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마서 6

제6장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by 박루이


제6장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곡 22-25 / 로마서 6장)


칭의를 받은 자들이 누리는 화평과 소망, 그리고 아담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우주적 승리를 노래했던 4장에 이어, 이제 바울은 성화의 삶에 대한 본격적인 가르침을 시작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로마서 5장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이 위대한 선언은, 복음의 영광을 보여주는 동시에 위험한 오해를 낳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은혜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죄를 더 많이 짓는 것이 좋은 일 아닌가?” 이 치명적인 왜곡은 복음의 심장을 겨누는 독화살과 같다.


6장은 이 위험한 질문에 대한 바울의 열정적인 답변이다. 그는 은혜의 복음이 결코 죄를 용납하지 않으며, 오히려 죄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능력임을 두 개의 강력한 은유, 즉 ‘죽음과 부활’ 그리고 ‘종과 주인’을 통해 힘차게 노래한다. 이 장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권고 이전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선포하는 영광스러운 신분 확인서라 할 수 있다.


제22곡. 그런즉 우리가 (로마서 6장 1-7절)

https://youtu.be/rfMMEq0JTb4

롬 6:1-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바울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가상의 질문을 던지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외친다. “그럴 수 없느니라(μη γενοιτο)!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1-2절). 바울의 답변은 도덕적 당위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불가능성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 이전에,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존재라는 것이다.¹ 죽은 사람이 무덤 속에서 다시 살아갈 수 없듯이,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사는 것은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과 완전히 모순된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죄에 대하여 죽었는가? 바울은 모든 성도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세례를 그 증거로 제시한다(3절).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죽으심에 동참하고 함께 장사되는 사건이다(4절).² 우리의 옛사람, 즉 아담에게 속했던 죄의 자아는 그리스도의 무덤에 함께 묻혔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연합했다면, 필연적으로 그의 부활과도 연합하여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4-5절).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지배를 받던 ‘죄의 몸’이 무력화되어 우리가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6절). 죽음이 모든 법적 책임을 소멸시키듯,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죽음은 죄가 우리에게 주장하던 모든 소유권을 무효로 만들었다. 우리는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7절).³


제23곡. 만일 우리가 (로마서 6장 8-14절)

https://youtu.be/i6OKxpMfUlk

롬 6:8-14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이제 바울은 ‘죽음’에서 ‘삶’으로, 우리의 새로운 신분이 가져오는 실제적인 삶의 원리로 초점을 옮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또한 그와 함께 살 것을 믿어야 한다(8절).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사망이 다시는 주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새로운 생명 안에 거하게 되었다(9-10절).

이 위대한 진리를 우리의 삶으로 가져오는 핵심적인 명령이 바로 11절에 나온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λογιζεσθε, 로기제스데)!” ‘여기라’는 것은 감정이나 느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객관적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선포하는 의지적인 행위다.⁴ 이것은 ‘나는 죽었다’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죽었다고 선언하셨다’는 사실 위에 굳게 서는 것이다.

이 새로운 정체성(Indicative)은 새로운 삶의 방식(Imperative)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죄가 우리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12절),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아야 한다. 대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로서 우리 자신과 모든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παραστησατε, 파라스테사테) 한다(13절).⁵ 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우리의 승리를 보증하는 것은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14절).⁶ 우리는 더 이상 죄를 폭로하지만 이길 힘을 주지 못하는 ‘율법’의 통치 아래 있지 않고, 우리를 용서하고 승리할 힘까지 주시는 ‘은혜’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이다.


제24곡. 그런즉 어찌하리요 (로마서 6장 15-19절)

https://youtu.be/WNFKCzUTIVI

롬 6:15-19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바울은 두 번째 질문을 제기한다. “은혜 아래 있으니 (가끔) 죄를 지어도 괜찮은가?”(15절). 그는 다시 한번 “그럴 수 없다!”고 외치며, 이제 ‘종과 주인’이라는 은유를 통해 논증을 이어간다. 그는 자명한 원리를 제시한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16절). 영적인 세계에 중립지대란 없다. 우리는 죄에게 순종하여 사망에 이르는 ‘죄의 종’이 되거나,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이 이미 주인을 바꾼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들은 본래 죄의 종이었으나, 복음의 가르침(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함으로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17-18절).¹ 이제 그들은 과거에 자신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종으로 내주어 더 깊은 불법에 이르렀던 것처럼,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고 명령한다(19절).


제25곡.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 (로마서 6장 20-23절)

https://youtu.be/dz15i4fV7kQ

롬 6:20-23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마지막으로 바울은 두 종류의 종살이가 가져오는 최종적인 결과를 선명하게 대조한다. 과거 그들이 ‘죄의 종’이었을 때, 그 삶에서 얻은 ‘열매(καρπον, 카르폰)’란 고작 이제는 ‘부끄러워하는’ 것들뿐이었고, 그 삶의 ‘마지막(τελος, 텔로스)’은 ‘사망’이었다(20-21절).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맺는 열매는 ‘거룩함(성화)’이며, 그 마지막은 ‘영생’이다(22절). 그리고 이 모든 진리를 압축하는, 복음의 정수와도 같은 선언이 울려 퍼진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23절)


‘삯(οψωνια, 옵소니아)’은 수고한 대가로 당연히 받는 품삯이다. 죄라는 주인은 자신을 섬긴 종들에게 죽음이라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³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삯을 주지 않으신다. 그분은 ‘은사(χαρισμα, 카리스마)’, 즉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주신다.⁴ 그 선물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 이 강력한 대조를 통해, 6장의 노래는 죄의 비참한 결국과 은혜의 영광스러운 선물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각주

¹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는 ‘죽었다(απεθανομεν)’는 아오리스트(aorist) 시제로, 과거에 일어난 단회적이고 결정적인 사건을 나타낸다며, 이를 "결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라고 부른다.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96), 356.)

² F. F. 브루스(F. F. Bruce)는 초대교회에서 세례가 침수(immersion) 방식으로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물속으로 잠기는 행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는 것을, 물 밖으로 나오는 행위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생생하게 상징했다고 설명한다. (F. F. Bruce, The Epistle to the Romans, TNTC (Grand Rapids: Eerdmans, 1985), 136.)

³ 존 스토트(John Stott)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처형되었고, ‘죄의 몸’은 그 힘이 무력화(καταργηθῃ)되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지만, 여전히 죄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John Stott, The Message of Romans: God's Good News for the World (Downers Grove: IVP Academic, 1994), 173-174.)

⁴ ‘여기라(λογιζεσθε)’는 현재명령형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간주하고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은 이를 "이미 일어난 현실을 주관적으로 파악하고 실현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James D. G. Dunn, Romans 1-8, WBC 38A (Dallas: Word Books, 1988), 329.)

⁵ ‘드리라(παραστησατε)’는 제사장이 제물을 제단에 바칠 때 사용되던 단어다. 우리의 윤리적 순종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이다. (C. E. B. Cranfield,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Edinburgh: T&T Clark, 1975), 322.)

⁶ 톰 라이트(N. T. Wright)는 ‘율법 아래 있음’과 ‘은혜 아래 있음’을 두 개의 다른 통치권 아래 사는 것에 비유한다. 율법의 통치 아래서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만, 은혜의 통치 아래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다스려 죄를 이기게 한다. (N. T. Wright, Paul for Everyone: Romans, Part One (London: SPCK, 2004),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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