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뇨스(Banos), 에콰도르
"도시 이름이 뭐라고?"
"테냐. 아마존 초입이래."
준이 어릴 적부터 자주 봐왔던, 아버지 친구가 에콰도르 테냐(Tena)에 산단다. 구글 지도에는 'Tena'라고 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Equador Tena'라고 입력했더니 겨우 작은 마을 하나가 잡혔다. 키토의 동남쪽, 도로가 나있는 마지막 경계선이었다. 그 너머는 온통 녹색뿐이다. 왜 에콰도르에, 그것도 이런 시골에 사는지 의아했지만, 목사님이라는 말을 듣고 단번에 이해가 됐다. 해외봉사의 일환인 모양이다.
버스로 두 시간이 걸렸다. 구름은 여전했지만, 따가운 직사광선이 창문을 뚫고 피부에 꽂혔다. 길가의 가로수도 어느새 바나나 나무로 바뀌었다. 내리자마자 습식 사우나 같은 열기가 후끈 올라왔고, 간밤에 비가 왔는지 포장도 되지 않은 길 여기저기가 진흙탕으로 변해있었다. 여기저기서 짓는 건지 허무는 건지 알 수 없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거리는 그 소음으로 가득했다.
한 마디로 테냐는 아는 사람이 없다면 굳이 올 이유도, 그 이름도 들을 일이 없는 곳이었다. 준의 아버지 친구인 목사님은 이곳에서 교회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주로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쓰이는 목사님의 자택은 물이 고여있지 않은 곳을 골라서 발을 디뎌야 할 정도로 땅이 물렁했다. 엉성하게 엉긴 철조망이 둘러진 나무문은 불어난 진흙 덩어리에 걸려 움직이지도 않았다. 적도에서 나는 과일이 모조리 올라간 식탁을 마주치기 전까지는, 10초에 한 번씩 달려드는 모기떼를 쫓느라 팔을 선풍기처럼 움직여댔다.
"야 니 여기 있으면 살 빠지겠다. 모기 덕분에"
괜스레 말을 꺼냈다. 준은 이 곳에 남는다. 남미의 말과 문화를 배우고 싶어 했으니까. 물가가 싸고, 관광객이 적은 곳에 자리 잡고는 사람을 사귀고 싶으니까. 그것이, 이렇게나 멀고 아득한 곳에서의 삶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녀석의 방식인 셈이다.
끝까지 같이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막상이 그 날이 다가오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필 12월, 한 해의 끝자락이고, 준의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날이었다.
"온천이나 하러 갈까?"
준이 뜬금없이 온천 이야기를 꺼냈다. 이 더운데 무슨 온천이냐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라도 어디든 가긴 가야 했다. 목사님 댁에서 진수성찬을 맞이한 그다음 날,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바뇨스(Banos)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테냐보다 더 작은 마을이었지만, 일단은 온천과 레저로 알려진 관광지였다.
좁은 버스에 의외로 사람이 많아 서로 옆자리에 앉았다.(우리는 늘, 앞뒤로 두 좌석씩을 차지하곤 했다.)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를 풀고, 팔걸이를 밀고 들어오는 녀석을 받아들였다. 잔뜩 힘을 준 어깨 힘을 빼고, 팔걸이를 밀고 들어오는 녀석을 받아들였다. 이런 것도 그리울 날이 올까?
