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존재

철학이라는 미로에 들어선 인간에 관하여

by 살비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에 빠졌다.

나의 의지는 아니지만,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주어지는 일종의 숙명이다.


하지만 이 미로는 출구와

또 다른 미로의 입구로 연결되어 있다.


출구에 한 번도 도착하지 못한 이는

언젠가 도착할 그곳에 희망과

가까워짐에 환희를 느낀다.


The Closed Eyes, 1890.jpg Odilon Redon, The Closed Eyes, 1890


하지만 출구에 도달한 자는

또 다른 입구를 보고 좌절한다.


철학이란 그 미로에 켜진

등불 같다.


누군가는

출구를 가장 빨리 찾는 법,

출구를 한 번에 가는 법을

벽에 걸어놓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출구에 도달했는가.

또 다른 입구라는 걸 알고도

그렇게 떠들어대는가.


등 뒤에 켜진 등불이

어느새 번져 화마로 나를

쫓으면, 그것은 무엇인가.


제목 없음.jpg Arnold Böcklin, Isle of the Dead, 1883


그래도 묵묵히 걸어가라고?

미로의 입구에 뒹구는 수많은 시체들,

그들을 존경하게 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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