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스 델 파이네, 칠레
칠레로 가는 국경을 넘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 까지는 버스로 고작 6시간. 어찌나 피곤했는지 둘 다 버스에 타자마자 기절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기억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자다 깬 국경에서 “아니 검사하는 사람은 팔자 좋게 자고 있는데 엑스레이에다가 짐은 왜 집어넣으라는 거야 대체” 하고 짜증을 냈더니, 준이 잽싸게 담배를 입에 물고 건물 바깥으로 나가버린 일뿐이다. 녀석이 엘 칼라파테 숙소에 계랸 6개를 통째로 두고 오지 않았다면 또 티격태격했을지도 모른다(준은 식량 담당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하기 전에도 후에도,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곤 눈 덮인 산뿐이다. 지도에서 보면 파타고니아의 남쪽은 꼭 깨진 접시 조각처럼 생겨 헤엄이라도 치지 않으면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이 생겼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그 깨진 조각들 사이에 실낱같이 걸쳐진 땅이었다. 최종 목적지인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로 가는 길목에 말이다.
도착하자마자 이틀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굳이 국경을 나눴어야 했나 싶을 만큼 아무런 이질감이 없었다. 같은 언어에 같은 인종, 같은 풍경, 유일한 차이점은 아르헨티나보다 소고기가 맛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역시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숙소에 손님이라고는 준과 나뿐이었다. BBC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를 죽기 전에 꼭 걸어야 할 길로 꼽았다는데, 다 죽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인기척이 없었다. 하긴 남극에 묻히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뭐하러 이 외딴 오지까지 찾아오겠는가.
공중에서 보면 꼭 W같이 생겼다고 해서 이름붙은 'W 트레일'을 걸어서 완주하려면 꼬박 3박 4일이 걸린다. 사흘 치의 식량과 텐트를 지고 산을 넘는 일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인기척이라곤 없는 마을을 휘감는 차가운 냉기와 바람을 보면, 그것이 전혀 낭만적이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물론 세상에는 이 정도도 내다보지 못하는 멍청이가 많다. 준도 그중에 한 명이다. 무슨 생각인지 녀석은 와인을 3병씩이나 샀다. 베이컨과 치즈, 토마토면 충분한 내 샌드위치와는 달리 녀석은 서로 다른 햄과 치즈를 다섯 종류나 샀고, 그 외에도 당 보충을 위한 초콜릿 바, 안주로 아몬드, 씹을거리로 육포까지 사서 배낭에 쑤셔 넣었다. 무슨 소풍이라도 가는 줄 아나 보다.
“니 그거 고대로 다시 들고 온다에 내가 만 원 건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출발 전날부터 쓸데없는 감정싸움은 하고싶지 않았다.
“아닌데? 다 먹을 건데? 달라고 하지 마라.”
준이 대답했다. 무슨 인생을 그렇게 팍팍하게 사냐는 듯이. 마침내 녀석의 손이 위스키를 향할 때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미친놈아. 하루에 수십 킬로 산길을 걸어야 되는데 무슨 양주고!”
“다 필요해 임마. 너무 예뻐서 잠이 안 온다고 생각해봐. 그 대자연에서 독주 한잔 딱 하면, 얼마나 잠도 잘 오겠냐”
짜증을 내면서도 준이 산 술병의 절반은 내 배낭에 담았다. 톨스토이의 우화에 나오는 말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결전의 날이 밝았다. 준도 나도 어정쩡하고 삐걱대는 모양새로 몸을 일으켰다. '어, 움직이네?'라는 느낌이랄까. 토레스 델 파이네 입구로 가는 버스를 탄 사람은 다 합해서 10명 남짓, 버스는 사방이 확 트인 평야에 우리를 내리고는 왔던 길로 사라졌다. 남쪽으로 거대한 강을 접하고 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는, 동쪽이든 서쪽이든 한번 들어가면 반대쪽으로 나오기 전에는 출구가 없다. 서로 눈치를 보던 와중에 누군가 첫발을 내디뎠고,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어깨에는 저마다 딱 사흘 치의 생명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마지막 보루구나. 돌아갈 수 있는.”
호텔 라스 토레스(Hotel Las Torres)라고 적힌 그 간판 앞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충분히 기가 막혔다. 창이 큰 호텔 방에 머물면서, 하늘이 보고 싶어 질 때마다 바깥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은 풍경이었다. 유턴이 가능한 마지막 기회인 그곳을,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담담하게 지나쳤다.
