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볼리비아
덜컹덜컹. 포장도 되지 않은 도로를 따라 작은 버스가 힘겹게 고개를 넘는다. 창밖은 풍경이랄 것도 없이 그저 황량했다. 잔뜩 날리는 모래 먼지가 온통 차를 집어삼켜, 마치 몰래 국경을 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얼마 안가 사방이 확 트인 벌판에 칠레와 볼리비아의 출입국 사무소(라기보단 그냥 막사)가 나린히 서 있는게 보였다. 철조망도 차량 통행을 차단하는 차단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런 곳에 울타리를 치고 군인을 세워봐야 별 의미는 없을 것이다. 어떤 머저리가 이 사막을 횡단하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국경심사를 통과한 뒤, 칠레에서 온 여행자들과 볼리비아에서 온 여행자들이 서로 악수를 하며 차를 바꿔 타는 풍경이 벌어졌다. 볼리비아 쪽에 세워진 차는 수많은 사진에서 익히 봐온 머리 위에 봇짐을 진 것 같은 바로 그 지프였다. 스페인 단체여행객이 가장 먼저 팀을 이뤄 사라졌고, 마지막까지 남은 떨거지는 준과 나, 그리고 프랑스인 앙트완이었다.
“오케이. 빨리빨리. 아미고.”
마지막 지프 옆에 선 남자가 손짓하며 세 가지 언어를 섞어 말했다. 리카르도라고 소개한 그가 우리의 운전기사이자 가이드였다. 앞으로 3일간, 지명도 방향도 모른 채 우유니를 향하는 여정이 펼쳐진다. 미리 얻은 정보에 따르면 꽤 험한 여정인 모양이다. 3일 내내 해발 5천 미터를 오르내리느라 멀미와 두통을 호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호흡곤란을 겪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그 병든 닭은 에프킬라처럼 생긴 산소통을 들고 다녔다.
정작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곳의 기이한 풍경이었다. 해발 4천 미터가 훌쩍 넘는다는 이름 모를 국립공원의 풍경. 보통 이 정도 높이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얼음과 눈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이고, 까마득한 절벽 위에 놓인, 언제 떨어질지 모를 위태로운 다리와 누군가를 기리는 십자가 무덤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본 해발 5천 미터의 풍경은 많이 달랐다. 차가 달리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평평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길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아무리 달려도 평평한 길이 계속 이어졌다. 상식과 일치하는 것은 생명체라고는 우리 넷밖에 없다는 점뿐이었다. ‘나 화산이야’라고 쓰여 있지만 꼭대기에는 희끝하게 눈이 뭍어있는 산이 드문드문 지나갔고, 열 대 정도 모여있던 지프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과연 여기 어딘가에 먹고 잘 곳이 있긴 한 것인지 걱정이 됐다.
처음 멈춘 곳은 땅 한가운데서 온천이 솟아나는 곳이었다. 나지막한 언덕아래에 있는 고인 물에 엄청난 태양 빛이 반사되어 신기루 같은 무지개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해발 5천미터에 왜 온천이?'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고인 물 위로 열기가 이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온천에 들어갔다가 천천히 출발해도 돼"
리카르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곧장 되물었다.
"응?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가..."
대체 왜? 삶겨서 무언가의 먹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사막의 태양 아래 뜨거운 온천에 들어갈 이유는 뭐란 말인가. 준과 앙트완도 미동도 없이 물줄기가 흘러나가는 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나지막한 언덕을 뛰어 내려가는 순간 몸에 이상을 느꼈다. 중력이 몇 배로 늘어난 것처럼 뛰고 있다고 생각한 다리는 그저 무겁게 덜컹거리기만 했다.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몸을 겨우 일으켜 중심을 잡았다. 10초도 채 안되는 그 짧은 찰나에 숨이 차오르고 현기증이 아찔하게 뇌를 스쳤다.
“리카르도! 여기 몇 미터야?”
리카르도가 흙먼지가 내려앉은 지프의 보닛 위에 크게 숫자를 썼다.
