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동굴과 터널사이 ep.02

by 살아냄

회의실에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회의 시간만 되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대표가 말을 시작하면

어깨가 굳어졌고,

이사가 질문을 던지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부장님이 받는 월급으로는

이 일도 부족해요.”


“지금 이 문제에

딱히 대안이 없다는 거잖아요?”


말 자체가 특별히 거칠지는 않았다.

욕도 없었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들이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처음엔 화가 났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이룬 성과가 얼마인데.’

속으로 수없이 반박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의 시간에 입을 여는 게 어려워졌다.

말할 땐 목소리도 떨렸다.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겠고,

내가 말을 끝낸 뒤의

잠깐의 침묵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 침묵의 순간

머릿속에서는 문장들이 반복됐다.


“담당자가 이것도 모르나요?”

“자신 있으면 책임지고 해 보시죠”

“이런 실수는 이해가 안 되는데요?”


처음에는

대표와 이사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그 말들은

내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난 재능이 없는 걸까?”

“일머리가 없는 건 아닐까?”

“왜 내가 하는 건 다 이런 걸까?”


외부의 말이

내면의 언어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내 몸은 퇴근했는데

머릿속 재생은 멈추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히 퇴근하지 못하고

회의실 한가운데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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