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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Jun 11. 2017

바람에 갇힌 마을


그 곳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덕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마을의 전부인 그 곳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저 멀리 피츠로이 봉우리에서 뿜어내는 것만 같은 하얀 구름들이 가로 맺히곤 했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도 엘찰튼, ‘연기를 뿜는 산’ 이다.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기 힘들 만큼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마침내 구름이 휘몰아치면, 저 산맥너머 어딘가에 있는 시계태엽을 되감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마을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여전히 소리도 냄새도 풍기지 않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되풀이한다.


이대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남은 여행도, 곧 복잡해질 앞으로의 삶도, 일년에 겨우 너댓번, 저 피츠로이가 구름 사이로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 찰나에 묻혀 사라질 것이다. 어느새 여행자는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단잠에 빠질 것이다. 

 

얼음이 녹고 다시 봄이 오면, 거리는 이 구름 속에 갇힌 마을을 보기 위한 여행자들로 가득 찰 것이다. 꽃은 한껏 몸집을 부풀리고, 그때 쯤이면 작은 마을 거리에 예술품들이 몇 개쯤 늘어나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이 고요한 마을의 시간도 서서히 흘러갈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곳에 잠시 머물다 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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