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혹독한 시기를 함께 보낸다는 것

토레스 델 파이네, 칠레

by JUDE

새벽이 왔다. 내 생에 가장 반가운 아침이라 기꺼이 말할 수 있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통증이 흘렀지만 바로 일어섰다(준의 생애에서 가작 빨리 일어난 자발적 아침이다). 아직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켜자 관절들이 서로 먼저 손을 들고 비명을 질러댔다. 몇 명의 생존자들도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모조리 좀비 같았다.


무릎이 아프다던 에릭은 발을 절면서 수돗가로 가는 중이었다. 바로 옆 텐트에서 잔 코다이는 눈을 마주치자 허리를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재빨리 구겨진 가방 속의 와인 한 병을 들고 와 손에 쥐여주었다.


"어제 도와준 선물이야."

"응? 어... 고마워."


이런걸 '멕인다'라고 한다. 위하는 척하면서 실은 덤터기를 씌우는. 코다이의 표정에서도 곤란함이 살짝 묻어났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선물일 것이다.


"아오! 시벌!"


물 뜨러 간 준의 목소리였다. 아무 생각 없이 강물에 냄비를 담갔다가 놓칠 뻔했단다. 세포가 갈라질 것만 같은 차가운 고통이 느껴졌을 거다. 코다이에게 와인 하나를 줬다고 얘기하자 준이 한 병을 땄다. 마셔서 없애겠다는 생각이었겠지만 목구멍으로 들어간 지 1초도 되지 않아 다시 뿜어져 나왔다. 지치고 피로한 몸은 전혀 알코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남은 와인을 내 손으로 직접 바닥에 흘려보냈고, 마지막 한 병은 곧 탈출을 앞둔 여행자에게 줘버렸다(반대쪽에서 출발한 사람이었다). 그 와중에도 준은 끝까지 위스키는 포기하지 않았다. 장담하는데 모닥불에 모여앉아 기타를 치며 위스키를 마시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비가 내렸다. 젖은 텐트를 억지로 가방에 쑤셔 넣는다. 감각 대신 고통만 느껴지는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배낭 방수 커버가 사라졌으니 우비를 가방에 씌운 뒤 소매를 가슴으로 묶었다. 배경으로 깔린 설봉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늠름하기만 하다.


와인 두 병의 부재에도 배낭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무릎에 통증이 있는 준을 몇 번이나 뒤돌아보면서도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W-트레킹은 하루에 정확히 15km를 걸어 3박 4일 동안 완주하는 코스다.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산장도 딱 하루 치 간격에 있다. 바꿔 말해 하루에 15km를 걷지 못하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죽기 전에 걸어야 할 곳이라더니 걷다가 죽게 생겼다.



두 시간을 걷자 비가 그쳤다. 하늘의 구름이 16배속으로 흐르더니 5분도 되지 않아 파란 하늘과 햇빛이 쏟아졌다. 누군가 청소기로 구름을 빨아드리는 것 같았다. 곧 산맥 아래 강물이 에메랄드색으로 빛났다. 해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들판은 온통 풀 냄새를 자아내며 따스한 봄날의 기운을 뿜어냈다. 어디선가 나타난 말들이 길을 틀어막고 풀을 뜯기 시작한다. 온통 어리둥절했다. 그러고 보니 구가 그랬다. 하루에 사계절을 다 겪게 될 거라고.



맑은 날의 토레스 델 파이네는 무릉도원에 가깝다. 붕붕거리는 벌, 옹기종기 모여든 작은 동물들,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거짓말 같은 색감의 강까지.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젖어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 돌 위에 널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누워있으니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씩 지나쳤다. 일단 이 대자연의 품에 들어오면 모두 동지다.


