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언덕

못난 놈의 이탈.

by 살비

수많은 발자국이 길을 만든다.

안락하고 평탄한 길.

그것은 이름 모를 선배들이 지나간 길이다.

돌부리마저 뽑혀버린, 고대 왕의 무덤처럼 야트막한 언덕


이곳에는 현생의 사람들이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다.

넓고 긴 이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옆사람, 앞사람을 살피며 떠밀러 간다.

1.png Harald Sohlberg – 《Fisherman’s Cottage (1907)》

그중에 못난 놈 하나가 우거진 숲 속 아무도 가지 않은 산에 들어선다.

"저 놈은 도착 못할 거야."

"저 사람 이상하네, 뭐 하는 건지 쯧쯧"

"신경 끄고 내 갈길이나 가자."

길을 걷던 사람들이 제각기 눈길을 훔치고 자신의 길에 집중한다.


하늘님이 변덕을 부려 비가 쏟아지는 날

발이 푹푹 빠지는 그 평탄한 길에는 해일처럼 물이 밀려와 사람들을 덮친다.

언덕에 올라선 자들이 말한다.

"꾸준히 올라오면 물에 잠기는 걸 피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요즘 것들은 너무 게을러서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못하고 한심하네."

격려와 조롱이 빗발친다.


언덕 위의 그들은 비를 쫄딱 맞아가며, 세상을 탓하며,

아직 못 올라온 사람들을 보며 자신을 위로한다.


산에 들어간 못난 놈은

나무에 가려진 빗줄기와, 계곡에 흐르는 물줄기가

높은 경사의 산길에서 동료가 되어준다.

OIP.jpg Caspar David Friedrich – 《The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정상에 도착해 마을을 내려다보니,

좁은 언덕 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려고 사람을 짓누르고 있는 이들을 보게 된다.

알 수 없는, 격한 감정이 차오른다.

이것은 안도인가 연민인가.


제목 없음.png Jules Breton – 《The Song of the Lark》(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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