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귀향 14화

14. 귀소

by 박루이


그렇게 세월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새 그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 되었다. 나이가 차서 주민 등록을 해야 했다. 이젠 집에 연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지만, 그의 부모는 야단 한 마디 없었다.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랬다. 그는 부모의 희망에 따라 그 해 봄,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가출을 한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정규학교에는 다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여수동에 있는 공민학교에 들어갔다. 공민학교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미인가 교육기관이었다. 그래서 졸업을 해도 학력이 인정되지는 않았다. 검정고시를 봐야 고등학교를 갈 수 있었다. 그는 중학교 2년을 다닌 것이 인정되어 3학년으로 편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5개월 후인 그 해 8월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3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를 공부에 매진하게 했다.


모란은 서울로 통하는 절묘한 입지와 모란 5일장으로 인해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다. 농촌의 농작물이 올라오고 수도권 시민들의 소비로 연결되면서 모란 5일장은 유명소가 되었다. 그로 인해 모란시장 주변은 도로가 넓어지고 건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공부하는 시간을 빼고는 아버지가 하는 소 키우는 일을 도왔다. 경운기를 몰고 여수동이나 탄천 너머의 고등동에서 가서 소에게 줄 여물을 해오는 일이었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정규 학교를 가는 게 어려워 보였다. 이미 동생 셋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그마저 학교를 갔다가는 부모님이 더 힘들어질게 뻔했다. 그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공부할 수 있는 야간학교를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그의 아버지가 교통경찰인 차순경과 친했는데, 그에게 야간학교를 다닐 수 있는 일자리를 부탁했다. 적어도 4시 정도엔 학교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모란 파출소에 사환 자리가 나서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5시에 퇴근해야 했으나, 그의 사정을 봐서 4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파출소의 사환은 그야말로 심부름꾼이었다. 청소와 순경들의 잔심부름을 해주고, 아침에는 정기적으로 경찰서에 서류를 전달해 주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파출소 사환을 하면서 다닐 수 있는 야간학교는 많지 않았다. 각 지방마다 기술을 가르치는 전수학교나 고등공민학교가 있었지만, 전수학교들은 워낙 유명해서 그는 가기가 꺼려졌다. 공부는커녕 쌈박질만 하러 다닐 게 뻔했다. 험한 분위기의 학교에서 공부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 성남에만 해도 학생들이 주축이 된 폭력서클이 수두룩했다. 제일 잘 나가는 곳이 ‘짝귀파’였다. ‘짝귀’라는 별명을 가진 고등학생이 두목이었다. 싸우다 생겼는지 원래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귀 한쪽이 날아가서 짝귀라고 불렸다. 그들은 수십 명씩 패거리로 몰려다니면서 폭력을 일삼았다. 패싸움은 다반사였고, 학교대항전, 다구리, 원정경기도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다. 그중에 가장 악랄한 짓은 지나가는 여학생을 데려다가 돌아가면서 겁탈하는 일이었다. 지나가는 여학생이 없을 때는 남학생을 협박해서 애인이나 여동생을 불러내게 한 다음 그런 몹쓸 짓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그런 일을 마치 무용담처럼 떠들고 다녔다. 그런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피해자가 많아지자 그런 일을 막겠다고 생긴 여학생 폭력서클도 있었다. 그것이 검은 가죽점퍼의 ‘장미파’였다.


그들의 무기는 주로 몽둥이였지만, 간혹 체인이나 자키레바를 쓰는 녀석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깡’을 내세우며 맨손으로 싸우는 녀석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기를 사용했다. 몽둥이에 못을 박는 녀석도 있었다. 못을 박은 몽둥이로 내리치고 옆으로 후리면서 들어 올리면 찢긴 살점이 피와 함께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것은 맞는 아픔보다 보는 아픔이 더 컸다. 체인은 맞았을 때 ‘퍽’하는 소리가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마치 몸을 심연으로 가라앉힐 것 같은 묵직한 소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칼을 쓰는 녀석들이 늘어났다. 그중에 면도칼을 쓰는 녀석이 있었는데, 그가 그만 살인을 저지르는 바람에 검찰과 경찰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졌다. 그 일로 인해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폭력서클이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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