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결국 사랑

팔렌케-산크리스토발-와하카, 멕시코

by JUDE

다시 눈을 떠보니 전 재산을 날리고 사랑마저 잃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평소 자주 사용하는 좌뇌를 굴려봐도 별다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우뇌는 아예 생각하는 것을 거부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최대한 부지런하게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만이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이럴 때 좋은 것이 장거리 버스다. 현재로부터 최대한 멀리, 이왕이면 밤을 삼켜 떠나는 것이다.


9시간을 달려 팔렌케(Palenque)에 도착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야 유적지가 발견되었다는 장소다. 뭐라도 꼬투리를 잡을게 없을까 싶은 와중에 '세계 최대 규모'라는 말에 몰입했다. 마야 문명이 걸친 나라라고 해봐야 멕시코와 인접국인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정도 뿐이다. '세계 최대 규모' 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정도다.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어느 낡은 호스텔로 들어갔다. 인기척이 전혀없는 로비에서 파리만 쫓고 있던 직원은 내가 숙박과 투어를 동시에 요청하자 매우 반가운 표정이었다. 이제 막 아침 7시를 지나는 중이었다. 한 시간 뒤에는 15명이 가득 들어찬 봉고차에 올랐다.


세계 3대 마야유적(다시 말하지만 과거 마야의 영토에 들어갔던 국가는 3개 뿐이다.) 중 하나라 불리는 팔렌케 유적까지는 차로 겨우 20분이 걸렸다. 불과 250년 전 스페인의 한 선교사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마야가 멸망한 이래 천년의 세월 동안 정글 속에 잠들어 있었던 장소다.


세계 3대 마야 유적 중 하나인 팔렌케(Palenque)


250년 전에 발견이 됐을 뿐, 사람들은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마야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러나 중앙아메리카 어딘가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물랐던 것은 아니다. 유카탄 반도를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키고자 했던(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스페인 신부들도 알고 있었고, 마야를 침략했던 스페인 군대도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은 오랫동안 먼지만 쌓인 채 잊혀져 있었다. 아마 당시에는 그것이 또 다른 엘도라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지도에도 등장하지 않는 폐허가 된 팔렌케의 발견과 함께 그 엘도라도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잠시나마 허리춤에 채찍을 차고 담뱃대를 꼬나문 인디아나 존스가 된 기분으로 유적을 탐했다. 그런데도 팔렌케에 더 머무르지는 않았다. 생각이 꼬리를 물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이튿날, 이번에는 새벽 5시에 출발하는 산크리스토발(San Christobal) 행 버스를 탔다. 잠을 자기에도 깨어있기에도 애매한 6시간 동안, 버스는 대체 어디를 향해 가는 건지 산골짜기를 오르고 내리는 곡예 운전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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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크리스토발은 멕시코에서 가장 많은 원주민이 사는 곳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고, 주민들은 직접 양털을 엮어 만든 옷을 걸치고 다녔다. 멕시코의 국어가 스페인어로 바뀐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 사이로 계속 이어지는 낮은 집들은 어딘가 기와집 같았다.


투숙객이라고는 채 5명도 되지 않는 조용한 숙소에서, 유난히 친절한 직원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햇살 좋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백발의 노부부를 만났다. 미국 워싱턴 주에서 왔다고 했는데, 표정에서 좋은 교육, 자기 절제, 인자함을 읽을 수 있는 노인이었다. 한참 어린 동양의 여행자를 대하면서도 은근하면서 정중한 매너가 돋보였다. 아내의 손을 꼭 잡은 그 손이 상대를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참 멋져요.”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멋진 거겠지. 너도 그렇게 될 거야.”


산크리스토발의 중심지, 과달루페 거리(Guadalupe)


노인은 곧 택시가 도착하자 숙소를 떠났는데, 한 손에 커다란 캐리어를 끌면서도 아내의 손을 잡은 다른 손은 끝내 놓지 않았다. 거센 바람처럼 갑자기 그리움이 왈칵 솟았다. 나는 산크리스토발의 모든 여행자가 모인다는 과달루페(Guadalupe) 거리를 한번 어슬렁 거렸을 뿐, 또다시 짐을 꾸렸다.


12시간을 달린 버스는 고요한 새벽에 오하카(Oaxaca)에 멈춰 섰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던 나는 한참 동안 터미널을 서성였다. 한눈에도 차원이 다른 태양빛이 떠올랐고, 여기저기 선인장들이 눈에 띄었다. 메마른 땅 위로 바짝 마른풀들이 자리 잡은 도시는, 한 눈에도 유럽을 떠올리는 풍경을 지녔다. 으리으리하게 늘어선 성당들과 골목마다 가득한 노천카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정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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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나와 이어지는 골목에서는 2층 단층의 아름다운 집들이 이어졌다. 걸어도 걸어도 이어지는 오랜 석조건물들은, 별일 없는 여행자로 하여금 한 몇 주간 이 도시에 머무르게 싶게끔 하는 매력이 있었다. 길 끝에 이르렀을 때는 그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초콜릿 빛깔의 건물 밑 노천카페에서 맑은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커피 한잔, 골목을 돌아 돌아 다시 마주친 여행자와 악수를 나누고, 금세 친구가 되어 지난 일들과 다가올 주말을 이야기할 것이다. 해가지면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마세도니오 알칼라 극장(Teatro Macadonia Alcala)에 들러 오페라 한편에 취해 키스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멕시코에서 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처럼 거대한 천장과 벽 한 가득 부조와 벽화로 가득한 산토도밍고 성당을 보고 돌아온 그 밤, 그녀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나는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그립지 않을 수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냥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이 하기 싫어졌다고 했다.


그 날 이후로 오하카에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후회와 추억을 되새기는 일뿐이었다. 나는 정처 없이 거리를 방황하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어느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에 들어섰다. 그녀는 미술학도였지만, 나는 미술을 실용성이 결여된 일회용품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그 미술관에 들른 것은 순전히 그녀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이, 나를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감상하는 파리 7 대학 미술학도로 만들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치첸잇사에서 산 가면에 조각된 마야인과 꼭 닮은 그림과 마주쳤다. 무릎을 꿇은 남자가 한 여인을 떠받들고 있는 그 그림 아래의 설명을 나는 단 한 줄도 읽을 수 없었지만, 아마 내 인생에서 한 그림을 가장 오랫동안 감상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왜 많은 예술가들이 결국 사랑에 집착하고, 그로 인해 파멸에 이르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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