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 떠돌이의 크리스마스

라 포르투나(La Fortuna), 코스타리카

by JUDE

“빌어먹을 날씨 같으니. 도대체 내한테 왜이라는 건데!”


아무도 없는 숙소 방 안에서 소리를 빽 질렀다. 코스타리카에 온 후로 벌써 일주일 째 비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파나마처럼 산발적이지도 않고 하루 24시간, 168시간째 가는 곳마다 쉬지 않고 내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햇빛을 본 게 168시간 전이 맞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장소는 산호세(San Jose)가 확실하다. 그러나 산호세는 날씨를 떠나서 혼자인 여행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도시였다.


“이봐, 차이니즈. 그 카메라 조심해. 어느 순간 없어질 거야.”

“가방은 앞으로 메라고. 이렇게 말이야.”

“택시를 탄다고? 그게 제일 위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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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이 완벽하게 달랐던 산호세의 PANGEA 호스텔


파나마에서 국경을 넘어 산호세로 가는 버스에서도, 산호세의 감옥 같은 숙소 로비에서도, 거리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도, 만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겁을 줬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처음 느낀 건 숙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PANGEA'라고 써진(뭐라고 읽어야 할지 짐작조차 안 됐다.) 건물은 집을 들어다 통째로 감방 안에다 집어넣은 것 같아 보였다. 창살은 군부대처럼 높고 철사가 감겨 있어서 벨을 누르지 않고서는 침입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간판 옆에 붙어있는 벨을 누르자 작은 스피커에서 이름과 예약번호를 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한번 두리번거린 후 속삭이듯 이름을 말하자, 거대한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문을 두 개 더 통과하자 온통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 찬 공간이 나타났다. 통유리 바깥으로는 천장이 열린 수영장에 비키니를 입은 백인들이 보였다. 쉴 새 없이 비트를 만들어 내는 음악에 고개를 까딱거리던 직원은 누군가 숙소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면 지도를 펼쳐 보이며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설명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나가지 말라고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결국 산호세에서 한 일이라고는 사람이 바글거리는 시장통에서 피베리(Peaberry)라고 불리는 코스타리카산 원두커피 한잔을 마신 것뿐이었다(그리고 이 쓴 걸 먹겠다며 졸라대던 준을 욕했다). 아아. 생각났다. 이때가 내가 해를 본 마지막 순간이다.


산호세를 떠난 나는 몬테베르데(Monte Verde)라는 국립공원으로 향했는데, 버스에서 내림과 동시에 비가 쏟아졌다. 1년 내내 구름 속에 갇혀 있다는 그 거대한 정글은(그래서 이름도 'Cloud Forest') 퓨마를 탄 타잔이 아니라 괴물이 나올 것처럼 으스스했다. 나이가 지긋한 유럽인을 가이드하던 한 남자는 요란한 장비를 들고 어디엔가 숨어있을 야생동물을 찾아내느라 분주했다. 괴물이 나올 것 같은 그 숲은 실은 수백 가지 앵무새의 원산지다. 나 역시 목이 뻣뻣하도록 치켜들고 나무 위를 훑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똑똑하기로 소문난 앵무새인데, 진작 비를 피해 어딘가에 숨었겠지.


빗속에서 3km를 걸어 도착한 전망대는 안개에 가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젖은 채 목적 없이 숲을 헤매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다리 하나를 발견했는데, 보자마자 워즈워스(Willian Wordsworth)의 시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었네' 가 떠올랐다.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 of golden daffodils.
...


영문학 시간에 이해가 1도 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아름답다고 주입받았던 시다. 그 붉은 다리는 아름다웠지만, 시에서처럼 수선화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벌새라든지, 작은 앵무새 같은 희귀종을 가둬놓은 실내 정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숲에서 돌아온 다음 날 곧장 몬테베르네를 떠났다. 비는 몇 년이 지나도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두 번의 보트와 한 번의 버스를 타고 라포르투나(La Fortuna)에 도착하는 동안 비가 따라왔다. 꾸준히, 그러나 너무 거세지 않게. 이 불행한 여행자가 금세 떠나지 않고, 오래 머뭇거리며 방황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라포트루나는 내가 코스타리카를 오게 된 이유였다. 5개월간 세계를 떠돌며 진귀한 것을 수도 없이 봤지만, 이곳에는 살아있는 화산이 있다. 그러나 계속된 비 때문인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탓인지, 마을의 모든 것은 정지한 것처럼 고요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부추겨 온갖 모험을 했을 여행사의 직원은 벌써 삼 일째 하늘을 가리키며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어댄다.


