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사막, 볼리비아
생각보다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두통은 온데간데없이 어느 때보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하늘은 이미 새파랬고, 벌판 여기저기에는 희고 검은 바둑돌 같은 생명체들이 물이 고인 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얘들이 어제 우리 저녁 식사였어."
막 물가에 도착한 라마 한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손이, 앙트완의 말에 멈칫했다.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아아. 맛있었지. 냄새도 안 나고, 질기지도 않고' 하고 사라졌다. 다정한 손길은 거두기로 했다. 오늘 점심 도시락에도 들어가 있을 테니.
돈을 미리 내고 투어를 하면 항상 신경이 예민해지곤 했다. 케냐에서의 사파리 투어나 이집트의 룩소르 투어, 리우에서 시티투어를 했을 때도 그랬다. 가성비를 떠나서, 일단 돈을 지불하고 도시를 벗어나면 갑자기 말이 바뀌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유니로 가는 투어는 달랐다. 여기가 어딘지조차 몰랐지만 즐거웠다. 우유니 사막을 향해 가고있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자리에 앉아 운전석에서 보이는 거짓말 같은 풍경을 즐겼다. 리카르도가 내리라고 하면 내렸고, 뛰라고 하면 뛰었다.
온통 소금으로 뒤덮여 고무 타이어처럼 물컹거리는 땅을 빠져나가자 길은 다시 황량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들이 잔뜩 솟아나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으니 "어이!" 하고 외치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리카르도가 가장 높게 솟아오른 암벽의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나는 한걸음에 암벽을 뛰어오를 기세로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등 뒤로 꽂히는 그녀의 잔소리도 없으니까.
이쯤 되면 낯선 곳에 가면 꼭 하는 일로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을 꼽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나 치명적이다. 속이 뻥 뚫리면서 가슴에 쿵 하고 돌 하나가 떨어져 울리는 것 같은 느낌. 잠시 후 찾아오는 머리가 핑하고 도는 듯한 느낌.
실개천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새겨진 길을 따라가면 이제껏 내가 지나온 길을 모두 만날 것만 같았다. 시야를 가리지도 휑하지도 않게 비켜선 바위절벽 위에서 긴 회상에 빠졌다. 내려온 뒤에는 그 위에 올랐을 때의 기분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했다. 그때부터 우유니 사막에 도착하기까지의 기억이 거의 없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2일째 저녁에 우유니 마을에 도착했다. 저녁으로 피자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괴상한 물체가 올려진 엉망진창의 밀가루 반죽을 먹었다. 우리는 그것을 피자라고 부르지 않는 것에 즉시 동의했다. 소금사막이 모든 여행자의 버킷리스트일지는 몰라도, 우유니 마을은 고단한 여행자의 마음을 녹이기에 역부족이었다. '단지 소금사막에 가기 위해 하룻밤을 머무는 곳'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마을에서 우리를 만족시킨 것이라곤, 샛노랗게 익어 절로 침이 줄줄 흐르는 500원짜리 망고뿐이었다. 해발 3,600m에서 왜 망고를 팔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종 목적지인 우유니 사막에 도착한 건 다음날 오전 10시가 지나서였다. 여태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부쩍 늘어난 지프 수십대가 줄을 지었다. 소금사막의 시작은 녹슨 채 버려진 기차에서부터다. 언뜻 보면 고철 쓰레기장을 연상시키고, 이제는 도마뱀들의 안식처가 되어버린 기차의 무덤(Cememtero de Trenes). 넝마가 되어 버려진 기차를 보며 달리진 않더라도 크게 경적을 울려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그래야 마침내 새하얀 사막 위에 올라섰을 때, 그 순간이 좀 더 꿈결 같을 것 같았다.
지프가 드디어 소금 사막 위에 섰다. 무심결에 차 문을 열고 내렸다가 단검에 눈을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이런 말을 그녀에게 한다면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하겠지만, 장담하건대 대낮의 우유니 사막을 맨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금 사막은 하얘도 너무 하얬다. 지표로 삼을 것도 없고, 그렇다고 길에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평하고 하얀 소금 결정체 위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속도도 방향도 잃고 차가 정지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기 중에 떠도는 소금 냄새에 취해 차에서 잠깐 졸았다 싶었는데, 깨고 나니 눈앞에 거대한 선인장으로 이루어진 섬이 나타났다. 이 아름다운 사막의 유일한 이정표 역할을 하는 그곳에 가이드들이 분주하게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향긋한 냄새는 라마 스테이크가 분명하다.
선인장 섬 꼭대기에서 본 풍경은 차라리 꿈이고 싶었다. 꿈에서 깨어나 곁에 있는 그녀에게 말했을 때, '나도 가고 싶어'가 아니라 '그건 무슨 영화야' 하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래서 평생 나만 알고 있는 그런 풍경이었으면 했다. 알려진 길이만 100km가 넘는다는 거대한 소금 덩어리는 세상의 모든 빛깔을 집어삼켰다.
태초의 지구는 온통 하얀색이었고, 그곳에는 푸른 바다도 우거진 녹음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선인장에 핀 꽃이 자라 숲을 이루었고, 파란 하늘이 내려와 바다가 되어 지상을 물들였다. 숲은 나름대로 대지를 채워나갔고, 세상에는 하얀색이 점점 줄어갔다. 이제 우리는 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과 바다가 되다만 구름을 통해서만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찬양하라 이 풍경을. 이 행성이 숨기고 싶었던 단 하나의 비밀장소인 이곳을. 사막이 흐릿하게 멀어질 때까지도 나는 그 풍경이 진짜인지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 남겨진 100억 톤의 소금이 우리 세대에 없어질 일은 없다는 것만은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