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의 무대를 마친 배우들이
그 화려한 옷을 바닥에 널부러 놓았다.
레드카펫에 들어서자,
그 옷들이 바스락거리며 나를 맞이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리워한 곳.
불쑥불쑥 그 화려한 옷들 사이로
제각기 생겨먹은 바위들이
"나를 밟아줘" 두더지 게임을 하듯
얼굴을 들이민다.
잠에서 덜 깬 앙증맞은 야생화는
나를 올려다보며 빙그레 웃고,
양옆으로는 반가움에 포옹하려고
손을 뻗는 잎싸귀들,
그 뒤로는 양손을 거침없이 흔들며
온몸으로 나에게 인사하는 나무들.
저 멀리 서는 "오랜만이야"라고 말하듯
새벽산등성이의 거센 바람이 나를 부른다.
2부의 막이 오르면,
검푸른 무대에 분홍빛 물감이 번진다.
1부의 출연자들은 소리 없이 퇴장하고,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한다.
무대가 푸른빛으로 변해갈 무렵,
거대한 자가 슬며시 나와 발걸음을 맞춘다.
할머니가 손주를 바라보듯,
따뜻한 미소가 오른쪽 뺨에 느껴졌다.
그 온기를 따라가자,
그의 형형색색의 옷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그 뒤에도,
그와 닮은 자들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는 동그랗게,
누구는 다소 뾰족하게.
하지만 같은 핏줄이 아니랄까 싶을 만큼
비슷하면서도 제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녀석은 여전히 화려했고,
큰 녀석은 이제 흥미를 잃은 듯 다소 헐벗어 있었다.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들은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흥미로워서
어느새 나는 그들의 유혹에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문득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떠올랐다.
내가 만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려한 지리산이었나?
지리산을 보기 위해 함께 달려온
나의 친구들이었을까?
아니면,
몇 해 전인지 헤아릴 수 없는
그날들의 그리움이었을까..
그 그리움이 매년 나를 이곳으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