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유럽을 방문한 건 꼭 10년 전의 겨울이었다. 혹독한 추위의 런던을 시작으로 파리를 거쳐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까지 총 5개국을 16일 동안 여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신 나간 일정이지만 시간보다는 돈이 부족했다. 가난한 학생이었고, 당시 유로 환율은 1800원을 넘었다. 춥고 배고프고 외롭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직장생활 10년 만의 안식휴가는 유럽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희미한 옛 추억을 더듬으며 그 시절 가난했던 나를 안아 주고 싶기도 하고, 몇 년 사이 동생이 런던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0년이 지났지만 영국의 악명 높은 날씨는 여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람이다. 그런데도 런던 사람들은 유별난 축구팬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패딩은 입지 않는다. '신사의 나라'라는 말을 누가 만든지는 모르겠지만 이 추운 날 거리를 활보하는 각양각색의 코트를 보고 있노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상대적으로 '볼 게 없다'며 야박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런던을 벗어나면 의외로 국토 전체에 녹지가 넘쳐난다. 프랑스의 프로방스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브라이튼을 지나 세븐 시스터즈로 가는 길목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의 것과 비교하자면 살짝 젖은 듯한 어두운 색이 영국 특유의 느낌을 낸다.
악명 높은 물가도 여전하다. 아니 그 사이 괴상한 세금정책이 하나 늘었다. 런던 시내 중심가인 zone 1에 차를 들고 가면 1시간에 20파운드라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야 한단다. 덕분에 그 사람 많던 피카딜리 광장을 오가는 차라곤 빨간 2층 버스와 택시뿐이다. 차와 사람이 준 것은 좋지만 여전히 좁은 지하철, 스크린 도어는커녕 열차와 플랫폼 간 단차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재정신인가 싶다.
동생과 나는 소호거리에 있는 어느 스페니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커피 한 잔을 곁들였는데, 거리를 걷는 동안 10년 사이 페인트 공이 영국에서 큰 각광을 받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짙은 회색, 파란색, 빨간색, 에메랄드색 등등, 1층에 자리 잡은 가게들은 저마다 주인의 취향을 드러낸 단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잦은 비와 바람에도 어제 칠한 것처럼 선명한 것을 보면 주기적으로 자주, 꼼꼼하게 칠하는 게 틀림없다. 타워브리지 특유의 하늘색도 어제 칠한 것처럼 선명했다. 잠깐 페인트 칠을 배워볼까 생각했지만 또 다른 섬나라의 주민이 되는 건 관두기로 했다.
그 외에도 며칠간 10년 전의 런던과의 차이를 살펴보려 했으나 런던은 그저 런던으로, 아무래도 변한 것은 내쪽인 모양이다. 두꺼운 가이드 북은커녕 카메라도 없이 핸드폰 하나만 손에 들고 방문을 나선다. 요즘엔 핸드폰으로 다 하니까. 밤이 되면 내일 여행을 계획하기보다 근처 바에 들러 와인을 싫어하는 사람이 먹기 좋은 와인을 추천해 달라는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런던의 필수 관광지를 보기 위한 최적의 경로 찾기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동생과 카페에 앉아 '유로연합을 탈퇴한 영국의 미래' 라던가, '고든 램지로 대표되는 파인 다이닝은 왜 하필 음식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시작되었는가' 따위를 생각했다.
런던을 여행하면서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큰 의미도 답도 없이 추억으로 사라져 버리겠지. 갔던 곳을 다시 간다는 건 원래 그런 거다. 런던을 무덤덤하게 맞을 수 있다. 대신 그 사이 놀랄 만큼 변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읊조리게 된다. 10년간 힘들었지만 좋았구나 하고. 그리곤 다시 또 몇 년 후에 이 곳을 방문할 내 모습을 그린다.
언젠가, 몇 번이라도. 그때까지 잘 버텨다오. 동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