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칠레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넘나들던 험난한 일정을 끝낼 때가 왔다. 파타고니아에, 아르헨티나에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이제 여행이 끝날 때까지 눈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마치 숨기기라도 하듯, 하나 있는 패딩 점퍼를 가방 제일 깊숙한 곳에 처박았다.
선뜻 아파트를 내어주었던 숙소 안주인은 아쉽게도 출장 중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안전을 당부하며 다음에 올 때 가게에 걸어둘 태극기를 잊지 말라는 인사를 건넸다. 누군가 그 바람을 채워주면 좋으련만.
다시 국경을 넘어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Santiago)까지는 버스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아침 8시라 그랬는지 산티아고의 버스 터미널은 그야말로 혼돈의 소용돌이다. 양손 가득 짊어진 짐을 버스에 싣기 바쁜 가족들, 터미널 상가의 가게 문을 여는 상인들, 검은 슈트에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은 앞뒤로 커다란 가방을 멘 독특한 차림의 동양인을 투명인간처럼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파타고니아에서 3주를 보낸 우리는 버스터미널만 세 개가 있는 대도시가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어있었다.
사고는 항상 이럴 때 터지기 마련이다. 인파를 뚫고 지하철 플랫폼에 도착해서 준이 한 번 더 지도를 펼쳐 들었다. 역내 스피커는 열차가 들어온다고 요란하게 울어댔다. 탈 생각이 전혀 없는 와중에 누군가 내 배낭을 쳐 몸이 옆으로 돌았다. 한번 돌아간 몸은 가방과 함께 인파에 휩쓸렸고, 파도에 떠밀리듯 자연스럽게 지하철에 올라탔다. 큰 소리를 준을 불렀을 때는 이미 지하철 문이 닫히고 있었다. 이산가족처럼 지하철 유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입김을 확인하는 장면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사람들 틈에 끼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정한 숙소에서 만나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벨라스 아르테스역에 내렸다. 산티아고에서 가장 큰 지하철역 중에 하나다. 바릴로체에서부터 1,200km 를 올라왔으니 날씨는 부쩍 따뜻해저 더울 지경이었다. 햇살은 눈이 부셨고 출근 인파가 사라진 뒤에 남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유로워 보였다. 여기저기 열려있는 카페 테라스에 신문이나 책을 펼쳐 든 사람들이 보였다. 준이 없다는 사실도 잊고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한참 뒤에 도착하고 보니 숙소는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었다. 그곳에서 낯익은 얼굴의 두 남자가 햇살에 삼켜진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왔냐. 인사해. 코다이야”
왜인지 먼저 도착한 준은 태연하게 나와 재회했다. 옆에는 토레스 델 파이네의 첫날, 텐트를 칠 수 있게 도와줬던 코다이였다.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와인병이 떠올랐다.
"살아남았구나?"
"살아남았지"
대답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 코다이도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 중에 하나다. 해산물이 가득 들어간 칠레식 해물탕을 해치운 뒤, 다같이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을 걸었다. 광장의 명물인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로마를 엿보고, 그늘진 나무 아래 그림 그리기에 한창인 화가들에게서 파리를 봤다. 지하철 역에도 거리에도, 교회 안에도 다양한 예술작품이 쉽게 눈에 띄었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풍족한 도시. 그것이 산티아고의 첫인상이었다.
해가 지자 호스텔에서 가라오케 파티가 열렸다. 사람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흥청망청 술을 마셨고 우리도 그랬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 소파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준의 시선이 뚜렷이 한 곳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묘령의 여인이 보인다. 피부는 가무잡잡했지만 동양인이다. 매우 큰 눈과 입, 작은 얼굴이 배우 장진영을 떠올리게 만드는 미인이었다. 결국 준에게 끌려온 그녀와 와인을 주고받았는데, '요세미티'를 '요헤미히'라고 발음하는 완벽한 미국인이었다.
