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감람나무의 비유와 구원의 신비
로마서 10장은 이스라엘을 향해 하루 종일 손을 벌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탄식으로 끝났다. 그들의 불순종과 거절은 명백했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인가?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어기고 그들을 완전히 버리셨는가? 이 질문은 바울 신학의 정당성, 나아가 하나님의 신실하심 자체가 걸린 중대한 문제다.
로마서 11장은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결코 실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노래한다. 이 장은 ‘남은 자’ 사상과 ‘감람나무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고, 마침내 인간의 모든 질문이 잠잠해지는 경이로운 찬양(Doxology)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리고 곧바로 외친다. “그럴 수 없느니라(μη γενοιτο)!”(1절). 그 첫 번째 증거는 바로 바울 자신이다. 그 역시 아브라함의 씨요 베냐민 지파, 즉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바울은 엘리야 시대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모든 사람이 바알에게 무릎 꿇었다고 절망하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셨다(2-4절). 이와 같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전체가 불순종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λειμμα, 렘마)”가 있다(5절).¹ 이 ‘남은 자’의 존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들의 남겨짐은 그들의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6절).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그렇다면 결과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남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7절).
이스라엘 전체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남은 자’와 ‘우둔해진 자들’로 나뉜 것이다. 바울은 이 ‘우둔해짐’ 또는 ‘완악해짐’이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된 일임을 이사야와 시편을 인용하여 증명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는 것이다(8-10절). 이는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사법적인 심판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그들의 완전한 멸망을 의미하는가? 바울은 또다시 “그럴 수 없느니라!”고 외친다(11절). 오히려 그들의 넘어짐을 통해 하나님은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이방인 구원의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되었다.
바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방인의 구원이 다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도구가 될 것이라는 신비로운 계획을 노래한다. 이방인들이 누리는 구원의 풍성함을 보고 이스라엘이 시기하여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점층법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노래한다. 만일 그들의 실패가 세상의 풍성함이 되고, 그들의 넘어짐이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었다면,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회복)은 얼마나 더 놀라운 일이겠는가! 만일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면,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 즉 부활과 같은 놀라운 새 시대의 시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12, 15절).²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바울은 이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유명한 ‘감람나무 비유’를 노래한다. 감람나무의 ‘뿌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족장들을 상징한다. 뿌리가 거룩하기에 나무 전체가 거룩하다(16절). 이스라엘은 이 나무의 ‘원 가지’였으나, 믿지 않음으로 얼마가 ‘꺾였다’(17, 20절). 그리고 이방인인 우리는 본래 ‘돌감람나무’ 가지였는데, 그 꺾인 자리에 ‘접붙여져서’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게 되었다(17절).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이방인 성도들을 향해 바울은 엄중하게 경고한다. “자랑하지 말라... 두려워하라”(18, 20절). 우리가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우리의 잘남 때문이 아니라 오직 믿음 때문이며, 원 가지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접붙여진 가지인 우리 또한 잘라버리실 수 있기 때문이다(21절).³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이 비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두 가지 성품을 동시에 보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유대인들에게는 ‘준엄하심’이, 그러나 우리가 만일 그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에게는 인자하심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또한 찍히는 바 되리라(22절). 그러나 소망은 남아있다. 꺾였던 원 가지들(이스라엘)도 믿지 않는 데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능히 그들을 원래의 자리에 다시 접붙이실 수 있다(23-24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이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며 교만해질 것을 염려하여, 이제 이 모든 계획의 핵심에 있는 ‘신비(μυστήριον, 뮈스테리온)’를 드러낸다. 그 신비의 내용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의 완악해짐은 ‘부분적’이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는 시간적인 한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25-26절).⁴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다(29절). 현재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이방인인 우리를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보면 그들은 여전히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28절). 결국 바울은 이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거대한 그림으로 요약한다. 과거에 불순종했던 이방인인 우리가 이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통해 긍휼을 입은 것처럼, 이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또한 장차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32절).⁵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9-11장의 길고도 깊은 신학적 논의는, 마침내 인간의 모든 이성적 설명을 넘어서는 경이로운 찬양의 폭발로 마무리된다.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 앞에서, 바울은 할 수 있는 유일한 응답, 즉 예배를 드린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3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는가?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는가(34-35절)?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없다’이다. 그리고 바울은 초대교회의 가장 장엄한 찬송가 중 하나를 노래하며 3부의 신학적 논의 전체를 마감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36절)
이것이 모든 신학의 귀결점이자 찬양의 이유다.
각주
¹ ‘남은 자(λειμμα)’ 사상은 이사야를 비롯한 구약 선지서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다.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셔서, 믿음을 지키는 소수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신다. (Walter C. Kaiser Jr., Toward an Old Testament Theology (Grand Rapids: Zondervan, 1991), 185-187.)
² 리처드 롱네커(Richard N. Longenecker)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라는 표현이 이스라엘의 민족적, 영적 회복이 가져올 종말론적인 부흥과 축복의 시대를 암시한다고 본다. (Richard N. Longenecker, The Epistle to the Romans, NIGTC (Grand Rapids: Eerdmans, 2016), 843.)
³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은 감람나무 비유가 당시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 성도들을 향해 가졌을지 모를 우월감과 교만을 경계하기 위한 강력한 목회적 권면이라고 설명한다. 이방인의 구원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뿌리에 접붙여진 은혜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James D. G. Dunn, Romans 9-16, WBC 38B (Dallas: Word Books, 1988), 668.)
⁴ ‘온 이스라엘(πας Ισραηλ)’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1)역사 속의 모든 유대인, (2)택함 받은 유대인 전체, (3)마지막 때에 회심하게 될 유대인 전체, (4)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교회 전체 등. 많은 학자들은 문맥상 마지막 때에 있을 민족적 이스라엘의 대규모 회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96), 721-729.)
⁵ 존 스토트(John Stott)는 이 구절을 "바울 신학의 에베레스트"라고 칭하며, "하나님은 인류를 죄와 비참이라는 감옥에 가두셨는데, 이는 그들을 벌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 오직 그분의 긍휼만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한다. (John Stott, The Message of Romans: God's Good News for the World (Downers Grove: IVP Academic, 1994), 307.)