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고작 7개월의 세계일주

by JUDE

"여보세요?"

"나야"

"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그녀는 마치 내가 돌아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건물을 가득 메운 요란한 간판도, 내리는 눈도, 누구냐고 물어보는 그녀의 목소리도, 모든 것이 낯설었다. 21세기에 공중전화에 동전을 밀어 넣는 사람만큼이나 말이다.


그녀는 기어이 이별을 토해냈다.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멘 채 눈 내리는 골목길을 서성이던 사람을 쳐다보는 시선이 뜸해질 무렵이었다. 순간 차가운 눈 위에 내 평개쳐진 듯 온몸이 시렸다. 그러나 터질듯이 팽팽해진 몸은 움직이지도 눈물을 쏟아내지도 못했다.


겨우 집 앞에 도착했지만, 비밀번호를 누르는 동작도 어색했다. 별표와 샵 버튼을 헷갈려 몇 번을 틀렸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안에 가방을 내려놓고 나자 물속에 잠긴 듯 귓속이 멍멍해진다. 벽에 걸린 세계지도에는 내가 여행한 경로가 알록달록하게 칠해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그 그림을 따라 그렸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유럽을 지나 남미까지 온통 물들인 색칠은 중앙아메리카 어딘가에서 끊어졌다. 새해를 앞두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고 알렸던 즈음이다. 몇 번이나 멈추고 또 그리다가 멈춘 것 같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그 지도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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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모르는 수십 개의 도시를 휘젓고 다니던 나는 정작 집으로 돌아와서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고 뜬금없이 눈물이 흐를 때가 많아졌다. 많은 지인들이 내가 겪은 모험담보다 그녀의 소식을 더 궁금해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잘 다녀왔어'였지만, '그럴 줄 알았어'란 말을 귀에 박히게 들었다. 사람들은 기세 좋게 사표를 던지고 세계일주를 다녀온 사람이 눈물 어린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것에 역으로 위안을 얻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그녀가 소중하지 않아서 떠난 것은 아니었다.


겨울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가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 또한 몰래 훔친 것것처럼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 5월에 전세금 반환소송의 판결이 내려졌다. 10개월의 법정 다툼 끝에 나를 비롯해 같은 건물에 살던 세입자 모두는 패소했다. 십여 명의 세입자들은 판결 기간 동안의 월세까지 빚으로 떠안은 채, 보증금도 없이 거리로 내몰렸다. 변호사는 피고에게 찾아가 판결 기간의 월세만이라도 탕감해 달라고 빌라고 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누군가는 부동산에 누군가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당시 건물주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했고, 전 집주인을 사기죄로 형사 고발했다.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검찰청에서 대질조사를 받고 돌아가던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조사가 끝났을 무렵 빗줄기가 거세지더니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빗물이 고였다. 개의치 않고 계단을 내려서자 차가운 물이 신발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신음하듯이 지하철에 올라 문에 기댔다. 창밖을 보려고 했는데 눈앞에는 전혀 젖지 않은 우산을 손에 든 채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남자가 서 있었다.


찜질방을 전전하다 살 집이 없어진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갔다. 부모님은 다 큰 아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훨씬 더 괴로워하셨다. 그후론 한동안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떠벌릴 일은 아니지만, 정말로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아슬아슬한 끝자락에서 속을 들여다보는 순간, 누군가에게 이 궁색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았다. 끝이라는 말이 너무 서러웠다.


며칠이 지나 한 신문사에 여행기를 투고했다. 첫 회가 나갔을 때 많은 악플이 달렸는데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고작 7개월 여행 간 거로 세계일주랍시고 떠드는 꼴이란. 그걸로 니 인생이 바뀔 거 같지? 안 그래”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떠나기 전에는 '무려 7개월' 이던 것이 이제는 '고작 7개월'이 되어있었다. 요컨대 7개월이란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트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나는 뭐든지 여행 탓을 하던 버릇을 멈췄다. 몇 번의 기사가 더 나갔다. 기사에 등장한 장소를 여행했던 사람들, 그곳에 사는 현지인,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 등 몇몇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했다. 마침내 전세보증금 사건까지 기사를 타자,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중 한 친구의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나의 특이한 이력을 눈여겨보았다는 회사에 취직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나는 나를 조금 더 필요로 하는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어느 날에는 한 카페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몇몇 사람들이 여행을 떠났고, 간간히 연락이 왔다. 세계 곳곳에 친구가 몇 명 생겼고, 일부는 한국에 다녀갔다.


다시 1년이 지났을 무렵, 법원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손해배상을 위한 경매가 종료되었고, 채권자의 권리가 인정되니 배분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날린 줄만 알았던 전세 보증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사건이 벌어진 지 18개월 만이었다.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전화번호를 눌러 그녀에게 알리자 축하의 말이 들려왔다. 그제야 나는 순수하게 내 지난날을 감사할 수 있었다.


세계일주가 아니었다면, 큰 걱정없는 회사에서 일하며 아주 조금 이른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모든 부모가 바라는 자식의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세계일주가 아니었따면 저녁이 있는 따스한 가족의 온기를 더 일찍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하는 7개월 내내 나를 아끼고 사랑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았고, 내 손으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거머쥐려고 노력했다. 한때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도망쳐 숨기도 했다. 당시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그저 발밑이 무너진 것 같고,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다. 끝내 사랑을 잃었지만 내 손으로 내 삶을 망가트린 슬픔을 견뎌냈다. 뜨거운 시절이었고, 돌이켜보면 그 7개월은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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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만큼 삶에 애착을 갖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 어느 장소로 떠난다는 것은 사실 스스로에게 여행을 간다는 의미다. 다 버리고 떠난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그 곳에서도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당신이 더 긴 여행을 떠날수록, 삶에 더 많은 애착을 가지게 될 것이다.


7개월간 수도 없이 행복을 느꼈다. 처음 만난 여행자에게서 느끼는 편안함과 유쾌함, 호수를 가로지르는 바람, 바람에 춤추는 나무의 속삭임, 정글의 아침을 부르는 새들의 노래, 하늘에 아로새겨진 하얀 요정 같은 향기들,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두 사람, 그들의 웃는 얼굴, 그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 어쩌면 남은 인생을 통틀어도 다 볼 수 없을 만큼의 행복을 모두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궁색하고 서툰 여행에 감사하다. 앞으로의 나의 시간도 아마도 그처럼 흘러갈 테니까. 끝으로, 내가 들었던 것 중에 가장 훌륭하고 감명 깊었던 말로 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여러분의 삶에 무운을 빈다.

슬픔도 있었고 어둠은 짙어져 갔지만,
내가 한 모든 일들과 용기, 꿈은 허사가 아니었다.
J. R. R. 톨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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