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웨스트 - 미국
새해 첫날 마이애미의 기온은 30도를 웃돌았지만, 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공항에서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일부러 사우스비치에서 도보거리에 있는 호스텔을 예약하긴 했다. 그럼에도 대낮부터 현란한 조명과 요란한 음악을 틀어대는 로비는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준비 없이 걷게 된 마이애미의 거리는 무척 부자 동네스러웠다.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낮은 건물들은 하나같이 자동차 한 대는 들어갈 만한 베란다를 끼고 서 있다. 고급 멘션들과 함께 파랗고 노랗고 빨간, 파스텔 풍의 그림 같은 건물들이 발길을 따라 이어진다. 사람들은 팔에 무언가를 두르고 헤드폰을 낀 채 조깅을 하거나 핸들만 쥐고 있으면 자동으로 굴러가는 괴상한 기구(세그웨이)를 타고 있었는데, 내가 중앙아메리카에서 헤메는 동안 몇 년이 훌쩍 지나버린 느낌이 들었다.
소문의 사우스비치는 아름다웠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풍경은 백사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모랫길이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혀 굴곡을 만들어낸 좁은 모래길. 좌우로는 나무 펜스가 쳐져 있고, 멀리 보일 듯 말 듯한 물감 색의 수면에 하늘빛이 반사되곤 했다. 여기를 지나면 무언가 엄청난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에 절로 가슴이 뛸만한 그런 곳이었다.
좁은 길이 끝나고 백사장이 시작 되는 길 한쪽에는 밤새 파티를 벌였을 사람들이 내놓은 맥주병들이 줄지어 있었다. 순간 '비치 보이스'의 노래가 듣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생각은 핸드폰을 도둑맞은 일로 이어졌고, 악몽같은 일들이 온통 머리속을 어지럽혔다. 그 몇 가지 사건으로 중앙아메리카는 혀로 자꾸만 건드리게 되는 입천장의 헌 상처 같은 기억이 돼버렸다. 어느새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고 인식하게 됐지만, 혼자이기를 바라면서 막상 혼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백사장에서 채 5분을 버티지 못했다.
밤이 되자 거리의 펍에서 광란의 레이저 파티가 벌어졌는데, 나는 최대한 그 길을 피해서 다녔다. 잠이 올 때까지 걷고 또 걷다 모두 나가고 없는 숙소에서 노트북을 켰다. 그녀로부터 답장은 없었다(한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끊자마자 메일을 보냈었다). 대신 준이 보낸 장문의 안부를 들었다. 키토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스페인어를 배운다더니 아주 파티피플이 되어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바쁜 계절을 보내는 마당에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한참을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남은 한달 반 가량을 어디서 무얼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은 돌아가야만 하고, 돌아간 뒤에는 얼마나 천박하게 나를 포장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이튿날, 이번에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듯 미국의 최남단이라는 키웨스트(Key West)로 가는 투어버스를 탔다. 새벽에 내린 비 때문에 새벽까지도 구름이 가득했지만, 버스가 고속도로에 올라 빠르게 구름 낀 도시를 벗어나자 묘한 스릴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차가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즈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의 풍경이 바뀌질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긴 다리가 바다 위로 200km가 넘게 이어졌고, 코발트 빛의 바다는 보석처럼 반짝였다. 한 번쯤은 버스에서 내려 그 향기로운 바람 냄새를 맡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풍경은 버스가 달리는 세 시간 내내 이어졌다.
“여러분, 여러분이 방금 달려온 길이 미국의 1번 고속도로입니다. 여기가 출발지예요. 오른쪽을 보세요.”
키웨스트의 도착을 알리는 기사의 안내방송에 오른쪽 창밖을 보니 ‘0 MILE’이라고 적힌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1번 고속도로. 그러니까 키웨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생긴 고속도로의 출발점인 셈이다. 거리에는 오래된 트롤리가 느릿하게 달리고, 네온사인 대신 오래되고 낡은 나무 표지판이 한층 편안하게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로 붐비던 광장에는 캐리비안의 해적을 재현한 극장과 남국의 정취를 간직한 작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한 마디로 키웨스트는 마을 전체가 잘 꾸며진 민속촌이었다.
