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상반기는 4월부터 시작된다. 3월은 하반기말이자 연말이다. 크고 작은 조직개편과 다른 시기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인사이동을 앞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기의 퇴사를 두고 우리 회사는 미리부터 희망퇴직자들을 받았다. 당신의 회사 이후의 삶을 응원합니다, 같은 묘한 제도(즉, 희망퇴직)를 만들어 나이가 많은 직원 퇴사자들이 우르르 나가게 됐다. 우리 사무실에서도 희망퇴직자가 두 명 있었다. 거의 같이 일한 적은 없는 아저씨와 할아버지 중간쯤의 직원들. 친절하지만 어쩔 수없는 세대차이에서 오는 꼰대력은 숨길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직 젊어서 그런가, 희망퇴직자들과 크게 얽힌 적이 없어서 그런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만 그런지, 일본 회사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퇴직자에겐 '돈'을 준단다. 십시일반 모아 깨끗한 현금을 복잡한 예의를 지킨 봉투에 넣어 축의금마냥 전달하는 것. 아직 연차가 적다는 이유로 제일 작은 금액을 냈지만, 그럼에도 퇴직자 한 명 당 천 엔씩, 총 2천엔 뜯겼다(?). 내돈 내고 그들의 송별회까지 가니 퇴직자들이 미워지기까지 했다(한 명은 마지막 출근일에 과자라도 돌렸지만, 나머지 한 명은 정말 나에게 말 한마디, 인사 한마디 없이 퇴사했다).
아직은 희망퇴직은 남일인 젊은 직원으로서 시큰둥 봐라봤지만, 나도 퇴사하게 되는 날 이럴까, 싶은 것도 있었다. 모두들 돈도 모으고 송별회도 하고 퇴직자들을 잘 배웅하려고 했지만, 정작 마지막 출근일 당일에는 두 명 다 쓸쓸히 퇴근했다. 우리 사무실은 재택근무가 자유롭고 외근도 있는 곳이라 사무실에 매일 모두가 있는 건 아니다. 한번씩은 이렇게 사람이 없나 싶을 정도로 자리가 많이 비어있을 때도 있다. 퇴직자 두 명 모두 그런 날들에 혼자 짐을 정리하고는, 수신자를 BCC에 넣은 퇴사자 전체 메일을 발송하고 별로 친하지 않던 젊은 직원들에게 어색한 인사를 받고 마지막 퇴근했다. 물론 퇴사 안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업무가 있으니 퇴사자의 마지막 출근일에 맞춰 움직일 순 없으나, 퇴직자들이 덕을 못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별거없는 마지막날이었다.
그러고보니 부장님은 ㅇㅇ상이 퇴직하면 이제 누구랑 골프 같이 치냐며 장난스레 하소연했다. 골프야 주말에 치는 거니, 퇴직하고 말고는 별 차이 없을 것 같은데, 몇 번이고 골프 같이 칠 사람이 없어진다는 얘기를 해서 의아했다. 물론 그들이 하루아침에 연을 끊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집단에서 나가버리는 사람과는 더이상 엮이지 않는 것인가, '일본인 인간관계 바이어스bias'가 작동했다.
회사 사람들과도 어쩔 때는 가족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다. 일 얘기 말고 시덥잖은 농담도 하고 누구보다 자주 만나다보니 일상적인 부분도 많이 공유한다. 일을 할 땐 같은 과로, 부로 으쌰으쌰하기도 하고, 우리 조직의 부모 같은 과장님, 부장님에게 의지도 하면서 일본 스포츠 만화에 나오는 감동 스토리 감성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직의 형태와 체제로 이끌어지는 관계에서 퇴직과 이동으로 결국엔 덧없음을 느낀다. 누군가는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 그런 거라며, 깊이 생각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보다 장시간 만나고 나의 밥벌이를 함께 하는 사람들 아닌가. 일본에서 3월은 정없고 덧없게 지내고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욕심 같은 시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