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에 처음 오면 두 가지에 놀란다. 첫 번째는 비행기만큼 비싼 장거리 버스비, 두 번째는 비싼 만큼 훌륭한 시설이다. 좌석이 2층 맨 앞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눈만 뜨고 있으면 널찍한 통유리로 남미의 대자연 다큐멘터리가 펼쳐진다.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의자는 잠을 자기에 충분히 포근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거대한 차고가 딸린 식당에서 식사도 제공해준다.
밤이 되자, 세상을 뒤덮을 듯 강렬했던 숲의 푸르름이 어둠에 삼켜졌다. 그 뒤의 도로는 마치 미지의 세상으로 가는 차원 문 같다. 이 어둠을 뚫으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온통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황금빛으로 빛나는 태양 빛에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는 맑은 공기가 피어오르는 도시. 사람들은 그곳을 부에노스아이레스라고 불렀다. 20시간을 달린 버스에서 내려 그 하늘을 올려다보자, 나도 모르게 손뼉이 쳐졌다.
“야. 하늘이네, 하늘.”
“뭐가?”
“저거 봐라. 아르헨티나 국기. 완전 여기 하늘이네.”
터미널 광장의 거대한 국기는 맑고 푸르고 쨍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늘을 그대로 담은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름도 '좋은 공기'(Buenos Aires)라고 지었나 보다. 남미의 파리라고 불린다더니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을 많이 닮았다. 5월의 광장(Plaza de mayo)을 중심으로 우뚝 선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건축물들, 파란 하늘과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푸른 공원,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이라는 꼴론 극장과 수많은 성당,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점까지도 파리를 쏙 닮았다.
그런 도시에서 짐을 풀자마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연이은 장거리 버스 여행으로 체력이 바닥났다. 다음 목적지인 파타고니아는 그보다 더하다. 버스를 타고 무려 45시간을 가야 한다. 아무리 남 탓할 동료가 있다 하더라도, 세 번 연속 장거리 버스를 타는 것은 무리다. 두 번째 문제는 언제나 돈과 시간이었다. 큰 맘먹고 회사까지 그만둬가며 떠난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이놈의 시간과 돈은 죽을 때까지 우리의 목을 졸라댄다. 같은 거리를 고작 3시간 만에 주파하는 항공권 가격이 오히려 버스보다 쌌다. 누구라도 비행기에 눈이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원하는 날짜에 좌석을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운 모멘또."
영어는 못 하지만 끝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않던 직원이 그 말을 다섯 번째 내뱉었을 때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아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터를 잡고 언제 생길지 모르는 비행기 좌석을 매일 확인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이틀 뒤 비행기로 떠나든지.
우리는 절박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나이가 지긋한 여직원은 우리 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긴 했지만 가만히 기다려줬다. 짐작건대 내일로 예정된 휴가가 취소된 군인 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틀 뒤에 떠나는 항공권을 택했다. 여행이란 게 결국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행위다.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시간을 포기함으로써 많은 돈을 아낀 셈이고, 그 돈은 다른 미지의 세계에서 쓰일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돈을 쓰기로 했다. 적당히 우아하게 돈을 쓰기 좋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와인과 스테이크가 나오고, 창 밖의 강 위로 도심의 야경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성급한 결정의 결과는 참담했다. 도대체 어떻게 구웠는지 고기의 식감이 딱딱하고 질겼다. 갈비, 사태, 창자, 등심, 안심까지, 소고기의 모든 부위를 먹어 보았지만 사람의 턱으로 씹기에는 무리다. 게다가 짰다. 고기의 짠 맛을 없애려고 와인을 연거푸 마셔댔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Siga la Vaca'였지만 '씨발라버릴까'라고 부르기로했다. 정작 호스텔 주방에서 누군가 요리하고 있던 4,000원짜리 마트 산 소고기는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었다.
대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딱 하루만 머물러야 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잠들기 전에 시작된 고민은 아침에 일어나서도 계속되었다. 아무리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돈은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교훈이 무겁게 자리 잡은 탓이다. 이럴 때 준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뭘 고민하냐. 땅고 아니냐 땅고."
뭔 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탱고를 말하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탱고의 발상지가 아르헨티나였던가. 그것도 이곳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딘가에서. 평소답지 않게 사전 조사까지했는지, 준이 탱고의 유래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탱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La boca)에서 시작되었다.
대체로 발상지라던가, 누구누구의 생가라던가 하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험상 그런 곳은 우연히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입장료를 부과하고 싸구려 쇼핑을 강요했다. 그걸로도 돈이 모이지 않으면,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뒤집어쓴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근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쇼를 선보인다. 오로지 호객행위를 위해 만들어진 쓸모없는 관광지의 느낌이랄까.
