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가 한 연예인의 말을 들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새로운 향수를 사서 뿌린다는 것이다.
왜냐면, 후각은 다른 감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아서
그 향기를 맡으면 그 여행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향수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문득, 향기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들이 꽤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한번은 아는 동생이 내게 핸드크림을 발라준 적이 있다.
그 동생에게선 늘 기분 좋은 향이 났다.
아마 향기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당시 나는 손잡이가 달린 서류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그 핸드크림의 향이 손잡이에 배어 오래도록 남았다.
시간이 꽤 지난 뒤에도 가방을 잡으면 그 향이 났다.
벌써 15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또 한 기억은 대학 시절 짧게 사귀었던 사람에게서 나는 화장품 향기다.
헤어진 후 버스 안에서 같은 향기를 맡고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물론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만,
무슨 향기일까 생각하기도 전에 내 몸이 먼저 반응했던 순간이었다.
이처럼 향기는 추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종종, 그 향기가 기억을 먼저 불러낸다.
논리보다 앞서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우리 어머니는 요리에 굴소스를 자주 쓰신다.
그 짭짤하고 감칠맛 나는 향은
특히 고기나 야채를 볶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지방이 적어 심심한 닭가슴살도 굴소스를 넣으면 감칠맛이 살아난다.
주방에서 굴소스 향이 솔솔 풍겨오면
아, 곧 밥이구나 싶은 예감이 든다.
또 장조림 같은 음식을 할 땐
간장을 졸이는 냄새가 집안에 퍼진다.
보지 않아도, 냄새만으로 무슨 요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향기는 기억을 소환할 뿐 아니라,
곧 일어날 일을 예고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눈보다 코로 먼저 시간의 문을 여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