재미난 가게들도 많았다. 어떤 바에는 시대극에서나 볼법한 클래식한 스포츠카와 오토바이를 통째로 가게 안에 들여놓았고, 라틴 음악이 흐르는 망고 나무로 장식된 카페에서 사람들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손님이 낸 팁으로 온 지붕과 천장이 도배된 가게에서는 사람들이 지폐에 자기 이름과 메시지를 적어 빈 곳을 채우기 바빴다.
모든 관광지가 그렇듯 재미난 장소가 있는가 하면 쓸모없는 곳도 많았다. 미국의 최남단을 뜻하는 'SOUTHERNMOST POINT'라고 적힌 커다란 부표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고 줄은 선 사람들이 100미터는 넘게 이어졌다. 그 긴 줄을 가늠해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냥 최남단이라고 적어놓은 표지판 때문에 이 땡볕에 몇 시간이나 줄을 서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골목에서 발견한 헤밍웨이의 생가도 마찬가지다. 헤밍웨이는 정돈된 정원이 멋들어진 이 저택에서 8년을 머물며 '노인과 바다'라는 희대의 걸작을 남겼지만, 단지 그 사실이 이제는 길 고양이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낡은 집을 관람하는데 12달러나 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줄을 선 관광객이 롤케익처럼 저택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21세기의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여성들이 1920년대에 지어진 그 저택 베란다와 창문을 드나드는 풍경을 담벼락 아래에서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헤밍웨이의 이름값 때문인지 거리에는 그의 일생을 테마로한 작은 갤러리가 많았는데 그 중 한 곳에 들렀다. 주로 헤밍웨이와 관련된 책으로 가득한 곳이었는데 헤밍웨이와 노인과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쓴 그림책을 발견하고는 한참 동안 읽었다. 거의 30분 가량을 머물다 나왔을 때는 발길이 자연스레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해변으로 향했다.
대륙에서 떨어진 외딴섬인 키웨스트는 다른 휴양지와 달리 평화롭고 고요했다. 헤밍웨이의 인생은 1차 대전 참전, 스페인 의용군, 노르망디 상륙작전 취재기자, 아프리카에서의 경비행기 추락 등, 놀랍고 거짓말 같은 일로 가득했다. 운명처럼 닿은 이 고요한 바닷가에서 생각에 잠기다 낚싯대를 드리웠을 것이고, 해가 지면 자주 간다던 바의 문턱을 넘어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비극적인 가족사를(아버지, 동생, 누이가 모두 자살로 생을 마쳤다.) 떨쳐내지 못했던 그는 때때로 집 안 수영장에서 여러 여성과 나체로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맑은 날, 멀리 바다 건너 쿠바를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쿠바에서 헤엄쳐 건너왔다는 사람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키웨스트에서, 쿠바에서 노인과 바다를 완성했을 것이다.
노인은 조각배를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이었다. 아내와 가족도 없는 노인의 유일한 친구는 한 어린 소년이었지만, 몇 달째 고기를 잡지 못해 위기에 처한 노인을 보며 소년의 부모는 불운을 가져오는 남자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자신감에 찬 노인은 여느 때처럼 바다로 나섰고 배보다 더 큰 물고기 한 마리와 실랑이를 벌인다. 노인은 며칠 간의 혈투 끝에 거대한 물고기를 배에 묶은 채 항구로 나아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상어가 나타났고, 거대한 물고기는 뼈만 남았다. 긴 사투 끝에 빈 배로 항구로 돌아온 노인은 소년의 곁에서 지쳐 잠이 든다. 그날 밤 노인은 자신의 꿈이었던 아프리카 사자를 만나는 꿈을 꾼다.
나는 소설 속 노인의 인생이 지금 나와 별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나아가면서도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꿈을 꾸면서도 꿈을 이루는 과정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는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인이 그러했듯이 나는 꿈을 이룬 뒤에도 계속 싸워야만 할 운명이다.
내 앞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이대로 미국의 어딘가를 떠돌며 천천히 편안하게 귀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이 첫 번째고, 또 어디론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 두 번째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 미지의 세계가 쿠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미국에서 쿠바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멕시코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다시 채찍을 들고 마야의 유적지를 탐험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자 흥분되기까지 했다. 여행이 끝나면 이 모든 일을 책으로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