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어 스크린을 봤다. 지하철이 언제 오나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도착 예정 안내와 함께 지하철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한가득 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5-10개 사이였던 것 같다. 이내 지하철을 타고 운 좋게 앉아 무심결에 올려다본 스크린. 이번에는 임산부 좌석에 대한 내용이 나오며 어떻게 하라는 내용이 또 연속적으로 촤르르 떴다. 지하철 한 번 타는데 참 하지 말아야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데 비단 지하철뿐이던가. 휴대폰 속 세상은 더더욱 가관이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은 절대 하지 마세요(자매품: OO 하려면 꼭 해야 할 n가지)'라는 제목이 넘쳐난다. 관심을 끄는 제목 한 두 개를 클릭해 읽을 때까지는 '오. 꽤 유용하네~' 싶기도 한데, 몇 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해!'와 '하지 마!' 지옥에 빠진듯한 느낌이다. 수많은 요구들에 진절머리가 나 금세 기분을 풀어줄 음악을 플레이시키고 화면을 끈 후 눈을 감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무지막지한 정보 지옥 세상이 된 건. 분명 어릴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오히려 일반 시민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세상이라 웬만한 정보라면 힘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원하지 않아도 강제적으로 제공되는 정보들에 아주 숨이 막힌다. A는 그걸 안 하면 큰일 난다고 말하는데, B는 그걸 하면 큰일 난다고 말한다. 어디서 나타난 무수한 C, D, E 등은 어차피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으니 공부해야 한다며 자신의 강의나 책을 권한다. 요지경 속이다. 비판적 사고를 하는 데도 정도가 있지. 하다 하다 과부하가 걸린다. 차라리 안 보고 말지!
이쯤 되니 나도 (정보를 가장한) 요구 지옥에서 살 길을 찾는다. 그런 제목은 어지간하면 클릭하지 않는다. 그런 이상한 정보를 접할 바에는 차라리 예능이나 연예 기사를 보거나 노래를 한 곡 더 듣는 게 정신건강에 훨씬 낫다. 그럴싸한 제목에 낚여 클릭해 봤자 별 볼일 없는 내용인 경우가 많다. 눈만 아프지. 눈에 보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안 궁금했던 걸 클릭하는 건 이제 그만뒀다. 대신 궁금한 게 있으면 되도록 AI에게 물어본다. 각각 다른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니 좋고, '~는 꼭 해', '~는 절대 하지 마' 요구를 하지 않아 사람의 불안 심리를 건드리지도 않는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는데 시간은 없고. 남들은 나보다 부지런해서 다 하는 것 같은데. 근데 난 어릴 때부터 시간이 아닌 효율로 살았잖아. 남들한테도 효율 좋단 말을 자주 들었고. 나만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과 내가 가진 강점에 사로잡혀 닥치는 대로 효율을 쫓다 보니 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런 제목들에 더 눈이 갔었다. 그런데 허전하다. 분명 뭔가 하긴 하는데 알맹이를 놓치는 것 같다. 완전히 내 걸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겉만 훑고 넘어가는 느낌.
적어도 내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한해서는 내가 사유하고 나만의 답을 내리며 한 발 한 발 가야겠다.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해도.
알고리즘이나 광고를 통해 어떻게든 나에게 침투하려는 외부의 요구들, 흥칫뿡. 이젠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