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 고민이 적은 삶

엘 칼라파테, 아르헨티나

by JUDE

탱고를 본 뒤에도 작전 회의는 계속됐다. 이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기가 억울하기까지 했다. 결국 다음날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효율을 택한 거다. 세계일주를 하면서 효율을 따지는 게 우습긴 하다. 왜 회사를 관두고 떠난 여행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가. 그러나 비행기보다 비싼 45시간짜리 버스는 도저히 탈 수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은 전혀 납득하지 못한 이별을 한 셈이다. 비행기에 오른 뒤에는 줄곧 잤다. 창밖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남는 건 안타까움 뿐이니까.


“야. 야. 저거 좀 봐봐”


착륙 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준이 나를 깨웠다. 짜증부터 났지만 보라고 하니까 고개는 창밖으로 돌렸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너무 강한 빛이 채 열리지도 않은 눈꺼풀을 비집고 들어왔다. 칼에 찔린 것 같은 통증을 진정시킨 후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자 반은 검고 반은 하얀 대지가 보였다. 비행기기 이제 막 하얀색의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이었는데 얼핏 보면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남미대륙의 남위 39° 이남에 해당하는 이 땅을 파타고니아(Patagonia)라고 불렀다. 지도에서 보면 남극에 닿을 듯, 길게 뻗은 모양이다. 남미의 한여름인 11월에도 여전히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곳이며, 그만큼 인간의 손이 덜 닿은, 원시 자연이 숨 쉬는 곳이다.


사실 일정에 대한 고민은 브라질에서 재회한 날부터 시작됐다. 사전에 협의한 것이라고는 함께 남미를 일주하는 것뿐이었다. 처음 대립이 시작된 건 이구아수를 보고 온 날 밤이었다. 이구아수 말고는 대자연을 느껴본 일이 없는 준은, 남극을 향해 쭉 뻗은 남미 대륙의 끝을 기어이 보고 싶어 했다. 반면에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원하는 만큼 머물다 따스한 칠레의 와이너리를 향해 서쪽으로 방향을 틀자고 했다. 그것이 여행의 일정을 10일 정도 앞당겨, 조금이라도 일찍 그녀에게 돌아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소송이 시작된 이후 나는 내심 조급해져 있었고 특히 돈에 민감해졌다.


결정적으로 나는 준의 정보를 신뢰하지 않았다. 사람과 어울리면 쉽게 귀가 얇아지는 녀석은(일본어가 유창한 준은 특히 일본인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 어디선가 고비용 저효율 정보를 듣고 와선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먹는 것의 효율이 가장 낮았는데 '씨발라버릴까'는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결국엔 준의 뜻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파타고니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지금 이 창밖의 풍경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하얀색이 점점 확대될수록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릴 듯 커졌다.


“와… 겁나 추워. 야 옷 다 꺼내. 겁나 추워.”


검색대를 통과하자마자 담배를 피우겠다며 나갔던 준이 한 개비를 꺼내기도 전에 다시 들어왔다. 굳이 나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비명 같은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최대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만세를 외쳤다. 마침내 저 빌어먹을 담배 타임에서 벗어날 수 있겠어!


절로 걷고 싶게 만드는 엘 칼라파테의 흔한 풍경


공항에서 출발한 버스가 엘 칼라파테(El Calafate)에 들어서자 적당한 곳에 내려서 걷기로 했다. 하늘은 더 파랄 수 없을 만큼 깨끗했고 태양은 24시간 비출 것 같았다. 공항에서 본 현재 기온은 5도였지만, 걸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은 푸르고 노랬다. 낮게 드리운 구름과 아직 푸른빛을 머금은 침엽수들, 개울가 좌우로 피어난 들꽃, 방금 만들어낸 듯한 공기도 여전했다.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자 폐 깊숙이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머리끝까지 두통이 몰려왔다.


따뜻한 햇볕 덕에 걷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숙소는 따뜻한 곳으로 하기로 했다. 'Glacier'의 발음이 '글래셔'냐 '글레이시어냐'를 두고 티격태격한 것 빼고는 모든 게 만족스러운 호스텔을 찾았다. 방바닥 전체가 뜨끈뜨끈한 온돌로 데워지고, 3층에 있는 부엌 창문 가득 햇살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딱 하나 있는 겨울옷을 입고 거리로 나서자마자 준이 당연하다는 듯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런 데까지 와서 담배를 피우고 싶냐?”

“이런 데니까 피고 싶은 거야. 좋은 경치에서.”


