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마서 7

제7장 율법과 죄, 그리고 성도의 갈등

by 박루이


제7장 율법과 죄, 그리고 성도의 갈등 (곡 26-29 / 로마서 7장)


로마서 6장에서 ‘죄의 종’과 ‘의의 종’이라는 선명한 대비를 통해 성도의 새로운 신분을 노래했던 바울은, 이제 우리의 실제적인 경험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왜 구원받은 신자의 삶에 여전히 갈등과 실패가 존재하는가? 이 실존적인 질문에 답하는, 로마서에서 가장 치열하고 논쟁적인 율법과 죄, 그리고 성도의 갈등을 노래한 로마서 7장이다.


은혜의 통치 아래 들어온 성도의 삶은 이제 모든 갈등이 끝난 평온한 상태인가?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새로운 갈등이 시작된다. 이 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내면을 가장 깊은 곳까지 해부하며, 구원받은 자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죄와의 끔찍한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이 갈등의 중심에는 ‘율법’이 있다. 우리는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는데, 왜 율법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게 하는가?


이 장에서 탄식하는 ‘나’는 율법 아래 절망하던 과거의 바울이면서, 동시에 구원받았음에도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과 씨름하는 오늘 우리의 솔직한 자화상이다. 이 처절한 자기 고백을 통과할 때, 비로소 이어지는 8장의 영광스러운 승리가 얼마나 감격적인지를 온몸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제26곡. 형제들아 (로마서 7장 1-6절)

https://youtu.be/rtnfsfkm3jQ

롬 7:1-6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바울은 먼저 우리가 율법과 맺었던 옛 관계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결혼의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율법을 아는 자들에게 익숙한 법 원리를 제시하며, 아내는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그에게 법적으로 매여있다고 말한다(1-3절).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그 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다른 이와 결혼할 수 있다.

바울은 이 비유를 우리의 구원에 적용하며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 옛 남편인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니라, 아내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이다(4절).¹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와 요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되었다. 우리가 자유롭게 된 목적은, 이제 새로운 남편, 즉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그리스도)”와 결혼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과거 육신(옛 남편)에 속해 있을 때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정욕이 살아나 ‘사망을 위한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를 얽매던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지,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는다(5-6절).² 이는 율법의 문자에 얽매인 외적인 섬김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적이고 자발적인 섬김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제27곡. 그런즉 우리가 (로마서 7장 7-12절)

https://youtu.be/vwB4VRGrDCQ

롬 7:7-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율법이 사망의 열매를 맺게 했다면, 율법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바울은 “율법이 죄냐”고 묻고는, 단호하게 “그럴 수 없느니라(μη γενοιτο)!”고 외친다(7절). 율법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율법을 통해서만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는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고 고백한다. 율법은 엑스레이처럼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죄의 암세포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던 ‘죄’라는 세력이다. 죄는 거룩한 계명을 ‘기회’로 삼아 온갖 탐심을 일으켰다(8절). 율법을 인격적으로 마주하기 전에는 상대적으로 평안하게 살았지만, 계명이 이르자 죄가 살아나고 나는 율법 앞에서 죄인임이 드러나 죽은 존재가 되었다(9-11절). 결국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선한 율법이 아니라, 그 선한 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극악무도함을 드러낸 ‘죄’다. 율법은 죄가 얼마나 ‘심히 죄 되게’ 하는지를 폭로하는 거룩한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12-13절).³


제28곡. 그런즉 선한 것이 (로마서 7장 13-20절)

https://youtu.be/iGrC1ZYF8qY

롬 7:13-20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제 바울의 고백은 구원받은 신자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내적 갈등의 실체로 깊이 파고든다. 갈등의 근본 원인은 율법은 ‘신령한 것’이지만,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린’ 존재라는 부조화에 있다(14절). 여기서 ‘육신(σαρξ, 사륵스)’은 단순히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신자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옛 아담의 부패한 본성, 즉 ‘내주하는 죄’를 가리킨다.⁴

이 내적 분열의 고통은 생생하게 묘사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19절). 이 고백은 내 안에 선을 원하는 새로운 의지가 생겼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제 그 악을 행하는 것은 온전한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17, 20절).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변명이 아니라, 자신의 참된 자아는 하나님을 원하지만, 여전히 자신 안에 죄의 세력이 남아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제29곡. 그러므로 내가 (로마서 7장 21-25절)

https://youtu.be/uAF3DwNCVmQ

롬 7:21-25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이 갈등을 자기 안에서 싸우는 ‘두 개의 법’으로 설명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다른 한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22-23절). 그의 새로운 본성, 거듭난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지만, 그의 지체 속에는 여전히 ‘죄의 법’이 있어서 그를 포로로 사로잡아 간다.

이 끔찍한 내전 상태 속에서, 마침내 바울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절규가 터져 나온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4절)

이 탄식은 불신자의 절망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죄인 됨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는 성도의 거룩한 탄식이다.⁵ 이 절망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는 비로소 자기 밖에서 오는 구원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해답을 발견하고 외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25절). 구원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진다. 이 감사의 외침은 바로 이어질 8장의 서곡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정직하게 요약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것이 바로 구원받았지만 아직 영화롭게 되지 않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성도의 솔직한 실존이다.


각주

¹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는 이 비유의 핵심이 ‘남편의 죽음’이 아니라 ‘아내의 죽음’에 해당하는 신자의 죽음에 있다고 지적한다. 율법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율법의 사법적 관할권(jurisdiction)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96), 425.)

² ‘영의 새로운 것(καινότητι πνεύματος)’과 ‘율법 조문의 묵은 것(παλαιότητι γράμματος)’의 대조는 성령의 내적 동력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순종의 방식과, 인간의 힘으로 문자에 얽매여 섬기던 옛 방식을 대조하는 것이다. (F. F. Bruce, The Epistle to the Romans, TNTC (Grand Rapids: Eerdmans, 1985), 149.)

³ 톰 라이트(N. T. Wright)는 율법의 기능을 강력한 램프에 비유한다. 방이 어두울 때는 먼지가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램프(율법)를 비추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많은 먼지(죄)가 비로소 보이게 된다. 램프가 먼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먼지의 실체를 드러냈을 뿐이다. (N. T. Wright, Paul for Everyone: Romans, Part One (London: SPCK, 2004), 101.)

⁴ 7장 14-25절의 ‘나(I)’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교회사에서 계속되어 왔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이 ‘나’를 구원받은 신자의 실존으로 해석했다. (James D. G. Dunn, Romans 1-8, WBC 38A (Dallas: Word Books, 1988), 385-388.)

⁵ 존 스토트(John Stott)는 이 탄식이 불신자의 절망이 아닌 이유를, 그가 (1)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2)선을 ‘원하며’, (3)악을 ‘미워하고’, (4)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외부의 ‘구원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거듭난 영혼만이 가질 수 있는 거룩한 고통이다. (John Stott, The Message of Romans: God's Good News for the World (Downers Grove: IVP Academic, 1994), 20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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