빨래를 해도 마르지 않아 소용이 없고, 싸구려 침대 시트며 베개, 이불, 내가 걸친 모든 것이 축축해 가만히 누워있어도 온몸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마치 몸이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어둡고 침침한 숙소에서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뚝뚝 끊어지는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짜증과 불평뿐이었지만, 그녀는 잠자코 들어주었다. 그렇게 이브가 되자 처음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립더니, 통화를 끝내고 나니 얼굴이, 내가 좋아라 마지않던 그녀의 까만 구두가, ‘밥 꼭 챙겨 먹어요’라고 적어 냉장고에 붙여두던 노란색 메모까지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 빈 의자에 앉아 비어있는 옆 의자도 내가 앉은 것처럼 뒤로 눕혀 벽에 기대놓고 야속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크리스마스인 내일은 그녀와 내가 만난 지 꼭 3년째가 되는 날이다.


그녀의 부재에도 어김없이 이브의 밤이 찾아왔고, 잘 버텨왔던 몸이 드디어 바닥을 드러냈다. 머리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고,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잔뜩 날이 선 채로 선잠에 빠졌다가 자정 즈음에 괴상한 소리에 다시 깼다. 누군가 내 방 바깥에 있는 테이블에서 이상한 소리로 주문 같은 것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빗소리에 섞여 불분명하던 음성은, 베개로 귀를 틀어막을 때마다 커지더니, 이제는 거의 청문회에 나온 정치인 같은 발성으로 바뀌었다.


'지저스'같은 말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느 종교의 광신도임이 분명하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악마라도 된 것처럼 한동안 그 소리에 온몸을 뒤틀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일어난 것뿐인데 찰랑하고 물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어지럼증이 몰려왔고 얼굴이 온통 화끈거렸다. 겨우 방문을 열고 나가 정체불명의 소리를 외쳐대는 남자를 사정없이 쏘아보았다.


“10시 이후로는 조용히 해달라는 이 글씨가 안 보여?”

“신이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이 규칙을 만들었지.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규칙도 신에게 향하는 기도를 멈출 수 없다네.”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에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빨랐다. 타오르는 초와 알 수 없는 책이 올려진 테이블을 엎어버린 거다.


“니 망할 놈의 신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야! 10시가 넘었으니 닥치라고!”


비명 같은 소리에 놀란 주인이 뛰쳐나와 소동은 정리되었지만, 두통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딸각. 다시 방으로 돌아올 때는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머리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왜 여기에 왔고, 무엇 때문에 가고 있는가. 무엇을 따라가고는 있는가. 대체 왜 떠나지 못하고 있는가. 내가 떠난 뒤 텅 빈 방에 남아있을 세계지도를 지금 그녀는 어떤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갑자기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닐지 무서웠다. 그렇게 나는 그 밤 내내 그녀를 앓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정오가 한창 지났을 때였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고, 혹시 그대로 태양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축축했다. 깨어난 후에도 충분히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안도 밖도 눅눅한 그 공간을 겨우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후 두 시가 넘어서였다.


마을은 여전히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무슨 생각인지 택시를 타고 외곽에 떨어져 있는 온천 리조트로 향했다. 겨우 4km를 가는데 3천 콜로네(약 7천 원)를 달라는 택시기사의 말에, 돌아갈 때는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담갔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리조트는 온통 더운 열기로 가득했다. 탕 안에 바와 식당이 갖춰진 곳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연인과 가족이, 바깥의 일은 잊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맥주잔을 부딪치곤 했다. 여행 슬럼프를 겪기에는 너무나 멋진 곳이었지만, 내가 있을 자리는 없어 보였다. 숲을 헤치고 나가, 어딘가의 탕에 누워 해가질 때까지 시체놀이를 즐겼다. 지금이라면 시체놀이를 즐기던 보카스 델 토로의 그 네 명과도 즐겁게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가 진 리조트 앞에는 택시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그 소란스러운 불빛을 뒤로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걷기 시작했다. 위험하다며 택시를 탈 것을 거듭 권하는 직원에게, '내가 걷는다잖아!'라고 언성을 높이고 나온 뒤였다.


