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물감

말라버린 감정의 팔레트 위에서

by 살비

언젠가부터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말들이 시시해졌다.

“세상은 이런 색이야. 성공한 사람은 이 색, 무지한 사람은 저 색.”

세상을 그렇게 구분하는 말들이, 이제는 너무 뻔하게 느껴진다.

그나마 최근에 본 “그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문장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나는 늘 행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많다.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에, 그 끝을 먼저 상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부질없는 일이다.

해보지 않고, 그 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일의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 둘이 겹치는 순간, 나는 결정을 미룬다.


아무리 좋은 물감이라도,

물에 풀지 않으면 그 색은

끝내 감춰진 채 남는다.

나는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물에 풀면, 내가 가진 색이 희미해질까 봐 두렵다.

내 안의 색이, 흔한 회색이 될까 봐 괴롭다.


그래서 물속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향연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속에서도 불꽃은 터진다.

빛은 번지지 못하고, 스스로를 태우다

조용히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괴롭다.

영원한 꽃은, 없는 것 같다.

그 괴로움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고통.

참고 또 참다가, 단 한 번을 더 못 참아서

지금까지도 아픈 건 아닐까.


굳은 물감처럼,

물에 번지지 못한 채

내 안에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천천히, 아주 조금씩

색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말없이,

내 안의 물 전체를 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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