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
빙하를 보러 가는 날은 아침부터 비가 흩날렸다. 어제는 밤 아홉시가 넘도록 온통 새파랗던 하늘이 말이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날씨다. '장소'가 그다음이고 '누구와'는 세 번째까지 밀린다. 심기가 불편해진 나를 눈치챈 듯 웬일로 준이 버스터미널에서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꼬리를 흔들다 지친 강아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버스에 올랐다. 조금씩 비가 흩부리는 와중에도 창밖 풍경은 평화로웠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인간의 영역 밖에 머물 것 같은 풍경. 어느 날 갑자기 쓸데없이 커다란 쇼핑몰이 들어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옷을 껴입었다. 그런데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웠다.
“형님들, 이 정도로 추우시면 안 돼요. 토레스 델 파이네 가면 밤에 진짜 지옥일 텐데”
구의 이야기는 앞에 놓인 거대한 빙하만큼이나 현실감이 없었다. 저렇게 큰 빙하가 눈 앞에 있는데 더 추울 수 있다니. 페리토 모레노 빙하(Glacier Perito Moreno)는 남극을 제외하면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큰 빙하다. 그 모습은 차라리 거대한 장벽에 가까웠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북부의 장벽같았다.
막상 그 존재가 눈 앞에 펼쳐지자 추위 따위는 잊고, 길게 뻗은 산책로를 뛰어서 내려갔다. 두 개의 산 사이를 얼음으로 메워버린 장벽은 가로만 5km 가 넘는다고 했다. 시야가 닿지도 않는 그 길이는 무려 30km에 달한다. 한 마디로 눈으로 그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 위에 떠 있는 걸까. 아니면 뿌리 깊이 땅속에 박혀있는 걸까. 위태롭게 엉겨 붙은 얼음 조각들은 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많은 의문이 머리속에 멤돌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얼음이 투명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야 봤지? 이게 파타고니아야.”
준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든 8년 전, 뉴질랜드의 프란츠 요셉 빙하를 떠올리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게 제일 크다는데. 나는 놀이동산에 놀러 온 꼬마처럼 온 산책로를 뛰어다녔다(사실은 몹시 추워서 그랬다). 그러다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땅을 흔들었다.
“야! 찍어! 저거 찍어!”
준의 외침에 뒤늦게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는 이미 60m 높이의 빙하 한 줄기가 무너져 내린 뒤였다. 빙하가 자기 몸의 일부분을 잘라내며 위태로운 장면을 연출할 때마다, 거대 괴수가 내뿜는 것 같은 낮고 커다란 굉음이 온 협곡에 울려 퍼졌다.
기어코 그 모습을 담겠노라 카메라를 치켜들고 푸른 거인과 눈싸움을 벌였다. 그쳤던 비가 다시 흩뿌렸고, 바람은 귀를 베어낼 듯 날카로웠다. 한참 동안 찰랑거리는 물소리만 들릴 뿐 거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했다. 손가락에 화상을 입은 듯 아프면서 감각은 무뎌지고, 렌즈에 맺힌 물방울이 살얼음으로 변했다. 거인은 더 이상 울부짖지 않았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아직 몸이 움직일 때 서둘러 돌아가기로 했다. 머릿속의 의문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토레스 델 파이네가 더 춥다고? 여기보다 더 추울 수가 있어?
변변한 겨울옷이 없었던 준과 나는,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기 전에 충분한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닿았다. 엘 찰튼(El Chalten)은 그런 점에서 최고의 전지 훈련지로 보였다. 피츠로이(Fitzroy)라고 불리는 거대한 설산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있고, 빙하 산맥 바로 아래에 자리 잡아 얼음꽃이 피어나는 그런 마을이었다.
막상 도착한 엘 찰튼은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오로지 피츠로이에 오르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만큼, 여행객을 격하게 반기는 거대 간판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지구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빙하가 있고, 육안으로도 뚜렷한 설산이 자리 잡은 곳치고는 너무 따뜻했다. 빙하와 민들레가 한동네에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루에 4계절을 겪을 수 있는 곳이 종종 있다. 아프리카의 사막 같은 곳 말이다. 그렇지만 낮에 덥다가 밤에 갑자기 눈이 내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하루는 아니지만, 이틀 새 우리는 두 계절을 겪고 있다. 어제는 그렇게 비가 흩날리더니 오늘은 온통 파랗다. 세상 모든 바람이 다 이곳을 지나치는지 엄청난 바람이 불어댔지만 따스했다. 트레킹 코스 입구까지는 마을에서 겨우 5분 거리였다. 버스에서 등산복을 갖춰입은 여행객 무리가 우르르 내리는 풍경도, 길가의 바에 모여 앉아 커피나 맥주를 기울이는 모습도 없었다. 오로지 소리 없는 햇살과 노란 들꽃만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렇게 등산을 시작한 지 20분 만에, 우리는 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보석 같은 풍경과 마주쳤다.