한참 뒤에 딱딱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람단 세 자매의 모습이 보였다(양손에 쥔 스틱으로 열심히도 바닥을 짚어댔다). '헤이' 하고 큰 소리로 부르자 신나게 말 춤을 추며 응답했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함께 웃었다. 거짓말 같은 색깔의 강은 쿠에르노 산장(Refugio Cuernos)까지 이어졌다. 생존자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준의 무릎도 안정을 되찾았다. 내일 아침에 두 번째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선 아직 4km는 더 가야 한다. 연신 무릎을 어루만지던 에릭은 손사래를 쳤다. 두 번째 전망은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엽서 같은 풍경이 시야를 메우며 빛나던 여름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다시 속도가 나기 시작할 때 산이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삼켰던 구름을 다시 뱉어내고 있었다. 돌기둥처럼 오른편에 계속 펼쳐져 있던 산맥에 어느새 어마어마한 먹구름이 서렸다. 시원하던 바람이 싸늘해지나 싶더니 금세 칼에 베일 듯 날이 서 있었다.


그토록 만지고 싶던 빛깔의 강가에 닿았을 때는 이미 잿빛으로 변해버린 후였다. 그즈음 산은 또 한 번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짙은 안갯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시야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구름과 혼연일체가 된 안개와 색을 잃은 풀과 나무뿐이었다.


겨우 이탈리아노 캠프(Camp Italiano)에 도착했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텐트를 치는 와중에 비가 쏟아졌다. 화장실도 하늘을 가릴 작은 실내 공간도 하나 없이, 오로지 텐트만 칠 수 있는 야영장이었다. 지도를 펴보니 칠레노와 쿠에르노에는 'Refugio', 이탈리아노에는 'Camp'라고 쓰여 있다. 그제야 둘의 차이를 이해했다.


준이 목숨을 걸고 물이 잔뜩 불어난 냇가에서 물을 길어왔다. 버너에 불을 붙이자마자 얼어붙은 손부터 던져 넣었다. 탕탕탕. 텐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거칠게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다. 냉동 삼겹살 같은 몸을 침낭 속에 구겨 넣는다. 과연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잠드는 것이 두려웠다. 아니, 잠자는 것을 쉬고 싶었다. 쉬었다가 다시 자고 싶은데, 산장이 아닌 캠프에는 비는커녕 바람을 피할 공간도 없었다.



적어도 토레스 델 파이네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줬다. 잠은 자는 것보다 일어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빛이 어스름한 새벽부터 가는 비를 뚫고 전망대에 오르는 강행군을 펼쳤다.


약 한 시간 만에 두 번째 전망대인 프렌치 협곡(French Valley)에 도착했다. 빙하로 이루어진 협곡은 안개에 삼켜져 공동묘지처럼 스산했다. 경치를 즐길 여유도 없이 금세 비가 거세진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엄청나게 불어난 강물이 내 몸을 종아리까지 집어삼켰고, 그때 즈음에는 미친 척 웃어넘길 여유도 사라졌다.


겨우 텐트로 돌아와 반쯤 얼어붙은 텐트를 돌로 부수다시피 으깨어 배낭에 넣었다. 이쯤 되자 이게 잘하는 짓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몸은 지쳤고 마음은 시궁창에 처박힌 지 오래다. 걸을 때마다 신발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겨우 배낭을 메고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찰나, 언제 챙겼는지 준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상황에 지금 담배가 피고 싶냐?”

“이런 상황이니까 피는 거야! 나도 아주 엿 같다고!”


준은 누구보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 오고 싶어 했다. 그렇게 멀고 인적이 드문 대자연에서의 삶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했다.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 아래에서, 한 손에 와인을 들고 육포를 뜯는 근사한 상상을 해댔다. 그러나 현실의 토레스 델 파이네는 거의 항상 우중충했다. 아니 셋째 날은 정말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밤새 내린 비로 질척해져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길을 골라가며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야 발이 동상에 걸리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걸었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둘 사이에 맴돌았다.