분위기는 계속 달아올랐고 누군가의 노래가 끝나자 갑자기 준이 마이크를 움켜잡았다. 온통 혀가 꼬여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브루노 마스의 'Marry you'를 열창했다. 아는 여자든 모르든 여자든 앞에서 절대 불러선 안 되는 노래 중의 하나가 'Marry you'다. 준은 아주 신이 난 표정이었지만, 나는 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곧 노래가 끝나자 내 기억도 멈췄다.
아침이 오자 온몸의 수분이 증발한 것 같은 목마름이 밀려왔다. 로비의 음악은 거의 새벽 4시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는데, 나는 쭉 기절해있었다. 커피 한 잔으로 쓰린 속을 달래고 여전히 햇살이 쏟아지는 아르마스 광장을 걸었다. 마음껏 게을러진 우리는 조금만 다리가 아플 것 같으면 곧장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저녁이면 파티에 참석해 같은 방 룸메이트인 토니와 '장진영'을 벗 삼아 와인을 홀짝였다.
사흘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완전히 게을러진 몸은 어떠한 고생도 거부했다. 한 번은 산타루치아(Santa Lucia)라는 익숙한 이름의 언덕에 올랐는데, 고작 10분 동안 온몸이 덜덜 떨리는 경험을 했다. 나지막한 그 언덕에서는 멀리 눈 덮인 안데스산맥이 보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 국경을 넘나들며 몇 번이나 지나쳤던 곳이었지만, 지난 3주가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남미 대륙을 따라 남북으로 4,000m가 넘게 이어지는 안데스산맥은 이 도시를 지키는 거대한 장벽 같았다. 마리아상을 꼭대기에 얹은 산크리스토발 언덕(Cerro San Cristobal)에 오르면 분명 더 멋진 풍경이 펼쳐질 것 같았다. 그렇게 산크리스토발 언덕이 보이는 국립공원 입구까지 가 놓고도 언덕을 오르지는 않았다. 어딘가에는 도시를 통째로 내려다볼 수 있는 케이블카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무언가를 보지 않고도 전혀 아쉽지 않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준이 '악마의 와인(Casillero del Diablo, 칠레의 국민 와인 브랜드)'을 만드는 와이너리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나는 여행기를 기록하거나 그녀에게 밀린 편지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호스텔의 서고에서 누렇게 바래고 울퉁불퉁해져 냄비 받침대로도 쓰이지 않을 것 같은 가이드북을 읽게 된 것도, 오죽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펼친 것 '칠레의 역사' 페이지였다.
스페인에게 정복당했던 모든 도시에 '아르마스(Armas)'라는 똑같은 이름의 광장이 있다. 대게는 광장의 어딘가에 정복자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며칠 전에 방문한 대성당 바로 맞은편에서 1540년에 이 도시를 함락시킨 발디비아의 동상을 발견했다. 근사한 말에 오른 로마 장군 같은 모습이었다.
산티아고의 아르마스 광장이 다른 '아르마스'와 다르게 특이한 것은 광장 어딘가에 또 하나의 조각상이 있다는 점이다. 돌로 조각된 그 석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침략자 발디비아에 맞서 싸웠던 칠레의 원주민, '마푸체족'의 지도자였다. 가지런히 모은 손 위에는 정복자와 침략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발디비아의 잘린 머리가 놓여 있었다.(실제로 발디비아는 마푸체족과의 전투에서 사로잡혀 최후를 맞았다. 후에 발견된 기록에서 하나 같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서술했다고 한다.)
그제야 주변을 살펴보니 한 눈에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칠레의 원주민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느긋하게 카페에 앉아 보기 좋게 그을린 히스패닉과 나무 그늘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물건을 파는 마푸체족. 서로 다른 두 개의 동상처럼 서로 다른 두 인종은 정확히 분리된 공간 아래에서만 존재했다.
대체 침략자와 민족 지도자의 동상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이 광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남산에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뜻하지 않게 재회한 두 영혼을 이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했다. 물론 그 궁금증을 풀 기회는 전혀 없었다. 준이 양팔 가득 안고 온 악마의 와인을 마신다고 한들 사라지지도 않았다. 산티아고에서의 나날들은 그렇게 불편하고 평화롭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