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마서 3

제3장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

by 박루이


제3장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곡 11-14 / 로마서 3장)


앞선 장에서 우리는 바울이 그린 인류의 자화상을 마주했다. 화려한 문명 뒤에 가려진 이방인의 타락과, 종교적 특권에 기만당한 유대인의 위선. 그 결론은 명확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이유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인 조건이 아닌 ‘마음의 할례’가 참된 신앙의 본질이라는 선언은,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을 낳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이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단 말인가?”


이 장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하여, 로마서 전체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이신칭의’의 위대한 선포로 나아간다. 이 장은 어둠이 가장 짙게 깔린 후에야 비로소 새벽이 밝아오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완전히 무너진 바로 그 자리에 어떻게 하늘로부터 오는 구원의 빛이 비추어지는지를 노래하는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다.


제11곡. 그런즉 (로마서 3장 1-8절)

그런즉 (로마서 3장 1-8절)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은 유대인들의 예상 가능한 반론을 먼저 제기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논증을 이어간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1절). 그의 대답은 단호하다.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2절).

유대인의 특권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 즉 율법과 약속의 말씀을 위탁받은 청지기라는 엄청난 영광을 누렸다.¹

그러나 곧바로 다른 질문이 제기된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신실하심)을 폐하겠느냐?”(3절).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μη γενοιτο)!”고 외친다.²

이는 ‘결코 아님’을 뜻하는 가장 강력한 부정이다. 인간은 거짓될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참되시며, 인간의 죄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배경이 될 뿐이다(4절).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면,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 아니냐”는 식의 궤변을 소개하며, 이는 은혜를 악용하려는 인간의 자기 합리화일 뿐이라고 일축한다(5-8절).³


제12곡. 그러면 어떠하냐 (로마서 3장 9-18절)

그러면 어떠하냐 (로마서 3장 9-18절)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모든 반론을 잠재운 바울은 이제 1장 18절부터 시작된 긴 고발의 최종 변론을 시작한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9절).

말씀을 맡았던 특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상태에 있어서 유대인은 이방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죄 아래(under sin)’, 즉 죄라는 폭군의 지배 아래 놓여있다.⁴

이 엄중한 판결을 입증하기 위해, 바울은 이제 유대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증인, 즉 구약성경을 소환한다. 그는 시편과 이사야서의 구절들을 마치 사슬처럼 엮어(이를 ‘카테나(catena)’라고 부른다),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고발하는 강력한 증언을 낭독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10-12절)

이 노래는 인간의 본성과 방향성이 총체적으로 타락했음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부패한 언어(13-14절)와 파괴적인 행동(15-17절)을 고발한다. 그리고 이 모든 비참함의 근본 원인이 단 하나,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음이라”(18절)는 사실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제13곡. 우리가 알거니와 (로마서 3장 19-24절)

우리가 알거니와 (로마서 3장 19-24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구약성경의 이 준엄한 고발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못 박으며, 바울은 마침내 모든 인간적인 탈출구를 봉쇄한다.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19절).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다. 그 목적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서 1부 전체의 결론과도 같은 선언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20절).

율법은 구원의 사다리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깊은 죄의 구렁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진단 도구일 뿐이다.⁵ 모든 입이 막히고 온 세상이 유죄 판결 아래 침묵에 잠긴 바로 그 순간,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반전을 노래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1절)

‘이제는(Νυνὶ δέ)’! 이 한 단어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린다. 율법의 행위와는 무관한,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이 의는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가 오랫동안 증거해 온 것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주어진다(22절).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23절) 때문이다. 죄 아래 평등하기에, 은혜 앞에서도 평등한 것이다. 이 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며, 그 방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을 통하는 것이다(24절).⁶


제14곡. 이 예수를 (로마서 3장 25-31절)

이 예수를 (로마서 3장 25-31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마지막 곡에서 바울은 십자가에서 일어난 구원의 신비를 노래한다.

하나님은 “이 예수를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25절).

‘화목제물(ἱλαστήριον)’은 구약의 속죄소처럼,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해결하고 죄 자체를 깨끗하게 하는 유일한 장소다.⁷ 십자가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완벽하게 만나는 지점이다. 과거의 죄를 간과하시는 것처럼 보였던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아들에게 죄값을 치르게 하심으로 자신이 얼마나 공의로운 분인지를 증명하셨다.

그 결과 하나님은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이 되셨다(26절).⁸

이 위대한 진리는 세 가지 결과를 낳는다. 첫째, 구원은 전적인 선물이므로 인간의 ‘자랑’은 있을 수 없다(27-28절). 둘째, 구원의 길이 오직 믿음 하나이므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은 무너진다(29-30절). 셋째, 이 믿음의 길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31절). 믿음이야말로 율법이 진정으로 가리키고 요구했던 바를 성취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장엄한 선포와 함께,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바울은 이 믿음의 원리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다음 장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조상 아브라함을 증인으로 소환할 것이다.


각주

¹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는 ‘하나님의 말씀(τα λογια του θεου)’이 구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구원 약속을 포괄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96), 180.)

² F. F. 브루스(F. F. Bruce)는 ‘메 게노이토(μη γενοιτο)’가 바울 서신에서 14회나 사용되며, 상대방의 잘못된 결론이나 신성모독적인 생각을 경악하며 거부할 때 사용되는 강력한 수사적 장치임을 지적한다. (F. F. Bruce, The Epistle to the Romans, TNTC (Grand Rapids: Eerdmans, 1985), 94.)

³ C. K. 바렛(C. K. Barrett)은 8절의 논증 방식이 당시 철학자들이 사용하던 수사학적 기법인 ‘디아트리베(diatribe)’의 전형적인 예라고 본다. (C. K. Barrett, The Epistle to the Romans, Black's New Testament Commentary (London: Continuum, 1991), 63.)

존 스토트(John Stott)는 ‘죄 아래(under sin)’라는 표현이 죄를 인간을 지배하는 노예주인이나 독재자에 비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John Stott, The Message of Romans: God's Good News for the World (Downers Grove: IVP Academic, 1994), 98.)

톰 라이트(N. T. Wright)는 율법의 기능을 거울에 비유한다. 거울은 우리의 얼굴에 묻은 얼룩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 얼룩을 닦아낼 수는 없다. (N. T. Wright, Paul for Everyone: Romans, Part One (London: SPCK, 2004), 45.)

리처드 헤이스(Richard B. Hays)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22절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the faithfulness of Christ)’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불완전한 믿음이 아닌,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실하심에 근거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Richard B. Hays, The Faith of Jesus Christ (Grand Rapids: Eerdmans, 2002), 158-161.)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는 바울이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죄일에 속죄소 위에서 이루어지던 속죄 제사를 단번에 영원히 성취하신 ‘새로운 속죄소’이심을 암시한다고 본다.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231-233.)

존 스토트(John Stott)는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설명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성품에 충실하시면서(자신에게 의로우시면서), 동시에 죄인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의 언약에도 충실하셨다(우리에게 의로우셨다).” (John Stott, The Cross of Christ (Downers Grove: IVP Books, 2006),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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