혹독한 시기를 겪고 있는 건 우리뿐만은 아니었다. 그치지 않는 비 사이로 풍경은 어느새 온통 불타버린 지옥으로 변했다. 올해 초에 이스라엘에서 온 어느 머저리가 멋대로 불을 피우다가 이 거대한 국립공원의 서쪽을 죄다 태워 먹었다. 분명 준처럼 제멋대로 담배를 피워대는 놈이었을 것이다. 불은 7일 밤낮을 타올랐고, 2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산티아고에서 헬기로 물을 실어오는 동안 살아있는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다.


타버린 나무와 재가 되어 땅에 나뒹구는 풀들이 공포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걷는 내내 불타버린 나무를 제외하고는 정말이지 놀라울 만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비는 쉬지 않고 내렸는데 어디선가 좀비 떼가 나타나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군데군데 녹색의 새살이 보이기도 했지만, 불태워져 딱딱해진 땅을 뚫고 올라오는 그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말 한마디 없이 8km를 걸어 마지막 산장인 페오(Refugio Pehoe)에 도착했다. 캠핑비의 12배를 내고 방을 잡았다. 사흘 만에 샤워라는 것을 하면서 내가 걸치고 있던 모든 것을 빨았다. 아직 마지막 전망대까지는 11km가 남았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산장 안의 사람들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모여 앉아 비에 젖은 생존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는데, 마치 영화 미스트의 한 장면 같았다.


마침내 에릭과 코다이, 아람단 세 자매까지 도착했다. 산장 안은 생존자 대부분이 방을 잡았다. 오늘 같은 날 야영을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나는 꾸벅꾸벅 졸리던 고개가 바닥에 닿을 지경이 될 때까지 벽난로 위에서 젖은 신발을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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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내리던 비는 다음 날 아침에서야 그쳤다. 바깥으로 나가 물가까지 뻗어 있는 길을 걸었다. 다시 파래진 하늘을 배경으로 파타고니아를 상징하는 오성기와 칠레의 깃발이 동시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아람단 세 자매가 열심히 생존자 비디오를 촬영 중이다.


“해냈구나”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건넸다.


“응. 너희 한국 사람이지?”

“어떻게 알았어?”

“너의 그 엄청난 색깔의 옷을 보고. 한국 사람들은 패션에 민감한 것 같아”


나는 파란색 방수 재킷을 입고 있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노란색 이소룡 바지를 입은 준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세상에 세계일주? 완전 질투나”


양털 모자를 쓴 꼬마 아가씨가 양 볼에 바람을 넣으며 말했다.


“글쎄. 열여덟에 W 트레킹을 해낸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너는 몇 살인데?”

“나? 서른두 살.”


그 순간 아람단 세 자매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외국인과 대화할 때면 이 순간이 가장 즐겁다. 산장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렸다. 보트가 오고 있다는 뜻이다. 멀리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배 한 대가 보였다. 드디어 탈출이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보트에서 내리면서 생존자들과 자연스럽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사람들은 “힘내! 행운을 빌어!”라고 외치곤 했지만, 나는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내내 참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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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물살을 가르며 육지가 멀어져 가자 지난 사흘이 꿈같이 느껴졌다. 내가 겪은 고통이 진짜인가 싶기도 했는데, 죄다 불타 벌거숭이가 된 들판을 보면 진짜가 확실하다. 배가 한참을 달린 뒤에야 산에게 작별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갑판으로 나섰다.


아람단 세 자매도, 에릭도, 코다이도, 모두 같은 자리에서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맑아진 하늘 아래 우리가 걸었던 모든 첨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타버린 잿빛의 대지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설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순간 나는 이 장면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독한 시기를 함께 보낸다는 것은 그런 걸 거다.



준은 끝내 입에도 대지 않은 위스키를 강 위로 흘려보냈다. 그때 즈음에는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고, 가만히 녀석의 곁으로 가 어깨를 감쌌다. 이쯤 되면 너도 날 기억해 줄까 토레스 델 파이네. 어쨌거나 우리는 그 혹독한 시기를 함께 겪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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