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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Apr 12. 2020

여행을 추억하는 각자의 방식

여행 금지 시대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한 달 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대체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일어나, 머리도 감지 않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배낭 하나 메고 물가가 싼 제3세계를 떠돌며 최대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게 목적인 히피 같은 모습이다. 불과 4개월 전에 올해 다녀올 여행 계획을 세우며 비행기표를 사고 있었는데, 어느새 최대한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올해의 목표가 되어버린 일상. 결국 비행기표는 죄다 취소했다.


퇴근 후 2시간 만에 비행기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날은 7시 출근, 4시 퇴근을 한다. 보통 이럴 때는 이미 익숙한 가까운 나라를 여행할 때다. 일본이나 동남아 같은 곳. 나리타나 덴파사르 공항은 지금도 눈만 감으면 어떻게 해야 가장 빠르게 공항을 통과할 수 있을지 동선이 그려진다.


한때는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를 찾아다니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묘미라고 생각했지만, 40개국을 넘어선 뒤론 생각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햇살 아래 걸었던 그 골목, 코너 끝에 홀로 등불을 밝히고 있던 그 가게를 다시 찾을 때면, 머릿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기억이 달려와 품에 안기는 듯한 기분이다. (사실은 숫자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숫자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딱히 아름답지 않다고나 할까. 40이라는 숫자가 나이와 겹쳐 보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이 좋아하는 여행지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여행을 가든 끝에는 기억으로 남는다. 음식이 살로 남는 것처럼. 계속해서 살을 찌우기만 할 수 없듯이 없듯이 여행으로 채운 기억도 소모해야 된다. 익스피디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같이 다녀온 동행과 이야기 나누기가 여행을 추억하는 방법 1위다.



안타깝게도 그 동행과도 거리를 둬야 하는 요즈음엔 쓸 수 없는 방법이다. 노트에 빼곡히 여행을 기록하는 사람도 있다. 꽤나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에 쓰면 그 뜨거운 감정을 고스란히 노트에 담을 수 있다. 동남아를 너무나 사랑하는 친구는 직접 동남아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반드시 현지의 식재료를 공수하는 것.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요리를 먹을 때면 글이나 사진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그곳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 경우는 TV를 자주 보게 됐다. 세계 테마 기행, 걸어서 세계 속으로, 트래블러 등, 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프로그램이다. 다녀온 나라 수가 마흔 개 정도가 넘어가서, tv에 나오는 곳이 웬만하면 다 가본 곳인 사람이 쓰기 좋은 방법이다.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현지에서 사 온 마그네틱을 만지작 거리는 것.


여행지에서 절대 잊지 않고 사 오는 기념품이 딱 두 개 있다. 우표와 자석이다. 둘 다 부피가 작아 모아놓기에 부담이 없고, 배낭에 자리도 차지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자석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일단 우표는 사는 과정이 까다롭다. 제법 큰 도시의 중앙 우체국을 가야 하는데 영어권 국가가 아니라면 꽤 난감하다.(덕분에 나는 stamp for collection을 여섯 개 언어로 말할 수 있다.) 두꺼운 우펴첩을 넘기며 고르는 동안 등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기라도 하면 식은땀이 날 정도다. 반면에 자석은 마음껏 골라 살 수 있고, 언어의 장벽도 없다. 무엇보다 손에 쥐었을 때의 그 오돌토돌한 입체감이 좋다. 주머니에 넣고 계속 만지작거릴 정도로.



여기에도 규칙이 있는데, 마그네틱 중에도 고무로 된 것이 1순위다. 자기나 금속으로 된 것보다 입체감이 좋고 색감이 풍부해 표현력이 좋으며 깨지지도 않는다. 주로 그 나라의 지도를 입체감 있게 표현했거나, 대표 상징물을 그려놓은 것을 산다. 단순히 나라 이름이나 도시 이름을 새긴 것들은 피한다. 만져봐야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를 탐험 중인 트래블러를 보고 나면 하루 종일 아르헨티나 지도 모양의 자석을 만지작거리게 된다.고무자석의 유일한 단점은 세월이 흘러 고무가 휘어지면서 접지면이 줄어들다가 언젠가는 힘을 잃고 떨어진다는 거다.


어제 또 하나의 자석이 떨어졌다. 이번엔 두바이다. 애초에 만듦새가 좋지 않아, 살 때부터 고민이 많았던 녀석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그대로 버리려다 말았다. 거기 그렇게라도 있으려무나. 불쌍한 낙타야.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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