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마서 4

제4장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by 박루이


제4장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곡 15-18 / 로마서 4장)


앞선 장에서 바울은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다소 역설적인 선언으로 논증을 마쳤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이 어떻게 율법을 지지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바울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가장 위대한 믿음과 순종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을 증인으로 소환한다. 만일 아브라함조차도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바울의 복음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신 구원의 원리임이 명백해질 것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구약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일관된 방식임을 배우게 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1부 전체의 논증을 마무리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찬양이 될 것이다.


제15곡. 그런즉 육신으로 (로마서 4장 1-8절)

그런즉 육신으로 (로마서 4장 1-8절)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먼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은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1절). 만일 아브라함이 자신의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그 자랑은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2절). 바울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구약성경의 결정적인 증언, 창세기 15장 6절을 제시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3절). 아브라함의 의는 그의 행위가 아니라, 그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의 평가, 즉 ‘여겨주심(ελογισθη, 엘로기스데)’이었다.¹

바울은 일(행위)과 믿음의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설명한다. ‘일하는 자’는 당연히 받아야 할 ‘삯(보수)’을 받지만,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4절). 그러나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5절).² 이는 구원이 우리의 자격이나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주는 급진적인 선언이다. 이어서 바울은 두 번째 증인으로 다윗을 소환한다. 다윗은 시편 32편에서 ‘일한 것이 없이’ 의로 여김 받는 사람의 복을 노래한다. 그 복의 내용은 바로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지며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시는 것’이다(6-8절). 바울은 이 ‘죄 사함의 복’을 ‘의로 여기심’과 동일시함으로써, 칭의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더 이상 죄인으로 여기지 않기로 선언하시는 법정적 행위임을 분명히 한다.³


제16곡. 그런즉 이 복이 (로마서 4장 9-13절)

https://youtu.be/UzwKn50GVGc

롬 4:9-13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그렇다면 이 복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가? 바울은 칭의가 일어난 ‘시점’을 물음으로써 이 질문에 답한다.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은 할례 시냐 무할례 시냐 할례 시가 아니라 무할례 시니라”(10절). 아브라함이 의롭다 칭함 받은 창세기 15장은 할례를 받은 창세기 17장보다 앞선 사건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이방인과 같은 ‘무할례’ 상태에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그렇다면 할례는 아무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할례는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치는 것(σφραγιδα, 스프라기다)”이었다(11절). 즉, 할례는 의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이미 믿음으로 얻은 의를 확증하고 보증하는 ‘표(σημειον, 세메이온)’였다.⁴ 이로써 아브라함은 혈통을 넘어 ‘할례를 받지 않고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동시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사는 유대인 신자들의 조상이 되었다(11-12절). 이어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 또한 율법이 아닌 ‘오직 믿음의 의’를 통해 주어졌음을 선포한다(13절).


제17곡. 만일 율법에 (로마서 4장 14-18절)

https://youtu.be/FRjaqUReoLY

롬 4:14-18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약속이 왜 율법이 아닌 믿음에 근거해야만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만일 약속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율법에 달려 있다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된다”(14절). 왜냐하면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15절).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죄를 드러내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결론적으로, 약속은 반드시 ‘믿음’을 통해 주어져야만 ‘은혜’가 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후손’에게 그 약속이 ‘견고하게’ 보증될 수 있다(16절). 이리하여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약속대로, 혈통을 넘어 믿음으로 말미암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17절). 그리고 이제 바울은 아브라함이 가졌던 그 믿음의 본질이 어떠했는지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18절).


제18곡. 그가 백 세나 되어 (로마서 4장 19-25절)

https://youtu.be/ImAKBQnSnJU

롬 4:19-25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1부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마지막 노래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의 본질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의 믿음은 막연한 긍정주의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나이가 백 세가 되어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도 ‘죽은 것 같음’을 알고 있었다(19절). 그는 불가능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했다. 그럼에도 그는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이 더욱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20절). 참된 믿음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예배 행위다.⁵

그의 믿음의 근거는 자신의 가능성이 아니라,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 있었다(21절).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바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17절) 창조와 부활의 하나님이셨다. 죽은 것 같은 몸에서 생명을 창조하실 하나님을 믿었던 바로 그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22절).

바울은 이 모든 이야기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선언한다(23-24절). 우리 또한 아브라함처럼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즉 부활의 하나님을 믿을 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노래하며 1부를 마무리한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주심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25절)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함이었고, 그의 부활은 우리의 칭의를 확증하고 효력을 발생시키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⁶ 이 찬란한 복음의 요약과 함께, 죄와 심판, 그리고 구원에 대한 장엄했던 1부의 막이 내린다.


각주

¹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은 ‘여겨졌다(ελογισθη)’는 동사가 단순한 법적 선언을 넘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와의 언약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인정해주신 관계적 행위임을 강조한다. (James D. G. Dunn, Romans 1-8, WBC 38A (Dallas: Word Books, 1988), 200.)

²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 구절을 복음의 정수로 보았다. 그는 "하나님은 상상의 경건한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의롭다 하신다"고 말했다. (Martin Luther, Lectures on Romans, trans. Wilhelm Pauck (Philadelphia: Westminster, 1961), 129.)

³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는 바울이 시편 32편을 인용함으로써, '의로 여기심'이 죄를 계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법적 행위(forensic action)임을 명확히 한다고 설명한다.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96), 261.)

⁴ 톰 라이트(N. T. Wright)는 할례를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배지(badge)'에 비유한다. 할례라는 배지는 언약 관계에 들어온 '이후에' 주어지는 것이지, 그 배지를 가졌기 때문에 언약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N. T. Wright, Paul for Everyone: Romans, Part One (London: SPCK, 2004), 56.)

⁵ 존 스토트(John Stott)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네 단계로 심화된다고 설명한다. (1) 하나님의 약속을 들음, (2) 반대되는 증거들을 직면함,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봄,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John Stott, The Message of Romans: God's Good News for the World (Downers Grove: IVP Academic, 1994), 129.)

⁶ C. K. 바렛(C. K. Barrett)은 25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에 대한 유일하고 충분한 해결책이었다... 그의 부활은 그의 죽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신분, 즉 의롭다 함을 받은 신분을 실제로 누리게 되는 근거가 된다." (C. K. Barrett, The Epistle to the Romans, Black's New Testament Commentary (London: Continuum, 1991),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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