사진을 찍으려고 대열의 중간쯤에 서서 멈춰 선 순간, 갑작스러운 돌풍에 배낭을 덮고 있던 방수 커버가 벗겨졌다. 그리곤 손쓸 틈도 없이 멀리, 그리고 높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불길한 징조지만 어쩔수 없다. 이번에는 준이 앞장을 선다. 같이 여행한 지 한 달 만에 처음 벌어진 일이다. 녀석은 밥 먹을 때 말고는 앞장서는 일이 없다.
30분 정도 걷고 나니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덕은 해발 500m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너무 가팔라서 허리를 조금이라도 들면 사흘 치의 목숨이 사정없이 등을 당겼다. 굵은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뒤처지기 시작한 준은 벌써부터 네발로 기기로 한 모양이다.
“아오. 이게 다 니 와인 때문이야! 미친놈아!”
“뭐라고? 안 들려!”
고작 사흘 치의 생명이 이토록 무거웠단 말인가. 물병 하나만 달랑 들고 오른 피츠로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잠시라도 숨을 멈추면 폐가 터질 것 같았다. 겨우 첫 번째 언덕을 넘자 이번에는 깎아지른 듯한 협곡이 나타났다. 실수 한 번이면 이번 생은 안녕이다.
역으로 부는 강풍에 눈을 뜨기도 힘든 데다, 바닥에 차이던 자갈들이 공중부양을 시전 하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어느새 늘어난 회색 구름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시작한 트레킹은 어느새 생존게임이 되어버렸다. 머릿속에는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이 빌어먹을 와인을 모두 마셔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첫 베이스캠프인 칠레노 산장(Refugio Chileno)에 도착한 후에도 할 일이 많았다. 야영장의 갑판이 비에 젖기 전에 텐트를 쳐야 하는데, 이놈에 텐트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버튼만 누르면 팡하고 펼쳐지는 텐트는 정녕 아직도 머나먼 미래의 일인가. 기술자들은 2012년이 되도록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원숭이를 태워 화성에 가는 우주선 따위를 만들어서 뭘 어쩔 샘인지 모르겠다.
“도와줄까?”
주인을 잘못 만난 두 배낭이 속절없이 젖어가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와서 말을 걸었다. 딱 봐도 일본인이다. 그래. 이런 곳에 한국인이 있을 리는 없고 세계 어디를 가도 만만한 건 일본인이다. 나는 준에게 고갯짓을 했고, 곧 자신을 '코다이'라고 소개한 남자와 텐트를 완성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점에 봉착했다.
“2인용 텐트라는 게 둘이서 잘 수 있는 게 아니라,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냐? 뭐고 이거. 더블까지는 안돼도 슈퍼싱글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이가?”
“이거봐. 배낭 넣고 나니까 난 다리도 다 안 펴져. 하하하”
처음에는 짜증이 나다가 나중엔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숙소에서 빌린 2인용 텐트는 좁아도 너무 좁았다(남녀의 화끈한 동침이라면 모를까). 비는 계속 내렸고, 구름이 제대로 자리 잡은 하늘 아래 모든 사물이 본래의 빛을 잃었다. 유일한 실내인 칠레노 산장 안은 여행자들로 붐비긴 했지만 생각만큼 따스하진 않았다. 벽난로 하나로 온기를 채우기에는 너무 혹독한 환경이었다.
혹시나 해서 알아본 6인 도미토리가 무려 8만 원, 정확히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있는 숙소의 10배다. 이런 곳에서 써니사이드 업이 올려진 소시지 구이를 만 오천 원이나 내고 먹는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긴 바깥에는 팔자 좋게 말을 타고 온 부르주아들이 몇 명 있기도 했다(덕분에 걷는 내내 말똥을 밟아야 했다).
아무튼 산장은, 적어도 준이 기대했던 밤하늘 아래 모닥불에 모여 앉아 와인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무릎을 부여잡은 준의 표정이 온통 울상이다.
“무릎은 어떻노? 올라갈 수 있겠나?”
불행히도 아직 첫날의 일정이 끝나지 않았다. 겨우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뿐이고 산 꼭대기의 전망대로 가는 트레킹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잘 안 굽혀지긴 하는데,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안 갈 수도 없잖아.”
