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카카 호수, 볼리비아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를 탔다. 국경에 있는 코파카바나(Copacabana)라는 마을로 가는 버스였다. 겨우 3시간 거리라서 별일 없겠다 싶었는데, 볼리비아의 버스는 언제나 곤욕스럽다(물론 그렇다고 아프리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좁은 간격 탓에 앞 의자에 무릎이 닿을락 말락 하는 불편한 자세로 구겨진 지 2시간.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던 그 순간 창밖의 색깔이 바뀌었다.
초록빛 산봉우리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통 파란색으로 변했다. 해발 4천 미터에 갑자기 바다가 나타날 리는 없으니 분명 호수다. 지구에서 두 번째로 크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Lake Titicaca).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것이 진짜 호수인지 몹시 확인하고 싶었지만, 뛴다고 생각한 발걸음은 걷는 것보다 아주 약간 빠른 수준일 뿐이었다. 이곳은 여전히 한라산 두 배 높이다. 분명 머리 위에 떠 있어야 할 구름이 정확히 내 눈높이에 보였다. 호숫가에 세워진 거대한 입간판에 의하면 해발 3,800m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의 면적은 8,100편방km 란다. 사람의 눈으로는 그 끝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요란스러운 설명과는 달리 부둣가는 조용했다. 티티카카 호수 위에 떠 있는 태양의 섬(Isla del Sol)으로 가려는 사람들만 십여 명 배를 기다릴 뿐이었다. 쇼핑센터도 으리으리한 호텔도 없는 거리에는 마차가 지나다니고 나귀가 짐을 나를 것만 같은 향수와 아늑함이 느껴졌다. 마을의 오른편 끝에 호수를 한눈에 바라볼 만한 언덕이 눈에 들어왔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호수는 바람결을 따라 마치 파도가 치듯 묘한 물결을 만들곤 했다. 기어코 손끝을 담궈 혀끝에 데어 보지만, 역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딱 하나 있는 거리 양쪽에 늘어선 식당들은 너도나도 트루차(Trucha, 티티카카 호수에 서식하는 민물송어)를 팔았다.
호수의 풍경은 분명 놀라웠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흥분되지는 않았다.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이를테면 티티카카의 풍경은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느껴진다(고지대라 실제 사람들이 느리게 걷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속도에 시선을 맞추다 보면, 몸도 마음도 평온해진다. 비키니 여인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거대한 고성을 본뜬 호텔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바릴로체와는 매우 달랐다. 해발 3천8백 미터에 있는 호수에 올라 겨우 일광욕이라니 시시하지 않은가. 티티카카 호수는 뭘 하기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곳이다.
지체 없이 태양의 섬으로 가는 보트를 탔다. 멀어지는 마을을 바라보는 내내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토록 고립적인 위치가 이 한가로운 마을에 거대한 자본주의가 들이닥치는 것을 늦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수년 전으로 돌아가 어쩌면 빌딩 숲으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를 이곳을 사버릴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사유지. 접근근지'라고 표시해 두고, 이 풍경이 영원히 머무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했던가. 선착장 주변에 잔뜩 쌓여 있는 모래에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보트가 속도를 냈다.
보트의 1층은 온갖 짐을 멘 원주민이 대부분이었고, 탁 트인 지붕은 여행자들 차지였다. 그곳에 올라 호수를 보는 것도 좋았겠지만 내 관심은 맞은편에 앉은 수줍은 꼬마였다. 흘끔흘끔 여행자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동자는 햇빛을 잔뜩 받은 호수 표면처럼 맑고 빛났다. 세상에 이런 눈동자가 있구나 할 정도로. 몰래 훔쳐보던 시선이 나와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의 품을 파고든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카메라를 들 생각도 못했다.
보트에서 바라보는 태양의 섬(Isla del sol) 은, 섬 전체가 계단식 논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모양이었다. 섬에 도착하고 나니, 더욱더 느린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배에서 내린 짐을 하나씩 당나귀에 실었다. 그리곤 해발 3천6백 미터의 계단을 당나귀보다 더 느릿하게 올랐다.
