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릴로체, 아르헨티나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돌아온 우리는 좀처럼 집 밖으로, 아니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어려운 시기에 남은 탓이다. 기억이 지워진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을 먹으러 나갈 필요도 없었다. 준의 배낭에는 손도 대지 않은 음식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그러고 보면 나는 꽤 통찰력이 있는 편이다). 훈제하지 않아 비싸고 촉촉했던 날 것의 햄은 윤기를 잃고 딱딱해진 채 바닥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이틀을 침대에서만 지냈다. 나는 주로 그간의 여정을 글로 쓰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준은 얇은 솜털 패딩을 껴입은 채 죽은 듯이 쓰러져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실제로 몇 번 흔들어 보기도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겨울왕국에서 벗어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만에 도착한 곳은 푸에르토 몬트(Puerto montt)라는 작은 항구마을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대로변이 바다를 끼고 있다는 점을 빼면, 특별할 것이 없는 그곳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다음날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다시 아르헨티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산맥 중턱에 있는 국경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눈과 얼음의 땅에서 탈출한 것처럼 보였다. 밝은 햇살을 받은 숲은 온통 녹색으로 빽빽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로 국경을 넘자마자, 창문에 하얗게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고도가 점점 더 높아졌고, 유리창에 얼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어느새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은 햇살을 받으며 셔츠 바람으로 어슬렁거렸는데 말이다. 나는 시계를 봤고, 국경으로부터 고작 20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 기이한 풍경이 수십 년 만의 이상기후에 의한 폭설이든 아니든, 버스는 계속 달렸다.
“바릴로체도 파타고니아야?”
“어. 여기가 파타고니아 북쪽 경계야.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추운 곳에서의 휴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적어도 이제 텐트에서는 안 자잖아'라는 준의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산을 빠져나온 버스는 쭉 뻗은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어느새 새하얀 설경은 환상처럼 사라졌다. 푸에르토 몬트에서부터 따라붙었던 비도 잦아들자, 어느새 능선을 그리는 먼 산과 파란 하늘, 그리고 하늘을 그대로 담은 호수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곧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San Carlos de Bariloche). 유럽을 닮은 그 이름처럼, 스위스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도시였다.
알프스의 품에 안긴 스위스와 안데스의 품에 안긴 바릴로체. 마을 너머로 크고 작은 호수가 하늘을 담고, 그 호수 너머 우뚝 선 산맥 어딘가에는 그림 같은 빙하가 솟아나는 곳. 대자연의 품에 안긴 소박한 마을에서의 삶의 달콤함을 일깨워 주는 초콜릿까지. 바릴로체는 한 눈에도 스위스를 꼭 닮은 곳이었다.
마음씨 좋은 호스텔 주인아주머니가, 한국에서 온 손님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빈 방이 없었다) 개인 아파트를 내주었을 때, 나는 마침내 안식할 곳을 찾았음을 직감했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우리는, 제일 먼저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세상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미취학 아동 같은 표정으로 네그로 호수(Rio Negro)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아니, 자식들을 성공적으로 독립시키고 이제 황혼을 맞은 노인의 표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호수를 따라 펼쳐진 거리는 곧 여행자들을 빨아들이는 상점가로 이어졌다. 건물들은 주로 통나무로 지어져 있었는데, 동화에 나오는 구두 요정들이 뚝딱뚝딱 지은 것처럼 생겼다. 해가 저물 즈음 켜지는 도시의 불빛도 예술이다.
언젠가 그녀에게 건넬 반지가 담길지도 모를, 어느 공예가의 작고 예쁜 상자를 사는 동안, 준은 양손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아르헨티나 돈이 많이 남았어"
참으로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준이 말했다. 그제야 바릴로체가 아르헨티나와의 이별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이 쨍하게 맑은 하늘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준은 아사도(Asado)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식으로 따지면, 소고기를 숯불에 구운 일종의 갈비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도시에 수도 없이 많은 아사도 가게가 있지만 매번 지나쳤다.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환율 계산을 잘못해서, 페소가 제법 남은 준(의 돈이)이 있다. 우리는 호수변을 중심으로, 가장 눈에 띄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벽도로 지어진 건물 유리창에, 주리를 튼 것 같은 거대한 소고기 모형을 장식한 식당이었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 것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자신 있게 갈비와 트라비체(내가 좋아하는 아르헨티나의 와인 브랜드)를 주문했다.
칼집이 나있는 통나무 위에 올려진 아사도가 나오자마자 건배를 했다. 그리곤 새하얀 냅킨을 무릎에 둘렀다. 접시 위에 올려진 칼과 포크를 부딪히자 쨍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좋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갈비뼈를 피해, 윤기가 잘잘 흐르는 아사도를 썰기 시작했다. 예감이 빗나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질겅질겅. 칼끝을 통해 느껴지는 부드러운 떨림 대신, 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마치 실리콘을 써는 느낌이랄까. 2cm가 되지 않는 아사도 한 점을 입에 넣었지만, 아메바 같은 모양이 되어 다시 뱉어져 나왔다.
고기가 질기다. 질겨도 너무 질겼다. 실수로(제발) 힘줄을 제거하지 않은 고기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고기를 소금통에 빠트린 것 같이 짰다. 우리는 동시에 말을 잃었다. 겨우 접시를 비우자, 어디선가 나타난 웨이터가 잽싸게 새 접시를(물론 아사도가 담긴) 가져다 놓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For you!"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코다이에게 와인병을 건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머릿속으로 웨이터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가게를 빠져나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엄지도 하늘을 향해 있었다. 슬쩍 보이는 요리사의 표정은, 방금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젖 먹는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끝이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게문을 나서자마자 준이 산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바닷물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혀끝에서 계속 짠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100g에 10달러 씩이나 하는 그 초콜릿은, 한 조각을 먹으면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의 단 맛이었는데,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동안 지난 10일간의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 차례 비바람을 뚫고, 배고픔을 느낄 새도 없이 몰아치던 추위를 견뎌내고, 마침에 안식의 땅에 닿은 두 남자가 보였다. 그 초콜릿은, 여기서 그만 여행을 끝내도 좋을 것 같은 그런 단 맛이었다.
"이제 트레킹은 그만 하자"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자, 준이 오케이라고 크게 외쳤다. 그 순간 직감했다. 지난 10일이, 그리고 지금이, 우리 여행 최고의 순간임을. 앞으로 그 어떤 산을 오른 들, 그보다 완벽할 수 없음을.
호수를 가로지르는 바람, 바람에 춤추는 나무의 속삭임, 영원히 봄일 것만 같은 새들의 노래, 하늘에 아로새겨진 하얀 요정 같은 구름들, 물방울에 비친 호수처럼 맑은 공기. 바릴로체는 그야말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그려놓은 것 같았다. 배낭을 내려놓으려면 지금이 기회다. 우리는 지금 내려갈 필요가 없는 산의 정상에 올라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