녀석의 주름진 이마 위로 안타까운 땀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가 흐른다. 지난 3년간 붙어 다닌 결과, 준이 뭐 하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내가 처음 서울에 상경해 오갈 데 없던 시절 잠시 녀석의 집에 얹혀살 때도, 준은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키는 데에만 20분이 더 걸렸다. 그 20분 동안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침을 차리는 게 나의 의무였다. 그 시절 준이 지각을 하지 않았던 건 오로지 나의 내조 때문이다.
한 번은 다른 입사동기의 지방 결혼식에 가기로 한 적이 있다. 기차를 타기로 한 당일 아침, 준은 당연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집까지 찾아갔다. 비밀번호도 그대로였다. 방 안에는 총 세 개의 알람시계가 요란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널브러진 녀석의 몸뚱아리를 향해 발길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정장 한 벌을 챙겨(전날, 준비해두라고 일러두었다) 잠옷 바람의 녀석을 그대로 택시에 태웠다. 놀랍게도 나는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예상하고 있었고, 기차 시간에는 전혀 늦지 않았다. 그랬던 녀석이 눈에 힘을 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이게 뭐라고 싶다가도 어딘가 기특했다. 죽으란 법은 없는 건지 산장 안의 누군가에게 압박붕대를 얻었다. 대충 테이핑을 하고나니 조금 괜찮아졌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첫 번째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200m 간격으로 등산객들이 보였는데 이제 보니 다리를 저는 게 준 뿐만이 아니었다. 비행기만 타도 무릎이 아프다는 프랑스인 에릭은 모든 관절마다 두꺼운 보호대를 부착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꼬마 아가씨 3인방은 양손에 스틱을 들고 있었는데, 허리춤에는 로프까지 걸려있는 것이 꼭 아람단 같았다. 이런 곳에 와인 세 병과 위스키를 들고 왔다고 생각하니 새삼 기가 찼다. 그래도 오늘 만은 녀석에게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겠다.
준의 의지에 감동이라도 했는지, 첫 번째 전망대인 라스 토레스(Las Torres)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갰다. W-트레킹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세 개의 봉우리는 하얀 구름 아래 너무도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연 이 정도 비경이라면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먼 안데스의 끝자락에 숨겨둘 만했다.
한참 뒤에야 정상을 밟은 에릭과 하이파이브를 했다(숨을 심하게 헐떡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았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앞으로 4일 동안 동행이나 다름없다. 내려오는 길에는 귀염둥이 아람단 자매들과 스치듯 인사를 나누었다(나도 모르게 파이팅!이라고 외친 것 같은데 싸우자고 알아들었으면 어쩌지 라고 걱정했다).
그리고 그 미소가 그 날 우리의 마지막 웃음이었다. 다시 산장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라면을 먹고 나니(라면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심상치 않은 비가 내렸다. 곧 산장이 문을 닫고 사방의 모든 불이 꺼졌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산장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은, 8만 원짜리 2층 침대에서 자는 사람들뿐이다. 우리는 완벽하게 분리된 야영장의 텐트 안에 처박힐 수밖에 없었다. 조명 조차 없는 야영장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인간을 품을 생각이 전혀 없는 대자연의 밤은 온통 비와 바람이 지배했다.
“니 뭐 불 피우고 와인 마신다메. 나가서 불 좀 피워봐라.”
대답 대신 어이없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신발까지 죄다 텐트 안에 넣고 나자 준과 나는 한 몸이 되어버렸다. 밤이 깊어질수록 텐트에 내린 비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바닥에 깐 매트를 뚫고 한기가 올라온다. 내쉬는 숨이 하얀 연기가 되어 눈앞에서 서서히 흩어진다.
잠시 후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얼어붙는 듯 가려움 같은 통증이 시작됐다. 그렇지만 지금 몸을 뒤척이면 자세를 깨트려야 한다. 두 번 다시 이보다 덜 불편한 자세는 찾을 수 없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발가락의 감각이 제일 먼저 없어졌다. 꼼지락거리다가 텐트에 닿을 때면 감전된 것처럼 부르르 떨리곤 했는데 말이다. 곧 팔이 저려왔고, 뇌가 명령을 내렸음에도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은 팔이 움직였다고 스스로를 속일 뿐이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 없어졌으면 하는 무념무상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정확히는 의식을 잃었고, 그 마지막 순간 단말마처럼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와인. 저 빌어먹을 와인을 대체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