계절이 아니었는지, 바뇨스의 거리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호스텔과 식당이 모여있는 거리 위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었지만, 외국인이 온 적이나 있을까 싶었다. 다시 고도가 높아져서인지 마을 곳곳에는 안개가 끼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가 있기 마련이지만, 바뇨스의 온천은 한층 심각했다. 뽀글뽀글 우윳빛 거품이 올라오고 있어야 할 대욕탕의 물은 온 데 간데없었고, 바닥은 마치 오래된 수도관의 단면을 보는 듯 온통 녹이 슬었다. 야외의 샤워부스 역시 벽면이 온통 누런 갈색이었는데, 수도꼭지를 틀면 금방이라도 갈색 국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온천보다는 화장실에 가까워 보였다.(Banos는 스페인어로 목욕탕, 또는 온천을 뜻하지만 화장실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곧바로 온천에서 나가기로 했다. 저런 곳에서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지경이었다. 평소였다면 서로 네가 가자 그랬다고 싸울 법도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별 말이 없었다. 갑자기 할 일이 사라져 거리를 두리번거리던 준의 눈에, 프레임만 있고 온통 뚫려있는 버기카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타지 않았을 가격이었지만 서로 돈을 내겠다며 그 차를 빌렸다. 무엇이 '평소'와 다른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바릴로체에서 돈이 없어서 차를 못 빌렸기 때문인지, 준의 생일이 이틀 뒤였기 때문인지, 내일 이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마을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올랐을 즈음 해가 졌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꼬마전구가 잔뜩 매달려있던 거리의 불이 밝았지만, 마을은 여전히 조용했다. 마지막 식사는 멕시코 식당으로 정했다. 함께 갈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나라의 음식이다.
정원에 놓인 노란색 비틀이 인상적인 곳이었는데, 테이블마다 작은 초가 켜진 레스토랑이었다. 여느 때라면 초를 보자마자 다시 나갔을 테지만 서로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생각해보니 두 달이나 같이 여행하면서 잘 갖춰진 음식점이나 제대로 된 펍에 들린 적이 거의 없었다. 길거리 음식과 마트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이 주식이었고, 케이블 카를 탈 몇 천 원을 아끼려고 한 시간을 걷는 게 일상이었다. 적당히 느긋하게, 좀 더 진득하게 한 곳에 머물거나, 500년 된 돌담을 허물고 지은 스타벅스의 커피를 마셔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준과 달리 내 마음에는 여유가 너무 없었다. 행여라도 전세보증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진다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될 판이다.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을 죄어 왔고,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에게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해댔다.
이제 녀석은 에콰도르에 남아 마음껏 게을러질 것이다.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무운을 빌었고, 언제나처럼 녀석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나는 혼자 맞이하게 될 이국의 아침을 상상하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늦게 잠든 날이었고, 그날은 준의 코 고는 소리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 행선지가 다른 버스표를 손에 들고는 어색하게 정류소 주변을 맴돌았다. 테냐로 가는 버스가 먼저 경적을 울렸다. 준이 피우던 담배를 급히 끄고 버스에 탔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았다가, 급히 일어나 다시 버스 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몸조심하고, 멀쩡하게 살아서 한국에서 보자. 햄버거랑 콜라 이제 그만 먹고!"
대답 대신 녀석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는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지랄. 담배나 끊어"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꽤 오랫동안 멀어지는 버스를 쳐다봤고, 나를 떠나보내던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뒤늦게야 생일 축하를 깜빡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준의 생일 전날 헤어진 것이다.
다시 키토로 돌아온 그날 밤, 밤길은 위험하다는 숙소 주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시가지로 갔다. 그리곤 남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후안 발데즈' 커피 한 통을 샀다. 숙소에 보관된 녀석의 배낭에 생일카드와 함께 커피를 넣어 둔 것이, 내가 남미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이다. 2주 후 다시 키토로 돌아온 준이 이 커피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
브라질에서부터 시작해 대륙의 최남단을 찍고 다시 에콰도르까지, 두 달을 가득 채웠다. 그 혹독한 땅에서 고된 트레킹 중에 웃을 일이 있었던 것도, 나름 악명이 높은 도시들에서 작은 사고 한번 없었던 것도, 한국을 그리워하지 않았던 것도, 언제나 둘이었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나는 남미를 떠나고, 준은 에콰도르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겠지만, 그게 지구 어디가 되건, 다시 만나도 지금 이때를 이야기하며 똑같이 웃고, 떠들고, 싸울 것이다.
아디오스, 아미고
아디오스, 라티노 아메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