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 적도의 도시

키토(Quito), 에콰도르

by JUDE

Equator. 우리말로는 적도다. 에콰도르(Qauador)는 글자 그대로 적도에 있는 나라다. 수도 키토(Quito)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적도선이 도시를 지나는 곳이다. 지구 상의 위도가 0도가 되는 곳이며, 이는 곧 태양과 지구 중심 간에 직선을 그으면, 정확히 그 직선이 닿는 위치다. 1년 내내 태양의 직사광선을 정면으로 받기 때문에 지구 상에서 가장 덥다고 배웠다.



실제 키토는 햇살은 뜨거운 반면 서늘했고, 1년 내내 걷히지 않을 것 같은 두꺼운 구름이 커튼처럼 하늘 여기저기에 드리워져 있었다. 바람은 선선했으며, 겉옷을 입지 않으면 그늘에서 추위를 느낄 정도다. 안데스 산맥 중턱에 자리 잡은 탓에 1년 내내 이런 날씨라고 하니, 교과서의 지식이란 참으로 얄팍한 수준이다. 하긴 그 교과서를 쓴 사람도 키토에 실제로 와본 적은 없을 것이다.


달러를 쓰면서도(에콰도르의 화폐는 미국 달러) 미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라고는, 구멍가게에서 파는 코카콜라뿐이다. 우리는 주로 키토 구시가지의 대통령 궁이나,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오래고 낡은 건물 사이를 돌아다녔다. 스타벅스 같은 자본주의의 상징이 될 만한 가게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도 거의 없었다. 준과 나는, 이별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키토 어디에서도 보이는 파네시죠 (Panecillo)언덕


대신 태양이 비칠 때를 골라, 그란데 광장(Plaza de Grande) 가득한 바지에 셔츠를 넣어 입은 사람들 틈에 섞여 일광욕을 즐겼다. 광장에서는 마리아상이 올려다 보이는 파네시죠 언덕(Panecillo)이 아름답게 보였는데, 감탄을 하면서도 아무도 올라가자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바실리카 대성당(Basilica del Voto Nacional)도 키토의 명물이다. 우리는 그 거대한 시계탑 위에 올랐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올라설 수 있을 만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나니, 적도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바실리카 대성당(Basilica del Voto Nacional) 의 시계탑


정확히 두 시계탑 중앙에, 파네시죠 언덕의 마리아상이 보였다. 그 아래로 좁은 도로가 도시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고 있었고, 마리아상 위로는 마치 무대 장치 같은 두꺼운 구름이 자리 잡았다. 저녁 어스름이 우리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때 즈음에는, 도시 전체가 구름 아래에 완전히 잠겨 장관을 만들어냈다.


온통 회색 빛깔의 도시는 약간 쓸쓸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무겁거나 차갑지 않았다. 키토의 구름은 파타고니아와는 달리, 저항할 수 없는 얼음 같은 냉혹함이 아니라 애수에 젖은 느낌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이 시계탑을 설계한 건축가는, 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았으리라.


한참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적도의 남자'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생각났다. 뒷골목 문제아였던 주인공이,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은 뒤 어떻게 어떻게 미국으로 도망가 10여 년을 보내고, 고진감래 끝에 엄청난 회사의 사장이 되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나같이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욕망에 사로잡혀 ‘꼭 복수하겠어’ 따위의 대사를 내뱉으며, 서로 먹고 먹히는 사슬 관계가 이어지던 그 드라마를 그녀는 꽤 좋아했다. 집중해서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그 드라마에 적도라는 단어나 에콰도르가 나온 적이 없었던 것은 기억한다. 적도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무언가 강렬하고 치열하면서도 아찔한 상상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바실리카 대성당

잉카 이전 시대부터 인류가 자리 잡은 이 오랜 도시는, 치열했던 식민지 시대를 거쳐 이제는 구원의 마리아상이 내려다보는 언덕 아래에서, 한가롭게 잡담을 즐기며 해질 때까지 에콰도르산 커피 향에 취하는 것이 전부인 느긋한 일상의 도시로 변모했다. 비장하고 귀가 베일 것 같은 음악보다는, 편안하고 온기가 서려있는 느린 음악이 어울리는 그런 곳다.