버스에서 내려 인적이 뜸한 골목길을 걷는 내내 이마에 주름이 졌다. 어제 혹사당해 뻐근한 턱을 어루만지며 이제는 시간마저 허투루 쓸까 몹시 걱정이 됐다. 보카스 주니어 경기장 앞에서 파는 수십 가지 짝퉁 메시 유니폼을 볼 때까지는 거의 예상한 시나리오 대로 흘러갔다. 메시는 보카스 주니어에서 뛰었던 적이 없다. 유소년 시절을 보카스 주니어에서 보낸 선수는 마라도나다. 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고 슬슬 준에게 뭐라고 짜증을 낼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 '씨발라버릴까'도 준이 가자고 했다.
만족스러운 것이라곤 적당히 따스한 햇살뿐이던 그 거리가 한순간에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한 것은, 제법 걸어 땀이 맺히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귀에는 익숙한 탱고 음악에 맞춰 댄서들이 춤을 춘다.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턱을 괴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화가들은 알록달록 칠해진 거리를 멋진 화풍으로 그려낸다. 아찔한 곳까지 트인 치마에 빨간 구두를 신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땅고 노래가 끈적하고 비장하고 그렇잖아. 원래 여기가 오래된 부둣가였대. 외국인 노동자 많고, 범죄 많고, 가난하면서 으슥한 그런 곳. 그 노동자들이 여자 끼고 고향 생각하며 부르던 노래라고 하더라고."
그 얘기가 준의 입에서 나온 게 이상하긴 했지만, 한 순간에 보카의 모든 것이 눈이 부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알록달록하고 햇빛 나른한 곳이 한 때는 으슥한 뒷골목이었다. 비린 내가 가득하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남자들이 줄무늬 옷을 입은 채, 칙칙한 가로등에 기대 주머니칼로 이를 쑤시면서 지나가는 사람의 다리 사이로 침을 뱉어대는 동네였다는 이야기다.
과거는 과거일 뿐, 축축한 뒷골목 항구는 사라진 지 오래다. 낡고 곰팡이가 가득했을 널빤지 판자촌은 아름답게 채색되어 쨍한 태양 빛 아래에서 화려하게 빛이 났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세계적인 예술로 자리 잡은 땅고 덕에 보카는 완전히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우리는 보카 거리의 수많은 그림 중에 무엇을 살 지, 그것을 어떻게 운반할 지만 고민했다.
거리는 테라스마다 먹고 마시고 햇살 아래 탱고 쇼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리우와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그쪽이 정열과 쾌락이라면 이쪽은 낭만과 여유에 가깝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아까의 빨간 구두 아가씨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확신이 생겼다. 보카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 여자때문이다.
“땅고 배워 보실래요?”
“아뇨. 땅고는 됐고, 당신과 와인 한잔 하고 싶네요.”
물론 실제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멋들어진 모자를 손에 든 그 모습을 한참 쳐다보긴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면 항상 그녀가 겹쳐 보였는데, 그것이 사람일 경우에는 어째서 예외인지 모르겠다. 화려한 복장에 넋이 나가 갈곳 잃은 시선이 춤을 췄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대답도 못하고 손사레만 쳤다.
저녁즈음에 카페 토르토니(Café Tortoni)에 갔다. 무려 150년이나 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최초의 카페이자 탱고쇼가 열리는 공연장이기도 했다.
제일 먼저 도착해 맨 앞자리를 선점했다. 붉은 조명과 어울릴 만한 레드와인도 주문했다. 한 모금 삼키자마자 얼굴이 화끈해졌다. 조명이 붉은색이라 다행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회자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쇼의 시작을 알렸다.
불이 꺼지고 알 수 없는, 그러나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축축한 음악이 흘렀다. 남녀로 구성된 배우들이 나와 조명 아래에서 빛이 났다.
나는 그야말로 넋을 놓고 봤다. 탱고의 그 끈적한 음악은 한번 들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마성의 선율이다. 카메라는 내려놓은 지 오래다. 계속해서 색이 바뀌는 조명과 점점 노골적으로 바뀌는 춤사위, 거칠어지는 배우들의 숨소리 덕분에 머리로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을 가슴이 저절로 이해한다.
요컨대 탱고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춤으로 담아낸다. 스칠 듯 말 듯 한 배우의 발놀림이 눈을 어지럽히고, 스텝이 엉켰다 싶은 순간 두 배우의 다리가 하나가 된 듯 교차하며 허공을 가른다.
극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마침내 바이올린이 멈추는 순간, 무대 위는 한 커플만 남아 멋진 피날레를 그렸다.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나도 덩달아 손바닥이 아프게 손뼉을 쳤다. 얼마나 몰입했는지 눈이 아플 정도였고 주문한 와인은 첫 잔 이후로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탱고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동작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탱고를 보기 전에는 이 정열의 도시를 떠날 수 없다. 과거에 이 도시에 온 많은 이들이 탱고를 벗 삼아 시름을 잊어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