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이나 다방, 요정 등 유흥업소에는 수시로 종업원들이 들락거리게 마련이었다. 스스로의 문제로 자리를 옮기거나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소개소 직원들이 이리저리 사람을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업원들이 자주 자리를 옮겨야 소개비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소개비로 첫 달 월급의 절반을 받아 갔다. 그도 처음에는 소개소 소장의 말에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이화장에서 나와 주덕 사거리에 있는 국밥집에서도 일을 했고, 음성 시내에 있는 요정에서도 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도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언제까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공부를 할 수 없으니 기술을 배워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산이리에 있는 붓 만드는 공장이었다.
모든 공정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노동집약적인 곳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붓에 쓸 털을 정돈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세탁을 해서 뒤엉켜 들어온 털을 나무판에 깔고 날카로운 판자로 앞뒤로 저어서 털의 머리와 뿌리를 구분했다. 조금 능숙해지면 나무판자로 털을 저으면 짙은 머리 부분이 선명하게 나타나면서 분리가 됐다. 분리된 털을 모아서 한 주먹에 쥐고 빗으로 빗겨주면 윤기 나는 머리와 뿌리로 구별되었다. 그것을 고무줄로 묶은 다음 뿌리 쪽에 접착제를 발라 고정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털을 용도에 따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실로 묶은 다음 접착제를 발라 대나무나 플라스틱 자루에 끼우면 붓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조별로 긴 탁자에 늘어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10대 중후반의 청소년들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물건을 옮기거나 포장하는 거친 일을 했고 여자 아이들은 털을 고르고 빗어서 다듬는 일을 주로 했다. 대부분이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감독 격인 주임의 감시가 대단했다. 단체생활이란 것이 항상 시끄럽고 사고가 잦기 마련이었다. 말썽을 부리는 자는 어디론가 끌려가 매를 맞거나 공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아이들 중에 순애라는 예쁘장한 소녀가 있었다. 그는 평소의 습관대로 친절하게 그녀를 대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여자에게 친절한 것은 그의 몸에 밴 습관 탓이었다. 그녀만을 특별하게 잘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 특히 주임의 눈에는 그것이 무척 아니꼬워 보였던 모양이었다. 소문을 들어보니 주임이 그녀에게 무척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부터 그 주임은 사사건건 그를 붙잡고 늘어지며 시비를 걸고, 무어라 대꾸를 하면 뒤통수를 때려 가면서 못살게 굴었다. 기술을 배우는 것은 고사하고 일을 못할 정도로 그를 괴롭혔다. 그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어른한테 대든다고 치도곤을 당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녀를 생각해서 순순히 그곳을 그만두었다.
그가 두 번째 찾아간 곳은 길음동에 있는 단추 만드는 공장이었다. 호마이카 수지에 염료를 섞고, 경화제를 넣은 다음 단추 틀에 붓고 굳히면 단추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굳은 단추의 후면을 그라인더로 말끔하게 갈아내고 구멍을 뚫은 다음, 광통에 넣고 돌려서 광을 내면 반짝거리는 예쁜 단추가 만들어졌다. 작업 환경은 그야말로 먼지굴 속이었다. 단추를 갈아내면서 생긴 먼지가 뿌옇게 서린 곳에서 마스크 하나에 의지한 채 콧구멍이 시커멓게 되도록 일을 해야 했다. 대부분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그 공장 기숙사 골목 끝에는 저녁이 되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드는 또 다른 골목이 시작되었다. 공장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그 골목이 훤하게 내려다 보였다. 골목 양쪽으로 어깨가 드러나는 숄을 걸친 아가씨들이 늘어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공장 사람들은 그곳을 ‘미아리 텍사스’라고 불렀다. 그는 그 광경이 신기해 자주 옥상에 올라가 구경을 하곤 했다. 가끔은 그녀들이 그를 향해 오라는 듯이 손짓을 해댔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면서 웃어댔다. 그럴 때면 그는 얼굴이 빨개져서 줄행랑을 쳐야 했다. 그곳에 있다가는 기술은 고사하고 비루한 인간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1960년대 말, 서울 도심의 여러 집창촌들이 단속과 도시 정화 사업으로 해체되면서, 그곳에서 밀려난 여성들이 당시 변두리였던 하월곡동과 정릉천 변에 모여들면서 대형 집창촌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하월곡동과 길음동 일대에 걸쳐 있었으며, 무허가 판잣집들이 밀집해 있었다. 전성기에는 수백 개의 윤락업소가 성업했고, 1,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대부분 가난을 피해 고향을 떠나 상경한 어린 여성들이었으며, 다양한 사연을 안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간혹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뛰어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빚이나 사기 등으로 쉽게 갚을 수 없는 큰돈을 갚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경우가 많았다. 이 지역은 '미아리 텍사스' 또는 '미아리 포청천'으로 불렸으며,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했다. 농촌의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사회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가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연신내에 있는 인형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가 맡은 일은 인형 모양의 보슬보슬한 원단을 미싱으로 박아 주면, 그 안에다 솜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발로 밟으면 솜이 뿜어져 나오는 볼펜 정도 굵기의 스텐 파이프에 인형을 씌우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구석구석 솜을 채우면 되는 것이었다. 제법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쉴 틈 없이 손을 놀려야만 했다. 잠깐 딴짓했다간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이기 마련이었다.