“4,000”
한라산을 세로로 두 개를 쌓아야 오를 수 있는 높이다. 병든 닭이 소중하게 품고 있던 산소통이 떠올랐다. 대체로 나는 위험에 대처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이제 곧 4,800m 까지 올라가니까, 머리 아프면 빨리 약 먹으래”
리카르도의 스페인어를 앙트완이 번역한다. ‘그래. 잘하고 있어 앙트완’이라고 되뇌이며 다시 언덕(?)을 올랐다. 높이는 한 5m나 될까. 준은 맛도 없고 향도 별로인 코카잎(마취성분이 있어 고산증 증세를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을 질겅질겅 씹어대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엉덩이를 앞으로 내밀어 격하게 카시트에 기댔다.
점심 식사를 위해 어느 민가에 내렸을 때는 어지럼증이 더 심해졌다. 분명 평지였는데 누가 발밑을 질질 잡아 끄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술에 취한 것처럼 몸이 흐느적거렸다. 무릎을 굽혀 도약을 해보지만, 뛰었다고 생각한 몸은 채 20cm도 뜨지 못한 채 너무 빨리 떨어져 균형을 잃고 고꾸라졌다.
결국 준의 비웃음 속에 쓰디쓴 코카잎을 한 가득 씹었다. 마치 바스러지는 플라스틱을 씹는 것 같은 끔찍한 맛이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온 혀가 얼얼해져 점심으로 나온 파스타에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그 난리를 겪는 모습을 본 리카르도가 조금 낮은 지대로 이동하겠다며 시동을 걸었다. 내 무릎은 이제 차를 뚫고 앞으로 나갈 지경이었고, 모래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풍경을 30분 정도 달렸다. 몸이 미세하게 내리막길을 느낄 때 즈음 갑자기 풍경이 바뀌더니 다시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산 아래에는 거대한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호수 위에 홍학의 모습을 한 조형물이 잔뜩 세워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수증기가 잔뜩 솟아 오르는 곳이 있었는데, 계란 썩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한때 화산이었음이 분명한 산꼭대기에는 하얀 눈이 핏줄처럼 서려 있었고, 담수가 분명한 호숫가에는 소금이 딱딱하게 굳어진 하얀 바닥이 이어졌다.
"뭘 어쩌라는 거야"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안다.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호수에 다가가자 갑자기 홍학 동상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노라 말했을 때 '아, 그랬군요' 하고 대답한다면, 그 건 둘 중에 하나다. 여기에 와봤거나 아니면 조금 모자라거나. 홍학이 모형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여기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우리뿐만은 아니라는 뜻이었고, 내가 아직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였으니까.
전혀 상상이 안 되는 장소에 오면 으레 무언가를 하기 마련이고, 앙트완은 한 마리 홍학이 되기로 했다. 사막에서 입기에는 너무 달라붙은 그의 바지 아래로 앙상한 복숭아 뼈가 홍학의 다리처럼 드러났다. 가운데 가르마를 탄 긴 머리는(듬성듬성 비긴 했지만) 깃털처럼 바람에 날렸고, 내내 두르고 있던 검은 스카프를 날개처럼 펼쳤다.
그는 내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알아서 포즈를 자유자재로 바꿨다. 과연 파리지엥답다고 생각하는 중에, 녀석이 스카프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엉덩이를 뒤로 쑥 뺀 채 ‘후’ 하고 입으로 부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니까 그건 다리 사이에 덜렁거리는 게 없는 사람 중에서도, 아주 숙련된 모델이나 취할 것 같은 포즈였다. 사실 앙트완이 그쪽 세계의 인간임은 진작 알고 있었다. 싱글침대 3개가 놓인 숙소에서(이런 곳에 왜 민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핑크색 베개는 내 거야!'라고 외치기 전에 말이다.
해발 5천 미터의 풍경은 노을도 남달랐다. 불꽃을 뿜어내는 듯한 노을은 그야말로 시뻘겠다. 불꽃은 지상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이 하늘을 가득 덮었고, 저 멀리 금방이라도 버섯 모양의 구름이 나타날 것 같았다. 나는 그 노을 아래에서 그녀와 입을 맞추는 상상을 했다. 우리는 격렬하게 입을 맞추었고 서로의 몸을 더듬었다. 그러다 준이 코를 골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