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화평과 소망의 노래
로마서 1부까지의 여정이 치열한 법정 드라마였다면, 이제부터 시작되는 2부는 승소 판결을 받은 자들이 벌이는 환희의 축제와 같다. 바울의 문체는 빽빽한 논증에서 감격에 찬 시와 노래로 바뀐다. 1부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구원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면, 이제 2부에서는 그 뿌리에서 뻗어 나오는 풍성한 열매들을 하나씩 맛보게 될 것이다.
로마서 5장은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맛보게 되는 화평과 소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열매에 대한 노래다. 칭의가 단지 법적인 신분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바꾸고 미래를 얼마나 영광스럽게 보증하는지를 보여주는 감격적인 찬양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부의 결론이었던 ‘그러므로’를 힘차게 이어받으며, 바울은 칭의의 첫 번째 열매를 노래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1절). 여기서 ‘화평’은 마음의 평안과 같은 주관적인 감정을 넘어,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화목하게 된 객관적인 상태를 의미한다.¹ 죄로 인한 전쟁은 끝났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접근권’을 얻어, 그분의 ‘은혜’ 안에 굳건히 서게 되었다(2절).
이 은혜의 자리에 선 우리는 이제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바울의 노래는 여기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3절).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역설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바울은 환난이 무의미한 고통이 아니라, 우리를 빚어가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환난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검증된 인격)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성품의 황금 사슬’을 노래한다(3-4절).²
이 소망이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절). 우리의 소망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폭포수처럼 쏟아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가장 위대한 증거는 바로 십자가다. 바울은 인간의 사랑(기껏해야 선인을 위해 죽는)과 하나님의 사랑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자격 없는 상태, 즉 “아직 연약할 때에”, “경건하지 않을 때에”,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명백하게 ‘확증’하셨다(6-8절).³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역사적이고도 객관적인 증거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십자가에서 확증된 사랑을 근거로, 바울은 이제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더욱(much more)’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힘차게 노래한다. 우리가 원수였을 때 그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더 어려운 일’이 이미 일어났다면,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장차 임할 진노에서 구원받는 ‘더 쉬운 일’은 얼마나 더 확실하겠는가(9-10절).⁴ 그의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했다면, 그의 ‘살아나심(부활 생명)’은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구원의 선물을 넘어, 선물 주신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게’ 된다(11절).
여기서 바울의 노래는 개인의 구원을 넘어 인류 전체의 역사로 그 배경을 확장한다.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12절). 아담은 온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의 불순종은 모든 후손을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놓이게 했다.⁵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에도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다(13-14절). 그러나 이 비극적인 노래는 더 위대한 반전을 위한 서곡일 뿐이다. 아담의 실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그리스도의 은혜가 선포된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15절).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아담의 행위와 그리스도의 행위의 비대칭적인 결과를 노래하며 2부의 서곡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아담의 한 번의 범죄는 모든 사람에게 ‘정죄’를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선물은 인류의 ‘많은 범죄’를 모두 덮고도 남아 ‘의롭다 하심’에 이르게 한다(16절). 아담 때문에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다면, 이제 은혜를 넘치게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될 것이다(17절).
바울은 이 위대한 교향곡의 주제를 다시 한번 반복한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이다(18-19절).⁶ 그렇다면 율법은 무슨 역할을 했는가? 놀랍게도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이 숨어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20절). 율법이 죄의 깊이를 드러내어 인간을 절망케 한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더 풍성하게 부어진다는 것이다.
이 장의 마지막 노래는 두 왕국의 통치를 그리며 끝맺는다. 이전에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했지만, 이제는 ‘은혜가 의를 통해 왕 노릇 하여’ 우리를 ‘영생’으로 이끌어 간다(21절). 이 장엄한 선포는, 칭의를 받은 우리가 이제 완전히 새로운 나라, 새로운 왕의 통치 아래 들어왔음을 알리는 승리의 찬가다.
각주
¹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는 여기서의 '화평'이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적대 관계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하는 객관적이고 법적인 상태(objective, forensic status)라고 강조한다.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96), 291-292.)
² 톰 라이트(N. T. Wright)는 이 연쇄 반응을 금속을 제련하는 과정에 비유한다. 광석(신자)을 환난이라는 용광로에 넣어 불순물을 제거하면, 순수한 금속(연단된 인격)이 남게 되고, 이것이 진짜라는 사실 자체가 미래에 대한 소망을 더욱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N. T. Wright, Paul for Everyone: Romans, Part One (London: SPCK, 2004), 68.)
³ '확증하셨느니라(συνιστησιν)'는 현재형 시제로, 십자가 사건이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고 있는 현재적 효력을 가짐을 시사한다. (C. K. Barrett, The Epistle to the Romans, Black's New Testament Commentary (London: Continuum, 1991), 104.)
⁴ C. E. B. 크랜필드(Cranfield)는 10절의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가 단순히 부활 사건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다스리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력 있는 사역 전체를 가리킨다고 본다. (C. E. B. Cranfield,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Edinburgh: T&T Clark, 1975), 268-269.)
⁵ F. F. 브루스(F. F. Bruce)는 고대 사회의 ‘연대성(solidarity)’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이 구절을 해석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행위가 가족이나 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방식 속에서, 아담의 죄가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바울의 주장은 당시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F. F. Bruce, The Epistle to the Romans, TNTC (Grand Rapids: Eerdmans, 1985), 129.)
⁶ 톰 라이트(N. T. Wright)는 아담의 ‘불순종’이 인류의 제사장적 소명(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의 실패를 의미하는 반면, 그리스도의 ‘순종’은 십자가에서의 죽기까지의 순종을 통해 그 제사장적 소명을 완벽하게 성취한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N. T. 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 Christ and the Law in Pauline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