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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Jul 29. 2017

28화 - 아타카마 사막의 비극 後

아타카마 사막, 칠레

지구에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같이 멀고 아득한 땅이 많다.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경비도 많이 들어 선뜻 떠나지 못하는, 여행이라기보다 탐험이 어울리는 그런 곳 말이다. 아타카마 사막(Atacama Desert)이 꼭 그렇다.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중심부에는 500년째 비가 오지 않은 곳도 있다고 했다. 물이 없으니 작은 미생물조차 살 수 없고, 가끔 사막이 생기기도 전에 살았던 수천 년 전 생명체의 시체가 썩지도 않은 채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가 머무는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는 바로 그 사막을 탐험하기 위해 최소한의 생존 시설만을 갖춘 마을이었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태워버릴 수 있을 듯한 태양과 숨도 쉬기 힘든 흙먼지 때문에 돌아다니기조차 쉽지 않은 곳이다. 마을이라기보다 베이스캠프에 가깝다. 우체국이나 은행은 당연히 없었고, 마을에 하나 있는 ATM기는 정오가 되면 벌써 돈이 떨어지곤 했다. 현금을 구하려면 칼라마까지 버스로 한 시간을 가야 한다. 마을 어디에서도 신기루처럼 오래전에 생명이 꺼진 화산이 보였고, 차를 타고 15분만 나가면 생명의 흔적은 사라지고 모래뿐인 땅이 나왔다. 


마을에서 가까워 그나마 탐험하기에 적합한 그 일대를, 사람들은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이라고 불렀다. 이름처럼 생명체도 물도 없이 메마른 땅이다. 얼마나 건조한지 입술을 움직였다가는 아랫입술의 표피가 통째로 벗겨질 것 같았다. 바닥의 모래는 붉게 물든 소서스 블레이와 달리 불에 타고 난 잿빛에 가까웠다. 시커먼 사구를 보고 있으면 언덕이라기보다 땅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한 착각이 든다. 모래는 손바닥을 뚫고 나갈 것처럼 곱고 가늘어서, 발이라도 디뎠다간 지구 깊숙한 곳으로 삼켜질 것 같았다. 


달의 계곡의 하이라이트


사막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달의 계곡에서 돌아왔을 때, 숙소 정문에서부터 한국말이 크게 들려왔다. 내 손에는 사막의 갈증을 식혀줄 맥주 6캔과 며칠간의 식량이 들려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신가?”


젊은 남자 네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내가 그 당연한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다 같이 윗옷을 벗더니 온 마당이 울릴 정도로 크게 털기시작했다. 보아하니 방금 볼리비아에서 국경을 넘어온 것 같았다(볼리비아의 우유니에서 아타카마까지는 해발 4,000m의 고원사막이 펼쳐져 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였기 때문에 정보도 얻을 겸 자연스레 서로의 모험담을 나누기로 했다.


“아, 그러니까 두 분이 회사 그만두고 세계여행 중이신 거네요?”

“뭐 그런 셈이죠. 그쪽은요? 아직 학생이신 거 같은데...”

“아 저는 에콰도르에 살아요. 에콰도르 대학생이고, 이 친구들은 한국에서 왔는데 인터넷으로 여행 일정이 맞아서 같이 다니게 됐어요.”


흔한 이야기였지만 에콰도르 이민자라는 점은 특이했다. 무리의 리더 격으로 보이는 그는 비쩍 말라 곧 쓰러질 것처럼 앙상했다. 움푹 파인 볼 때문에 광대와 입이 유난히 튀어나와 보여 병든 닭 같았다. 서로 볼리비아와 칠레의 정보를 교환하던 차에 그가 물었다.


“아, 그러면 두 분 다 스페인어는 못 하시고?”

“전혀요.”

“근데 왜 남미로 오셨어요? 말이 안 되면 불편할 텐데?"

"그냥 손짓 발짓이죠 뭐"


묘한 순간에 말이 짧아지는 그 말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와! 어떻게 그렇게 한 달 넘게 다녔어요? 뭐 할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것이 무슨 신의 은총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다. 내가 썩 기분이 나빠졌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준이 내 다리를 툭툭 차댔다. 3초 정도 고민하긴 했지만, 기어코 하고 싶은 말을 뱉었다.


“아니, 스페인어 못하면 남미 오면 안 돼요? 영어 못하면 미국 못가나?”

“아뇨. 뭐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그냥 여기는 외국인 상대로 사기도 많이 치잖아요.

“그런 일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페인어를 하든 말든 니가 상관할 일은 아니잖아."


분명히 들으라는 듯이 반말로 끝냈다. 분위기는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더 험한 말이 나오기 전에 준이 나를 방으로 끌어당겼다. 방금 사 온 맥주 두 캔을 땄다. 딸칵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드릅게 건방지네. 병든 닭 같은 새끼가.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 씩씩거리며 거친 말들을 쏟아 냈다. 다시 눈을 뜬 건 아침 10시 즈음이었는데, 주방에서 크고 짧은 단말마가 들려왔다. 준이 잔뜩 화가 나 있었고, 냉장고에 있어야 할 남은 맥주 네 캔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맥주 먹고 튀었어. 이 개새끼들!”