섬을 오르는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마치 집합이라도 한 것처럼 꼬마 아이들이 모여 앉아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저 커다란 배낭과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안경을 쓴 채 배에 타고 내리는 별스러울 것 없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니까 딱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말이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트루차를 먹고 나오는 길에 구경꾼 꼬마 중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매우 유창한 영어로 자기가 아는 숙소가 있으니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어디서 배웠냐고 했더니 그냥 알게 되었단다.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인 것일까.
숙소라고 해봐야 민박 몇 개가 전부인 그곳에서 굳이 그 아이의 안내를 받아 어느 집에 도착했다. 슬그머니 손을 내밀며 '우노 솔'이라고 외치는 그 모습에 가지고 있던 동전을 전부 내어 주었다. 밉게 보려면 끝도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이 조용한 일상에 허락 없이 끼어들어 이제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여행자인 것을. 볼리비아에서는 돈을 쓰면 쓸수록 미안해진다.
민박집 주인은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섬 전체에 물과 전기가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며 몇 번이나 양해를 구했다. 덕분에 양손을 가지런히 가랑이 사이에 모으고 몇 번이나 맞절을 했다. 전기야 아무려면 어떠랴. 하루에 다섯 번 들고 나는 배가 섬에서 벌어지는 유일한 '일'인 곳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이 섬에 들어온 이유는 오로지 석양을 보기 위해서다.
숙소에 대충 짐을 놓고, 해가 지기엔 조금 이른 시간에 꼭대기에 올랐다. 온통 계단식 미로처럼 길이 나 있는 태양의 섬은 꼭대기에 오르자 비로소 넓고 평평한 곳이 나타났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크고 작은 섬에 턱 하고 걸쳐진 티티카카 호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강한 바람에 회오리처럼 하늘을 수놓은 구름을 배경으로, 해가 질 때까지 제법 긴 시간을 그 언덕에서 기다렸다.
"어떡할 거냐 이제? 진짜 남미에 남을 거냐?"
나는 하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에서 그 말을 꺼냈다. 준의 생일을 딱 2주 앞둔 날이었다.
"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준의 대답이 이어졌다.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 한데, 그래도 이게 최선인 거 같다. 사실 나도 멕시코까지는 꼭 같이 갔으면 했거든."
우리의 여행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긴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내 돈으로 누리는 자유지만 항상 자유로울 순 없다. 나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송에 민감해했고, 주기적으로 그녀에게 관련 소식을 물었다. 조급한 마음이 들면서 여행의 속도가 빨라졌고 준은 벅차 했다. 우리는 함께 아름다운 것을 보고 함께 감동했지만, 돌아오면 각자 따로 식당을 가기도 했다. 나는 주로 노트북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준은 숙소의 다른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준이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진작에 눈치챘다. 리우에서 프리실라와 카우치서핑 파티에 갔을 때도, 산티아고에서 토니를 만났을 때도, 녀석은 항상 새로운 누군가를 원했다. 적당히 붐비면서 물가가 싼 도시에 터를 잡고, 몇 달씩 눌러앉아 부대끼며 말을 배우고 싶어 했다. 반면에 나는 준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화려한 자리로 돌아가 그녀를 품에 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결국 준이 결심을 했고, 그것으로 두 개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보트를 타고 떠나는 사람과 섬에 남아 손을 흔드는 사람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섬광과도 같은 노을빛이 하늘을 집어삼켰다. 지는 해가 긴 그림자를 만들고 멀리 설산은 구름에 몸을 숨긴다. 요란하던 바람소리가 고요해졌고 머지않아 모든 불빛이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닥친 어둠에 땅을 짚어가며 언덕을 내려와야 했다. 배가 몹시 고팠고 돈을 쓸 곳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손전등 같은 불빛 아래에서 저녁 설거지가 한창인 어느 소녀에게, 겨우 샌드위치를 주문하고는 남은 볼리비아 돈을 다 줘버렸다.
다시 계단으로 나오자 그제야 대충 돌로 쌓아 올린 돌담들 너머로 아담한 등롱이 켜졌다. 마치 요정의 정원과도 같은 불빛 아래 호수의 밤은 안도 밖도 고요했다. 먼 이국의 호수에 면한 작은 집에서 달빛에 갇혀 누군가를 그리던 밤. 시간은 겨우 9시지만, 섬의 불빛은 그마저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리 둘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