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여행 부랑자들

칸쿤, 멕시코

by JUDE

공중에서 바라보는 칸쿤의 풍경은 기가 막혔다. 착륙 방송과 함께 비행기가 바다를 향해 기울어질 때 그대로 풍덩 하고 빠지고 싶을 정도로. 활짝 열린 창문으로 갑자기 쏟아진 태양 빛에 눈을 감자, 뜻밖에도 구멍이 숭숭 뚫린 대지 위를 덮은 눈과 얼음의 풍경이 떠올랐다. 두어 달 전, 엘 칼라파테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풍경이었다.


잠시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나를 상상했다. 꿈만 꾸던 소년은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얼음의 협곡에 이르렀다. 사무치는 추위를 견디고 협곡을 넘자 이번에는 메마른 사막에 닿았다. 무엇이든 살아있는 것을 찾아 다다른 정글에는 비바람과 화산이 요동친다. 마침내 정글 너머 낙원에 닿은 소년은 어느새 노인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버렸다. 노인은 이제 과연 이곳에는 누군가 손 잡아줄 사람이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여전히 후덥지근한 공기가 몸에 착 하고 들러붙는다. 눈 여겨둔 숙소가 있긴 했지만, 핸드폰도 없는 마당에 길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때 유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한 동양인을 발견했다. 열대의 기후가 익숙한 듯 검게 탄 피부에 소매가 없는 옷, 통이 넓은 바지에 캐리어 대신 배낭을 멘 차림새가 영락없는 일본인이었다. 나는 그녀가 뒤를 흘끔거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공항에서부터 따라다녔다(일본인들은 언제나 해답을 갖고 있다). 그녀는 나를 'Casa Yoshida'라고 적힌 하얀 건물 앞으로 인도했고, 뜻밖에도(절반 정도는 기대했던) 그곳에서 한국인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같이 좀 껴도 될까요?”


나는 그들이 뭐라고 해도 앉을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 중에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자리 잡은 남자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갓 떠나온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고뇌와 다가올 모험을 기대하는 호기심이 동시에 묻어났다. 꼭 6개월 전의 나처럼.


“네, 네. 그러세요. 어디서 오시는 길이시길래…”


내 인사가 그리 나쁘지 않았는지 남자가 손수 의자를 빼주며 되묻는다. 아무렇게나 자라서 눈을 덮을 지경이 된 머리와 입꼬리가 잔뜩 쳐진 내 표정을 읽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여행 중에 한국인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도 드문 일이다.


“남미에서 부터 쭉 올라왔어요. 중미 거쳐서 지금 막 멕시코 들어온 참이에요. 두 분은 일행이세요?”


남자 둘이긴 했지만 나이 차가 너무 나 보였다. 기황은 멕시코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귀국을 앞둔 학생이었고, 마흔을 갓 넘은 택근 형은 멕시코에서 이제 막 대장정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과테말라에서 우연히 만나 2주째 함께 여행 중이라는 두 사람을 부럽다고 하자, 남쪽에는 한국인이 없냐고 물어왔다. 그러자 억수같이 비가 쏟아붓던 코스타리카의 어느 날, 거울 속의 무표정하던 내 얼굴이 떠올랐다. 차마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만남과 동시에 초대받은 이른 저녁은 라면이었다. 내 영혼의 수프. 아니 모든 한국인 여행자의 소울 푸드. 두 달 만에 먹는 라면과 두 달 만에 하는 우리말.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 연기가 사무치게 향기로웠다.


“밑에서 되게 힘드셨나 봐요? 이 친구 한국 가고나면 저도 곧 남미로 갈 건데...”

“남미에서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고생을 좀 했죠.”


택근형과 나는 서로를 쉽게 알아봤다. 불꽃같은 20대가 지나서야 뒤늦게 생계를 팽개치고 나온 사람들. 어린 나이에 해외 생활을(그것도 멕시코에서) 맛본 기황은 나이답지 않게 노련했다. 대화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어느새 냉장고에서 2L짜리 맥주병을 꺼내왔고, 우리의 이야기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그러면 토레스 델 파이네는 그냥 패스한 거예요?”

“저는 갔다 왔죠. 그런데 택근 형님이 내려가시면 그때는 아마 한겨울일 테고, 더 지옥 같은 날씨일 겁니다. 토레스 델 파이네가 별로라기보다 바로 옆에 있는 피츠로이가 너무 멋져요. 거긴 오르기도 쉽고…”


나는 남미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설명함과 동시에 토레스 델 파이네가 얼마나 지옥같은 곳인지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다. 말을 하면서도 그때 생각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W-트레킹은 지금 생각해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렇게 추워요?”

“아니 형님. 그냥 추운 게 아니라. 텐트가 젖어서 얼어요. 그 상태로 자는 거예요. 저는 진짜 자다가 그냥 죽고 싶었다니까요? 너무 추워서.”


오랜만에 술을 한잔 걸치자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택근 형도 서서히 내 말에 설득당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저는 여름이라서 날씨가 좋았어요. 근데 동주 형님 말도 맞아요. 피츠로이가 경치가 정말 죽이긴 하죠. 그런데 형님. 진짜 안 가셔도 나중에 괜찮겠어요?”


겨우 스물여섯의 나이에 남미를 일주한 기황이 은근슬쩍 택근 형의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기황아. 난 네가 부러운 거야. 나도 그 나이 때에 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근데 내가 지금 나이 사십이 넘어서… 동주 씨 얘기 들어보니까 숨이 막힌다 야.”

“그래도 아깝잖아요. 회사까지 관두시고 오셨는데.”