가끔씩 지나치는 차들이 가로등도 없는 어둠 속을 걷는 미친 사람을 향해 연신 경적을 울려댔지만 나는 계속 걸었다. 기분이 나아지기는커녕 외로움이 몇 배로 증폭된 것만 같았는데, 또 비가 쏟아져 이제 막 마르기 시작한 몸을 다시 적셨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온통 시커먼 그 세상이 내가 선택한 삶의 결과인 것만 같아 한없이 무서워졌다. 그날 내가 어떻게 숙소까지 무사히 걸어왔는지 정확히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침대 위로 무너졌을 때 스프링에 몸이 한번 튕겨 오른 느낌뿐이다.


젖은 채로 잠에서 깬 다음 날, 그곳이 내 방 침대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비가 떠나지 않으니 내가 떠나는 수밖에.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배낭을 울러 맨 채 버스터미널을 향하는 길에, 벌써 몇 번이나 얼굴을 마주친 여행사 직원이 나를 불렀다.


“뭐야? 벌써 떠나는 거야?”

“벌써라니. 오늘이 5일째야.”

“알아, 알아. 그렇지만 오늘 화산으로 가는 투어가 있어. 우리도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출발하는 투어야. 혹시 알아? 어디선가 시뻘건 마그마라도 보게 될지. 아레날(Arenal)에는 화산이 11개나 숨어 있다고.”


모든 것이 안개에 삼켜진 아레날 화산지역


돈을 밝히기는 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솜씨 좋은 상인이었다. 결국, 배낭을 그의 사무실에 내려놓고는 25달러를 냈다. 어차피 내가 이곳에 다시 올 확률은 별로 높지 않을 것이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6명이었고, ‘넌 잘 웃지 않는구나, 그렇지?’ 따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묵묵히 걷기만 했다. 출발할 때 잠시 멈추나 싶었던 비는 끝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고, 잔뜩 피어난 안개는 해발 2,700m 높이의 거대한 화산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정글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던 가이드는 안개에 삼켜져 보이지도 않는 화산을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로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적어도 타바콘 강(Tabacon River)에 도착하기 전에는 그랬다. 정글에서 솟아난 온천수가 불어나 강을 이룬 그곳은 아레날 화산(Volcano Arenal) 아래로 흐르는 마그마에 데워진 천연 온천이었다.


온통 따뜻한 온천수가 흐르는 타바콘 강


그 어떤 인공도 더해지지 않은 강물에서 달걀 썩은 내가 피어났다.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에 살짝 발을 담그는 순간 몸에서 신음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이렇게나 따뜻한 물이 대체 어디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숲으로 뒤덮인 그 공간은 참으로 기이한 곳이었다. 강바닥에는 마치 손바닥을 통과할 것 같이 곱고 부드러운 진흙이 묻어났는데, 사람들은 그걸 서로의 얼굴에 잔뜩 바르고는 비명을 질러댔다.


“자자. 여길 봐봐. 이 개구리는 코스타리카 온천지대에서만 사는 녀석인데 말이지, 우리는 레인보우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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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사라졌던 가이드가 나타나 주먹을 펼치자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녀석은 사람이 내민 손을 곧잘 옮겨 타면서도 도망은 가지 않았는데, 눈은 주황색에 등은 녹색, 발가락은 노란색, 다리는 푸른빛이 돌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따뜻한 온천물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보카스 델 토로의 레드 프로그 비치에서 봤던 새빨간 개구리가 생각났다. 금방이라도 줄줄 흐를 것 같이 새빨갛던 녀석은 괜찮을까? 거긴 온통 푸른 세상인데. 크리스마스에도 어디 하나 낄 데 없는 여행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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