Iguazu)는 브라질 최남단에 있는 마을이자 아르헨티나로 가는 국경이 있는 곳이다. 문명에서 멀어진 만큼 자연과 가까워진 마을이기도 하다. 버스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고 맨땅을 밟으니 느낌이 색다르다. 몸은 가만 있는데 계속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이구아수 폭포가 있는 국립공원에 도착했는데, 내리자마자 짙은 가습기 냄새가 났다. 낮고 좁은 풀이 자라는 아프리카와 달리, 키가 크고 우거진 나무들이 높고 까마득하게 들어찼다. 우리가 아는 숲이 녹색이라면 이구아수의 숲은 '노오옥쌔애액'이랄까.
“원숭이 있는지 잘 봐.”
“남미에 원숭이 없다, 바보야."
대답은 했지만 나도 모르게 어깨에 둘러멘 카메라 끈을 붙들어 멘다. 준은 그런 나를 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다 ‘지름 4.5km, 평균 낙차 70m’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자 신이 나기 시작했다. 구름이 끼긴 했지만 깨끗한 시야와 입구부터 가득 풍기던 가습기 냄새도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쌓인 길을 걸어 무작정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았다. 나무로 지어진 펜스 위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그 틈을 비집고 이구아수와 눈이 마주치자말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아주 짙은 녹색의 숲에서 떨어지는 크고 작은 물줄기들, 그 소리를 뚫고 들리는 새들의 울음소리, 그 아래로 흐르는 짙푸른 강. 금방이라도 한쪽 가슴을 자른 아마조네스가 뛰쳐나와 활을 겨눌 것 같은 풍경이었다. 빅토리아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좌뇌를 가슴으로 진정시켰다. 설령 세상의 모든 폭포를 돌아보고 왔다고 한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만큼 시리도록 푸를 수 있을까. 공원을 샅샅이 뒤지며 조금씩 그 속살에 다가가, 더 가까워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폭포 위에 다리가 놓여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는데도, 다리 위에 발을 들이자 사방에서 물보라가 날아들었다. 으아아하는 비명도 엄청난 폭포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폭포가 시작되는 곳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몸은 어느새 속옷까지 흠뻑 젖었고 내 손은 카메라를 보호하느라 얼굴을 가릴 수도 없었다. 몇 차례 희뿌연 수증기 벽을 뚫자 마침내 폭포가 쏟아지는 협곡의 끝에 닿았다. 강이 시작되는 그 장벽 위 사방에서 엄청난 양의 물줄기가 쏟아졌다. 그 속은 훨씬 두꺼운 물안개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대단한 비밀을 숨기기라도 한 것처럼.
얼마나 긴 세월에 걸쳐 생겨났을지 알 수 없는 그 비밀스러운 곳을 두고, 사람들은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혹에 이끌려 다가가다 보면 온몸이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거기가 바로 브라질의 끝이자 이구아수의 시작이었다.
홀딱 젖은 꼴로 공원을 빠져나와 주머니를 뒤졌다. 딱 한 장 남은 지폐로 샌드위치 하나를 겨우 살 수 있었다. 온통 젖어서 찢어지기 직전의 20헤알이었는데, 직원이 지폐를 벽에다 던졌더니 척하고 달라붙었다. 옷이 마를 새도 없이 아르헨티나로 가는 국경을 넘었다. 대단한 일 같지만, 버스를 타고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이다. 사방은 여전히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마을 이름에 여전히 이구아수가 들어갔다.(Puerto Iguazu) 며칠 만에 술을 마시지 않고 잠든 다음 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고, 숲에서 뿜어내는 비 내음에 잠이 깼다. 재향군인회에서 만들어 파는 점토를 처음 만졌을 때 났던 냄새다. 뒤늦게 준을 깨우니 창밖의 비를 본 녀석이 울상이다. 나무가 있는 곳은 모조리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이래서야 아르헨티나 쪽의 이구아수를 보기에는 틀렸다.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자연은 본디 인간의 것이 아닐진대, 그곳에 국경을 그은 두 나라가 원망스러웠다. 이대로 남쪽으로 이동할 것인지, 비를 뚫고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를 볼 것인지에 대해 회의를 열었다. 그때 옆 방에 머물던 한 커플이 말을 걸어왔다.
"설마 그냥 떠나려는 거 아니지?"
“아르헨티나 쪽 이구아수는 어때?”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워. 놓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면 일단 하는 거다. 급한대로 편의점에서 우비를 산 뒤 공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르헨티나의 이구아수 공원은 브라질 보다 몇 배는 넓었다. 도저히 걸어서는 볼 수 없는 공원 안을 아담한 관광열차가 달린다. 내린 비의 습기와 원시림이 뿜어내는 산소가 뒤섞인 이구아수의 공기는 맑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했다. 마치 방금 만들어 신선하고 향이 살아있는 빵 냄새 같다. 그 향이 바람에 흩어질 즈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초당 5만 8천 톤의 물을 쏟아붓는 폭포의 비명이 멀리 들렸다.
놀이동산에 놀러온 꼬마처럼 나무 갑판 위를 뛰어서 악마의 목구멍에 도착했다. 소리는 이미 굉음으로 바뀌었고 옆에서 준이 뭐라고 질러대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내 몸으로 몰아치는 물줄기가 폭포의 것인지 비인지도 분명치 않다. 한 발만 더 뻗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이 가까이 다가가니, 새 찬 물보라가 온통 회색 벽을 만들어 시야를 가로막았다. 카메라를 꺼내기는커녕 눈도 뜨기 힘들었다. 한참 동안 폭포와 힘겨루기를 하다 버티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다시 걸어 나오는 길에 고개를 돌렸더니 차라리 저 목구멍으로 빨려들고 싶다는 유혹이 일었다.
열차의 다음 정류장은 울창한 밀림이었다. 악마의 목구멍에서는 한참 벗어났지만, 여전히 귀에 이명이 들렸다. 비가 그친 것도 그제야 알아챘다. 만들어진 목적에 눈곱만큼도 부합하지 못했던 비옷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온 공원 안을 뛰어다니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물안개가 피어나는 저 밀림 아래에서 당장이라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익룡 한 마리가 날아오를 것만 같다.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공원을 돌아 나오는 내내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늦기 전에 그 거대한 울음소리를 그녀와 함께 들을 수 있다면. 결국은 소멸하는 것이 폭포의 운명이다. 폭포가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엄청난 수압에 상류가 조금씩 깎여나간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벽이 무너져 그저 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촛불이 사그라지기 전에 한 차례 크게 불꽃을 일으키듯이, 우리가 보고 온 것은 매일매일 조금씩 깊어져 가고 있는 이구아수 폭포의 불꽃인 셈이다.
온몸이 젖었고 내일이면 또 20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러나 지금 머릿속에는, 당장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