“난 괜찮아. 내가 무슨 세계일주에 대단한 꿈이 있어서 온 거 같지만 그렇지도 않아. 나는 그냥 한국에서 이대로 늙는 게 싫었어. 죽을 때까지 학생이랑 직장인만 해보다가 끝나는 게, 이게 얼마나 팍팍하니 인생이란 게. 나는 내가 지금 여행자인 걸로도 어지간한 건 다 만족해. ”


태근형의 말은 차분하고 담담했다. 세계일주가 꿈이든 아니든 일상을 떠나온 사람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내가 싫다고 할 때까지 계속 여행자로 있고 싶은 것. 다른 무엇에도 흔들리고 싶지 않은 것. 어쩌면 이 모든 스트레스와 우울함은 사고나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여행자 생활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으니 이제 나는 철저히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미리 정해진 도시의 숙소와 그날 어디를 갈 것인지 정도가 선택할 수 있는 전부다. 생각해보니 거의 평생동안 그 정도의 선택만 하고 살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큰 걱정이 없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조금 이른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는 계획표를 들고 있다. 낯선 건물과 낯선 음식만으로 두근거리기에는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봐버린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보다 먼저 멋진 선택을 한 사람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 건배!”

“저도요, 동주 형님. 친구들이 제가 멕시코 간다고 하니까 부랑아라던데 그러면 어때요. 부랑아 하면 되지.”


부랑자. 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 없이 떠도는 사람. 그 단어가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우리는 모두 별일 없던 일상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 떠돌이가 된 여행 부랑자들이다.


그녀에게서 여태 답장이 없다. 전화나 메세지를 하지 않아도 이메일은 꼬박꼬박 주고받았는데 말이다. 칸쿤에 도착했다는 메일을 쓴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대로 침대와 한몸이 되었다가 한국시각에 맞춰 연락이나 취해 볼 생각이었다.


"뭐해? 안 나가?"


한 시간 정도가 지나 택근형이 물었다. 맞다. 여기 칸쿤이지. 카리브해의 보물이라는. 오랜만에 사람사이에 부대꼈더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뭘 할지 까맣게 잊었다.


“기다려봐 답장이야 오겠지. 아니 3년 사귄 여자를 두고 떠난 사람이 고거 하나를 못 참나 그래? 그분은 지금 6개월째 기다리고 있구먼”


형의 말에 생각을 고쳐먹고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부랑자답게 손에 든 거라곤 수영복과 딱 하루 치의 현금뿐이었다. 이럴 때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나는 아예 수영복을 입은 채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마야 유적지인 툴룸(Tulum). 카리브해가 펼쳐진 절벽 위에 마야 유적이라니.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바다는 잔지바르의 파제(Paje Beach)다. 3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곳에 내 영혼의 일부를 묻어놓고 왔다. 한 번 더 잔지바르에 갈 수 있다면, 남은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 그러나 툴룸의 해변은 무언가 특별한 곳이었다.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관두기로 했다.


대신 절벽을 따라 나 있는 계단을 내려가 마음껏 카리브해의 품에 안겼다. 오묘한 물빛, 부서지는 파도, 날카로운 절벽, 고개만 들면 보이는 고대 유적과 열대 나무. 나는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며 그 모습을 감상하다 다시 뭍으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마야인들이 굳이 이 외딴 해안 절벽 위에 집을 지은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보고싶을 때마다 꺼내서 그 바다를 자꾸만 만지고 쓰다듬고 싶었다. 다시 칸쿤으로 돌아온 저녁에는 또 한번 잔뜩 취했는데, 정말이지 칸쿤은 부랑자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다 죽기에 딱 좋은 곳이다.



그 유명한 칸쿤의 호텔 존은 툴룸과는 많이 달랐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금을 그어 놓고 펼쳐진 긴 모래사장에는 오로지 리조트뿐이었다. 낡은 옷을 싸 들고 여행을 가서 그 옷을 마지막인 듯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와서는 안 될 곳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10km나 되는 해변을 고작 호텔로 채워버리다니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가.


해변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은 거대한 시멘트벽을 뚫고 이곳의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방인들뿐이다. 동전 몇 개면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바깥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 그곳을 사람들은 '호텔 존(Hotel Zone)'이라고 불렀다. 진짜 카리브해의 모습은 이땅에서 자취를 감춘 마야인들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다. 몇 번인가 바다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다지 만지고 싶은 생각은 더 들지 않았다. 너무 비싼 맥주는 한 병이 고작이었고,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본격적으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기 시작할 즈음 멀리서 걸어오는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띄었다. 거대한 리조트 벽에 가려져 석양도 마음대로 못 보냐며 막 욕설을 내뱉으려던 참이었다. 어디 햇살 바른 곳에서 놀다가 왔는지 제법 그을린 피부의 연인은 그 백사장 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였다. 둘은 점점 내쪽으로 다가왔고, 파도가 부서지고 나면 그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마도 오늘 저녁으로 먹을, 끓인 조개를 곁들인 파스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거의 힘을 잃은 파도가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 위로 부스러지는 사이 남자와 여자가 입을 맞췄다. 두 그림자의 주인공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만든다. 나는 커피 향을 맡는 사람처럼 천천히 카메라를 들었고, 황금빛 노을 속으로 두 사람이 사라지려는 찰나 셔터를 눌렀다.



그리워할 것을 남겨두고 떠난 부랑자의 눈에는 너무나 완벽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것을 곁에 두고 여행 할 수 있는 남자가 한없이 부러웠다. 그동안 나는 6개월째 부랑자로 살고 있는 스스로를 내심 멋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부랑자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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