인형 공장에도 대부분 어린 10대 청소년들이었다. 그보다 어린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의 나이 정도면 벌써 거들먹거릴 정도로 연령대가 낮았다. 그중에 유독 유세를 부리는 덩치 큰 녀석이 하나 있었다. 똘마니들을 데리고 다니며 텃세를 부렸다. 그는 워낙 순했기 때문에 그 녀석을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 녀석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다. 하지만 그 녀석은 일부러 그러는지 그에게 자꾸 시비를 걸어왔다. 그는 몇 번을 참았다. 괜한 소란을 일으켜 봐야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은 엄한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괴롭히거나, 여자 아이들을 희롱하는 게 취미인 듯싶었다. 용문산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저렇게 무방비로 놔두었다가는 그 녀석의 횡포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자는 아주 매운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그 심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 무서운 줄 알아야 조심성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은 그가 용문산에서 그의 아버지를 통해 배우고 터득한 세상을 보는 관점이었다.
마침 그가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을 때, 그 녀석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그가 그 녀석을 여러 번 피했기 때문에 그 녀석은 그를 우습게 여기는 듯했다. 대뜸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시비조로 말했다.
“야 임마, 너 왜 자꾸 나를 피하는데?”
“.....”
“어이쿠…”
그 녀석은 얼굴을 감싸 쥐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녀석의 턱에 걸쳤던 하얀 마스크 사이로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이들에겐 쥐어 터져서 코피를 줄줄 흘리게 하는 것만큼 두려운 것도 없었다.
“나는 너 같은 찌질이 상대할 생각 없다.” 그는 빨래를 다 널고 무심한 듯 옥상을 내려갔다.
그렇게 그가 인형 공장을 평정하고 열심히 기술 연마에 열중하고 있던 차에, 소개소 소장이 신양의 소식을 전해 왔다. 그녀가 원주에서 음악다방을 개업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들뜬 마음에 망설임 없이 그녀를 찾아 원주로 갔다. 그녀가 차린 음악다방은 원주 시공관 뒤편 골목, 식당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늑한 분위기의 홀과 뮤직박스를 갖추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였다. 뮤직박스에는 군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앉아서 열심히 LP판을 닦고 있었다.
“어머! 너… 어떻게 금방 시간이 났어? 이리 와.”
카운터에 있던 그녀가 그를 잡아끌고는 주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주방 뒤쪽으로 조그만 방이 딸려 있었다.
“축하해요! 누나. 드디어 소원을 이루셨네요.”
그녀는 무척 건강해 보였다. 고향에 돌아와 몸관리를 잘한 탓인 듯했다.
“고마워. 넌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기술 배운다고 공장에 들어갔다며?”
“누나가 충고해 준 게 있어서 그랬지요.”
그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그에게 장래를 생각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꼭 농담만은 아닌 셈이었다.
“어이구… 말은 잘해요.”
그녀는 예전처럼 그의 두 볼을 꼬집으며 웃었다.
“아 참, 잠깐만.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 오빠! 이리 들어와 봐요.”
“오케이!”
그녀가 홀에 대고 소리를 지르자 뮤직박스에 있던 군인이 대답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양쪽 어깨에는 초록색 견장에 다이아몬드가 두 개씩 달려 있었다.
“인사드려. 임 중위님이셔… 얘는 내가 말했던 박군.”
“안녕하세요.”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얼굴은 구릿빛에 훤칠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반가워! 은숙이 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누군지 궁금하지?”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약혼했어. 내년 봄에 결혼할 거야.”
“정말?”
그는 너무나 놀라고 기뻤다. 두 사람은 빙긋이 웃으며 다정하게 서 있었다.
“축하드려요. 제가 오늘 정말 잘 왔네요. 이런 기쁜 소식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자자… 내가 점심을 차릴 테니까, 두 사람은 가서 영웅담 좀 나누셔요.”
그녀는 그들을 내쫓듯이 밖으로 내보냈다. 그녀는 무척 겸연쩍은 듯했다. 그녀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만났다는 게 그로서는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해피엔딩도 없겠다 싶었다. 그는 자신에게도 이런 행복한 날이 있을까 하는 상념에 빠져 들었다.
“오빠랑 나는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랐어. 친오빠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우린 남매 같아.”
그녀는 추억에 젖은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가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던 것도 이런 인연을 잊을 수 없어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날이 좀 비참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행복을 찾았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필사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니 그 누구도 그 행복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그 행복한 커플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부지런히 연신내로 돌아왔다. 그 자신도 언젠가는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