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까지 했으니 이제 최선을 다해 원고를 다듬는 일만 남았다. 날짜를 못 박진 않았지만 스스로 추석 연휴 때까지 퇴고를 마치리라 계획했다. 9월 초에 계약을 했고, 초고가 있으니 든든한 마음이 들어 2-3주 기간이면 굉장히 넉넉할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퇴고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처음엔 맞춤법이나 기본 문법 정도만 손보려 했으나 하다 보니 문장을 삭제한다던가 문단 전체를 다시 쓴다던가 하게 돼서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읽을 때마다 고칠 곳이 자꾸 보이는데 어쩌겠는가. 머리와 눈이 함께 빙글빙글 돌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어느덧시간은 흘러 스스로 정한 데드 라인이 다가왔다. 나하고만 한 약속이지만 꼭 지키고 싶어 연휴 마지막 날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독자가 된 기분으로 읽어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나는 탈고만 하면 출판 과정에서 내가 할 일은 거의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출판사가 다 해주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이건 큰 오산이고 착각이었다. 미처 여유를 느낄 새도 없이 탈고 후 며칠 뒤부터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작업물이 (드디어!) 인쇄소로 가기 전까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첫 번째로 선택할 건 '본문시안'. 쉽게 말해 본문 디자인으로, 본문의 전체적인 색이나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출판사에서 2개를 보내줬고, 디자인은 마음에 들지만 대표 색상의 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색상 샘플표를 보내며 의견을 조율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보통 기획출판일 때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디자인 2-3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게 전부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내가 계약한 출판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출판의 모든 과정에서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덕분에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한 자 한 자 소중히 쓴 원고를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으로 완성해 나갈 수 있었다. 가이드에 따라 치열하지만 즐겁게 작업했고, 출판 과정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신인작가가 이런 출판사를 만난 건 정말 복인 것 같다.
두 번째로 해야 할 건 '본문교정'. 흔히 횟수에 따라 '본문N교'라고 칭해지는데 보통 본문3교가 평균치라고 했다. (근데 나는 본문8교까지 했다 ㄷㄷ) 본문교정은 출판사와 함께 크로스로 체크하면서 했다. 퇴고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맞춤법이나 기본 문법 정도만 손보려 했으나 하다 보니 또 계속 수정의 늪에 빠져 들어 결국 본문8교까지...... 사실 표지가 더 늦게 완성됐다면 본문10교까지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출간 Tip. 본문교정: 본문N교의 N을 줄이는 방법
다음 책을 낸다면 나도 남들처럼 본문3교로 교정을 끝내고 싶어 나름의 방법을 궁리해 봤다.
1. 본문을 1/3씩 나누어 집중적으로 수정하기
본문1교에 1/3, 본문2교에 1/3, 본문3교에 1/3로 분량을 조절하여 수정을 하면 어떨까? 교정을 할 때마다 대책 없이 원고 전체를 샅샅이 살피며 고치려니 에너지 고갈이 너무 심했다. 어차피 교정을 3번은 할 테니 분량을 3개로 나눠 에너지를 집중해서 쓰는 게 효율적일 것 같다.
2. 완벽한 원고는 없다는 걸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기
대가들도 탈고할 때까지, 아니 책이 나오고 나서도 자신의 원고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한다. 애초에 스스로의 기준에서 100% 만족할 만한 원고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걸 받아들이자. 전보다 성장하고 있음에 더 포커스를 두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