어떻게 하면 저런 멍청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지만 딱히 대꾸는 하지 못했다. 일정으로 한창 다툴 때 서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나는 욕을 하지 않고 준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었는데, 채 삼 일을 가지 못했다. 먼저 깨트린 것은 나였고(물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씨발라버릴까 때문이다), 그 후로 준은 잘됐다는 듯 틈만 나면 담배를 꺼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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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엘 칼라파테는 햇살과 하늘이 끝내주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조용하고 차분했다. 대부분의 가게가 등산용품을 파는 곳이었는데 모두 문을 닫았다. 겨울이 완전히 끝나는 12월이 돼야 관광객이 몰리는 모양이었지만, 여름이 되어 이 한산한 거리가 모험가들로 가득 차는 풍경이 손에 잡힐 듯했다. 낮에는 따뜻한 햇살에 그윽한 커피 한잔으로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벽난로가 있는 펍에서 서로 모험담을 뽐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수염이 얼굴의 3분의 1을 덮고, 산에서 굴러떨어진 상처쯤은 훈장처럼 간직한 그런 사내들 말이다. ‘구’를 발견한 것은 그런 상상 속에 거리를 헤맬 때였다.



손댄 지 오래된 아무렇게나 기른 검은 머리. 아래위 색색이 갖춰 입은 등산복에 지도를 든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발을 약간 저는 데다 지쳐 보이는 걸음걸이가 수년 전 파리의 겨울 거리를 홀로 방황하던, 가난했던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먼저 말을 걸었더니 역시나 한국인이었다.


남쪽의 험한 협곡을 모두 거치고 마지막으로 칼라파테에 닿았다는 그는 귀국을 앞둔 대학생이었으며, 부산 사람이었고, 심지어 같은 대학 후배였다. 저녁 7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햇살이 가득한 부엌으로 그를 초대했다. 메뉴는 벌써 며칠 째 먹고 있는 스테이크와 감자, 그리고 '트라삐체' 와인이다.


400g짜리 스테이크 3개를 굽는 준의 옆에 서서 '뿌레'를 만들었다. 남미식 감자 샐러드인 뿌레는 다진 감자에 버터와 소금을 넣어 만든다. 부드러운 식감 때문에 스테이크와의 궁합이 최고다. 무심한 듯 베어 문 고기의 육즙이 입 안 가득 퍼지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굳이 외식이 필요없다.


“와.. 햄. 저 지금 한 달 여행하면서, 이런 스테이크 처음 먹어봐요.”

“처음이라고? 소고기 4천 원 하는 나라에서? 그동안 뭐 뭇노?”


물어보나 마나 뻔하다. 거리에서 파는 핫도그나 값싼 햄버거. 혼자인 남자의 여행은 으레 그렇다. 돈 보다 더 필요한 것이 스테이크를 먹자고 말해 줄 누군가일 때가 있다. 구는 준과 내가 함께 긴 여행길에 올랐다는 사실을 무척 부러워했다. 반대로 나는 코이카 단원으로 남미에 2년간 머물렀다는 구를 부러워했다.


대체 이십 대에 칠레에서 2년을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순간도 있었겠지만, 2년 동안 남미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축복이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미래에 별 쓸모도 없어 보이는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남은 생에 몇 번 볼일도 없는 선배, 교수들 사이에서 굽신거리지 않아도 된다. 늦게 까지 술을 마시고 승차거부를 해대는 택시기사들과 싸울 일도 없고, 좋은 일이라고는 나오지 않는 뉴스도 보지 않아도 된다.


즐길 것이 많다기보다 고민이 없는 삶에 가까울 것이다. 준과 나는 고작 비행기 한 번을 타기 위해 이틀동안 싸웠다. 물론 여기라고 고민이 없을 리 만무하지만 한국에서는 고민이 꼬리의 꼬리를 문다. 먹고살려면 이름 있는 회사에 취업해야 하고, 취업을 하려면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을 가려면 경쟁을 해야 하고, 경쟁을 하려면 좋은 환경이 갖춰져야 하고, 결국에는 그 환경을 충분히 갖춰주기 위한 부모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여행을 떠난 후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다. 한국에서의 내 삶이 길 위에서 만난 이들에 비해 결코 나쁘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칼라파테 같은 곳에 닿으면 스스로가 한없이 가여워진다. 나는 대체 왜 금요일 저녁에 기차를 타고 파리에 갈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인가. 그러다 '구'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그러니까 나 같은 부류들) 안도와 위안을 느끼는 것이다. 구가 보여준 지난 2년간의 사진들은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의 사진이 그랬다.


“햄. 제가 삼 일 전에 토레스 델 파이네 갔다 왔는데, 이거 때문에 지금 제 다리가 이래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나는 이 눈과 얼음의 대지를 걸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물론 일주일이 지난 뒤 상황이 달라지면 기어코 여기까지 오게 만든 준에게 잔뜩 퍼부어 주리라. 그때 뭐라고 잔소리를 할지 고민하면서 구를 파티원으로 합류시켰다. 생각해보니 고민이 없으면 재미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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