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반짝임은 사실 흔들림이다.
어릴 적,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를 읽었다.
그 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긍정을 건네면, 누군가가 움직인다.”
사람들은 보통 뒤돌아서서 평가한다.
잘하면 말이 없고, 못하면 그제야 말이 많다.
그렇게 등을 맞대고 주고받는 관계는,
대체로 오래가지 못한다.
왜일까?
그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자신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상대가 실수하길 기다렸다가 깎아내리는 게 빠르고 간단하다.
잘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는 일이니까.
누군가를 칭찬한다는 건,
그 사람이 무엇을 잘했는지 지켜보아야 하고,
그걸 말로 꺼내기 위해 마음의 문장까지 써야 한다.
시간과 정성은 들지만,
돌아오는 건 대체로 조용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말 대신 침묵을 택한다.
모두가 그 침묵에 익숙해지면,
관계는 멈춘다.
몇몇이 앞장선다 해도,
뒤따르는 이들이 발목을 잡으면 결국 속도는 느려진다.
칭찬도, 보상도,
내가 건넸다고 해서 상대가 기쁘리란 보장은 없다.
여우가 접시에 낸 음식은 두루미에겐 배려가 아니었듯,
내 방식의 다정함도 누군가에겐 불편함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칭찬 기계가 되었다.
옷차림이 바뀌면 "오늘 멋진데?"라고 말했고,
흘려 말한 다짐을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꼭 덧붙였다.
“그봐, 넌 결국 해냈잖아. 대단하다.”
사람들이 웃으면, 나도 웃었다.
“당신은 참 따뜻한 사람이에요.”
“너는 뭔가 좀 특별한 거 같아.”
그 말들이 내게 돌아올 때면,
내 주변에 조용히 빛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러다 점점 피곤해졌다.
어제와는 다른 표정을 한 사람을 보면,
괜히 마음이 쓰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먼저 앞섰다.
또 내가 건넨 질문은 때론 오해를 낳았다.
“혹시 나한테 관심 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스스로의 안테나를 조정했다.
어디까지 바라보고, 어디까지만 말할지.
재미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은 점점 말랑해졌다.
나는 다정했지만,
모두가 그 다정함에 응답해주지는 않았다.
“너 왜 이렇게 착한 척 해?”
“니가 뭔데 날 평가해?”
그 말들은 조용히, 깊게 나를 찔렀다.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고 했던가.
나는 계속 호잇~ 호잇~을 외쳤고,
어느새 지쳐 있었다.
한때는,
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 마음보다 세상이 훨씬 컸고,
나는 거기서 아주 조용히 부서졌다.
사람들이 착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악설이 내 안을 스쳐 지나간 건, 그쯤이었다.
그 후로 나는 반딧불처럼 깜빡이는 감정으로 살았다.
그게 별일까, 불일까, 헷갈릴 만큼 작고 희미하게.
우주는 넓고, 별빛은 아무리 밝아도
그 전체를 밝혀내진 못하니까.
칭찬이, 다정함이 더는 즐겁지 않았을 때,
나는 조용히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내 안의 색도 천천히 검게 물들었다.
스스로가 블랙홀이 되어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주변에 있던 그 수많은 사람들,
사실은 모두 제 빛을 품고 있었다는 걸.
그들로 이루어진 작은 은하 속에,
나도 조용히 함께 빛나고 있었던 걸.
그러니,
밤하늘이 어둡다고 너무 일찍 외로워하지 말자.
가장 가까운 곳에,
별보다 빛나는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