그 모습이 지금의 우리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수차례 고성이 오가던 연인들이 실제로 헤어짐을 앞에 두고는 갑자기 고요해지는 것처럼. 느긋하게 키토에서 이틀을 보내자 부쩍 하는 일이 줄었다. 매일 같이 다리가 저려 올 정도로 거리를 걷던 것도 관두고, 저녁이면 습관처럼 마셔대던 맥주도 모습을 감췄다. 우리는 오로지 주말이 오기 만을 기다렸다.


오타발로(Otavalo) 시장. 키토에서 세 시간 남짓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 주말마다 남미에서 가장 큰 인디오(원주민) 시장이 열린다. 앞으로 언제 다시 볼 지모를 남미인들의 모습을 머리에 새기기 위해서라도 그곳에 가야 했다. 사실 그저 사람 냄새가 잔뜩 나는 곳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버스가 도심을 벗어나자 풍경이 금세 변했다. 울퉁불퉁 굽이진 길을 따라 드문드문 보이는 들꽃과 넓은 밭, 그리고 그 너머를 흐르는 계곡. 시선 멀리에는 한 눈에도 화산이 분명한 봉우리가 구름을 잔뜩 머금은 채 종종걸음으로 버스를 뒤쫓았다.


오타발로에는 하나같이 머리보다 더 큰 중절모를 얹은 여인들이 양털 옷을 입은 아이를 안고 가게를 열고 있었다. 뜨개질용 실타래가 들려있어야 할 것 같은 아이의 손에는 어김없이 핸드폰이 있었지만, 세상이 이만큼 변했으니 그들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골목을 벗어나자 닭 한 마리가 방긋 웃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큰 간판이 보였다. 시장의 안과 밖은 아침을 여는 사람들로 이미 바글바글하다. 우리는 ‘치킨 가게에 닭이 웃고 있는 그림을 쓰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곧 치킨을 먹는 일에만 집중했다.


우리는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먹었다. 살았을 때 모습 그대로 구워진 돼지 머리의 볼 살을 파먹고, 아무렇게나 흩어진 내장을 가득 채워 넣은 소시지와 순대에 머리를 쳐 박고는 고개를 들 줄 몰랐다. 뒤에서 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돼지로 변해버린 센의 부모같이 보였을 거다. 족발, 닭대가리, 만두, 곱창, 고기라는 생각이 드는 음식은 죄다 뱃속에 털어 넣고 있었는데, 마침내 번데기 차례가 왔을 때, 준이 갑자기 입 속에 들어간 것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우웩. 이거 벌레야. 무슨 벌 씹는 것처럼 바스락거려”



먹자골목이 형성된 아치 지붕이 사라진 야외에도 시장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주로 먹을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팔았다. 솜씨 좋은 장인은 아주 선명한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된 조각품을 팔았고, 옷이나 신발, 팔찌 같은 장신구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걷다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한 남자 앞에 섰다. 그는 안데스에서 나고 자란 원주민들의 풍습을 나이프와 병, 필기구 등에 새긴 작품을 팔고 있었다. 준은 그중에서도 원주민의 모습이 새겨진 나무 상자에 시선을 빼앗겼다.


“얼마예요?”

“15달러”


그는 웃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표정하지도 않은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우리는 이미 ‘10 달러면 훌륭해’라는 내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게임이 시작됐다.


“야. 시작부터 너무 센데? 12 불러. 12 어때요? 12달러”

“15달러”


그는 이번에도 주어, 동사 없이 금액만 말했다. 영어를 못한다고 하기에는 발음이 너무 정확했다. 준은 버티기에 들어갔지만, 그 후에도 15달러라는 말을 두 번이나 더 들었고, 결국 15달러를 냈다. 연필이라든가 팔찌 같은 물건을 몇 개 더 집어 들고 악수를 나누는 순간에야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아직 시장의 절반이나 돌았을까 싶을 정도였고, 다시 오타발로에 오게 된다면 빈 가방을 들고 와 이곳의 물건들로 가득 채워가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그 날 내가 산 것이라고는, 섹스가 한창인 남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새겨진, 뜨겁고 아찔한 담뱃대뿐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적도의 도시'에서 산 기념품이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겠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