네 명의 한국인은 이미 떠난 뒤였다. 물통의 물을 목젖 깊숙이 들이키며 마른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현금을 털어 산 맥주다. 이제 우리 수중에 남은 거라곤 방금 들이킨 4리터짜리 생수 한 통뿐이다. 고립 사흘째. 그마저도 사라질까 두려웠던 우리는 물통을 방으로 옮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체온에 가깝게 데워진 물은 물인지 오줌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한 여행사에서 토요일 우유니로 떠나는 3박 4일 짜리 상품을 예약하고, 돈은 이틀 뒤에 지불하기로 했다. 이틀 뒤 노트북을 찾으러 칼라마에 갔을 때 돈을 뽑아올 생각이었다.


도대체 닭고기가 맞기는 한 것인지 의심이 드는 정체불명의 고깃덩어리가 하루의 유일한 단백질이었다. 닭처럼 생기긴 했지만, 식감은 나무껍질에 가까웠다. 저녁은 뜯기 전보다 더 바삭하진 시리얼을 우유도 없이 씹어 먹었다. 조각난 부스러기들이 바짝 마른 입천장을 날카롭게 찔러댔다. 마을에 딱 하나 있는 ATM기는 텅 빈 지 오래였고, 어디에도 현금을 구할 곳은 없었다.



고립 나흘째. 쓸모없이 넘치는 시간을 메꾸어 주던 휴대용 게임기가 사라졌다. 방에서 들고 나간 적이 없으니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증발한 게 아니라면 숙소에 드나드는 청소부 중 한 명의 짓이겠지만, 나는 이미 손가락 까딱할 기운도 없었다. 어차피 먹는 것도 아닌데 뭐. 햇빛이 아슬하게 경계를 드리운 해먹에 누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방안에 얼마 남지 않은 물통이 보였다. 그렇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재가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잔돈을 탈탈 털어 좀 더 나은 저녁을 먹을지, 물을 살지 고민하다 결국 물을 선택했다. 


마침내 택배가 도착하는 날, 인당수로 떠나는 배에 오른 심청의 마음으로 칼라마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혼자 탔다). 칼라마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주소만 보고 우체국을 찾아가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머릿속으론 계속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만약 노트북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내일이 토요일이니 적어도 월요일까지 최소 사흘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 생각을 하니 메마른 손에서 땀이 났다.


우체국의 문을 밀자 딸랑하는 종소리가 났다. 은혜로운 에어컨 바람에 잠시 숨을 가다듬고 눈이 마주친 직원에게 여권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노트북이 나에게 왔다. '뽁뽁이'가 잔뜩 둘린 포장지에는 '힘내 친구들. 그것이 여행이니까' 라고 적혀있었다. 


마음은 뛸 듯이 기뻤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제일 먼저 은행에서 돈을 뽑아 길거리에서 파는 소시지를 아무렇게나 입에 집어넣었다. 나는 머릿속에 입력해 둔 투어 금액이 맞는지, 몇 번이나 돈을 헤아리며 다시 아타카마에 도착했다. 이제 잔금을 치르고 내일 아침에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러면 어떡해? 우린 어쩌라고!"

“정말 미안해. 그런데 며칠간 국경이 닫혀 있어서, 지금 발이 묶인 여행자가 너무 많아. 내 잘못이니 취소라면 100% 해줄 수 있는데, 지금 어디를 가도 내일 출발은 불가능해. 이미 자리가 없어”


또 변수가 발생했다. 볼리비아로 가는 국경이 며칠 닫혀서 투어가 밀려있었던 거다. 그 얘기를 왜 사흘 전에 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땐 내일 당장 국경이 열릴 줄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처럼 몇 군데의 여행사를 돌아봤지만 모두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미안해. 하루만 더 기다려줘. 모레는 무조건 출발할 수 있어.


지금 하루 연기된 게 문제가 아니다. 또 돈이 없다. 내일 볼리비아로 떠날 것이라 생각했기에 최소한의 돈만 뽑아왔다. 왜 항상 국경을 넘기 직전에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믿었던 희망이 한순간에 절망으로 바뀌었을 때의 그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 알 수있다. 그 절망이 분노로 바뀌어 폭발했다.


“미안하다고 끝날 일이 아니야. 우린 돈이 없다고. 빌어먹을 ATM은 있으나마나고. 내일 하루를 굶게 생겼다고!”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작은 사무실 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자도 나도 무엇을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고, 결국 저녁 한 끼를 얻어먹는 것으로 매듭지었다(아마 녀석은 내 눈에서 이글거리는 무언가를 본 것이 틀림없다).


대체 누가 사막을 낭만적이라고 했는가. 여긴 머저리들 천지다. 대체 환전소는 왜 없는 것인가. 형편없는 환율로도 어마어마한 달러를 벌 수 있을 거다. 새로 사 온 맥주 캔을 따자마자 한 번에 들이켰다. 미지근한 탄산이 목을 긁어댄다. 땀에 젖었다 마르길 반복한 셔츠 속으로 잠시 바람이 든 기분이다. 그럼에도 사막에서의 삶은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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