시야 끝까지 펼쳐진 평야 위로 빙하로 생겨난 강이 흘렀다. 피츠로이는 겹겹이 쌓인 산맥들 뒤로 숨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피츠로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들 옥빛 강을 낀 산맥의 모습은 너무 과했다. 영화가 시작한 지 20분 만에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여기서 다시 산을 내려갈지도 모른다.
과한 예고편을 지나친 후에도 피츠로이는 눈과 구름 사이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차가운 호수를 지나자 본격적인 험로가 시작됐다. 잔디밭 같던 바닥이 잿빛의 흙으로 뒤바뀌고, 푸른색은 조금씩 모습을 감췄다. 구름 사이로 피츠로이 봉우리가 살짝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몸통은 숨기고 있었다.
어느새 주위 풍경은 눈과 얼음의 세상으로 탈바꿈했다. 다소 갑작스러운 결말이다. 발목까지 쌓인 눈 위에서 한 걸음을 나아가면 두 걸음 미끄러졌다. 더는 허락할 수 없다는 피츠로이의 몸부림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구와 준이 주먹만 하게 보였따. 아직 하얀 경계를 넘기 전이다. 기다릴까 하다 아직 발자국이 찍혀있지 않은 정상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찔한 경사와 몸이 잘 가눠지지 않을 정도의 바람에 홀로 맞서기로 한다.
마침내 도착한 피츠로이의 정상에서는 신음같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살짝 걸친 구름 사이로 잔뜩 멋을 부린 피츠로이가 당장 뛰어내리라 외치고 있었다. 얼음인지, 호수인지 모를 눈 위에 철퍼덕 누워버렸다. 그리곤 하얀 캔버스 위에 그녀의 이름을 마음껏 새겼다. 오랫동안 떨어진 그리움과 이런 풍경을 혼자서 보게 된 미안함, 그 모든 것을 호수 위에 쏟아내고 나니 눈물이 났다. 피츠로이는 너무나 아름답고 따뜻했다.
한참 뒤에야 도착한 준과 구도 호수 위에서 춤을 췄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를 피츠로이의 모습을 어떤 식으로든 온몸에 각인시키려고 했다.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니 말대로 파타고니아를 안 갈 거면 남미를 오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거봐. 형이 말하면 좀 들어.”
다시 산을 내려오기까지 7시간이나 걸렸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날 밤, 엘찰튼에 딱 하나 있는 슈퍼마켓에서 스테이크를 샀다. 구가 파타고니아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이제 녀석은 칠레로 돌아가, 2년간의 코이카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다.
“한국 가면 뭐 할 거냐?”
“음.. 졸업하기 전에 워킹 홀리데이도 한 번 다녀오려고요.”
"어디? 호주?"
"아뇨. 일단 아일랜드 생각하고 있어요"
한 번 바람 냄새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쉬이 머무를 수 없다. 선택지도 남다르다. 일종의 본능인 셈이다. 잠들기 전에 그녀에게 엽서를 썼다. 본 적 없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겨우 엽서 한 장으로 보는 느낌은 어떨까. 조금이라도 내 기분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이렇게 남겼다.
“인생은 진짜 살아볼 만해.”
구가 떠난 다음날에도 준과 나는 또 한 번 산에 올랐다. 피츠로이를 등지고, 작은 빙하를 품은 호수를 보러 가는 코스였다. 그런데 어제 너무 완벽한 하루를 보낸 탓인지 또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하늘은 굳게 닫혔고, 바람이 세다 싶더니 나중에는 바닥의 자갈이 날아와 뺨을 때렸다.
사람도 날아갈 것 같은 강풍에 호수에는 10분도 채 머무르지 못했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겨우 마을로 돌아왔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엘찰튼은 딱 손바닥만 했다. 구름은 한창 만들어지고 있는 솜사탕 모양이었고,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안데스 산맥이 내 발 밑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