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에 내려 정면을 올려다 보면, 산 능선을 따라 자리 잡은 집들이 가득 보인다. ‘산복도로’ 라고 불리는 아슬아슬한 산길 위아래로 산을 깎아내고 자리 잡은 집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멀리 영도를 비롯한 부산항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10년을 살았는데, 딱 한 번 정확히 지구 반대편인 칠레 산티아고에서도 한 시간 떨어진 '발파라이소' 라는 작은 도시에서 부산을 떠올린 적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다니나 싶을 만큼 가파른 산 길을 따라 질서 없이 늘어선 집들과 그냥 뒀으면 우중충 했을 벽을가득 메운 벽화들은 영락 없는 감천 문화마을이었고, 그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항구와 갈매기들도 어김없이 나를 향수에 빠져들게 했다. 비슷한 도시에 10년을 살면서 사진 한번 찍지 않았던 그 익숙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아무도 반기는 이 없는 파도 치는 백사장을 무심하게 걸었다.
특별할 것도 없고 구형 핸드폰으로 찍어 화질도 좋지 않은 풍경 사진을 왜 보관하고 있냐는 말을 들을 때면 어김없이 그 날을 떠올린다. 잔뜩 찌푸린 하늘은 지상의 모든 것을 회색으로 물들였고, 해변의 산책로는 허전함을 감추지 못한 채 맨 살을 드러냈다.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날, 기어이 내린 비에 실망한 꼬마 아이의 기분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그 텅 빈 백사장의 파도에서 쉬이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여름이면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곳, 항구 주변의 흰 널빤지로 외장한 집들, 품위 있는 식당 몇 곳, 눈길을 돌리는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바다. 아마도 여행 중에 고향을 그리워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언덕 위까지 풍기는 바다 냄새를 벗 삼아 그 텅 빈 바다를 걷던 그 때가 지금 그리운 것처럼. 사진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사진에서 익숙한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